어느 원로 화가에게 “왜 무채색無彩色을 고집하느냐?” 질문을 하자, 이 화가의
답변이 이렇습니다.(서양화가인데 주로 먹물로만 작업)
“그림은 조용해야하고, 음악은 서러워야 하고, 시詩는 외로워야 해요.
대가들의 음악을 잘 들어 보세요. 다 서럽지....... ”
그래서 오늘은 서럽고 애절한 감정을 넘는, ‘비장미’가 흐르는 클래식 명곡들을
준비했습니다. ‘비장미’는 미적 범주의 하나로 슬픈 감정과 함께 일어나는
<아름다움>이라고 정의定義되어 있는데요,
흔히 연극이나 영화, 그리고 드라마 등에서 주인공의 비극적인 죽음이나 어떤
숙원이 좌절된 처연한 장면 중 가슴 저리게 하는 장엄한 아름다움을 제3자는
목격하게 됩니다.
이 비장미는 숭고미와 함께 모두 현실에 존재하는, ‘있는’ 세계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이상적인 것’ 즉 있어야 할 세계를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하는
데요, 이 <미학 개념>을 처음 쓴 사람은 독일의 <하르트만>이라는 미학자라고
합니다.
극작가가 주인공의 운명을 비극적인 상황으로 몰고 가서 최후에 장렬한 죽음에
이르게 하지만 한편, 관객들이 그 안타까움 속에서 공통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내적인 한 감정이 있지요.
예, 바로 ‘카타르시스catharsis’입니다. 제가 이 말을 드리고 싶었던 건데요.
사람이 심한 내면적 갈등을 겪게 되었을 때 꽃잎 떨어지듯 뚝뚝 눈물 흘리며,
울고 나면 속이 개운해지고 후련해지는 경험을 갖게 되는데요, 이 눈물 한 방울
이 근심 ‘한 짐’을 내려 놓아주는 정화淨化 효과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
밝고 화려한 색채가 절제된, ‘무채색의 음音’이 절절히 흐르는 음악을 듣다보면
어느새 마음 안의 앙금은 한결 말갛게 정화되고, 가지런하게 정리된 듯한
숙연한 상태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비장미’가 흐르는 곡은, 슬픔이 단지 슬픔에만 머무르지 않고 내적 정화작용인
<카타르시스>를 유도하고 최종적으로는 ‘내면의 평상심’ 을 회복하는데 그
깊은 뜻이 있습니다. 자, 같이 들어 보실까요.
<소크라테스의 죽음> 자크 루이 다비드 작, 1787년
1. 헨델의 사라방드 (Sarabande)
2. 비탈리 샤콘느 (Chaconne for Violin and Basso continuo in G minor)
3. 그리그의 페르 귄트 모음곡 중 - 오제의 죽음
4.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 중 - 별은 빛나건만 (E lucevan le stelle)
러시아의 수호신 <자작나무>
5. 라흐마니노프 - 피아노 협주곡 제2번 1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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