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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명장면, 생활속의 즐거움

농사일기

| 조회수 : 1,391 | 추천수 : 25
작성일 : 2005-07-21 21:04:27
<소양강댐>

2005. 7. 20. 수. 찜통이다.

안개가 자욱하다.
고무신 신고 긴 바지 입고 나간다.
강이지가 떼루 몰려든다.
앙, 앙,  ... 밥 달라는 소리다.

없어!
마누라 서울 갔다.

집사람은 매일매일 밤마다 정성껏 개 밥을 끓였다.
푸른곡산에서 등겨 사올 때 같이 사온 싸래기쌀에 브로콜리며 감자며 이것저것,
사람 못 먹을 것 손봐서 넣어가지고 맛있게 끓여 먹였다.

없어, 이놈들아!

감자 넣어둔 창고 문 닫고,
밭으로 간다.
망가진 고추밭은 볼 때마다 속이 쓰리다.

당근 심을까 싶어 비워뒀던 밭은 풀이 무성하다.
브로콜리 밭으로 가는 길이 아예 막혔다.

젠장할, 예초기 사야겠다.

이슬에 아랫도리가 흠뻑 젖는다.
브로콜리가 신통하게 아직도 쌩쌩하다.
열심히 꽃몽오리 자른다.

이걸 잘라 어디에 쓰나......
선별해서 가락동에 올려볼까, 선물로 보낼까, 착불로 할까, 에이, 내가 다 내지 뭐, 기왕 선물인데...
오락가락 생각은 정신없이 제 멋대로...

열 한시 되니까 어김없이 해가 쨍 떠오른다.
덥다.

한 너댓골 남았지만 작업 중단하고 농협으로 간다.
흥순이형이 빌린 저온저장고에 하루만 어떻게 찡겨 넣어볼까 싶어서...

이래저래 해가지고 간척리 저온저장고에 넣었다.
냉을 먹여야 하니까.

서울에서 도저히 더워서 못 있겠다고, 어제 올라간 집사람이 내려왔다.
화천으로 태우러 나가는 김에, 자전거 가지고 나가서 깔끔하게 고쳤다.

농협 나간 길에 예초기 사버렸다.
예초기 31만원, 미츠비시.
까잇거 뭐, 외상이다.

"싼 것도 많아요. 근데, 내가 하도 많이 당해서 안 팔아요"

농협 농기계 수리센터 신교수(이름이 교수다)씨는 이렇게 말했다.
나도 하도 많이 당해서 그냥 그 물건 샀다.

얼굴 보호대(6천원)도 사고, 날 대신 쓰는 줄도 샀다.

예초기가 시동이 잘 안 걸리는 이유는, 쓰고 뒷처리를 안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쓰고 나면 반드시 쵸크통 밑에 있는 나사를 풀어서 고여있는 연료를 빼버려야 하고,
장기간, 그러니까 한 달 이상 사용하지 않을 경우는 연료 공급밸브를 풀어서
완전히 비워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간단한 걸, 사람들이 못 해요."
신교수씨 말이다.

어린 개사료 팔천 몇 백원, 외상.
휘발유통 삼천 오백 원 외상.
휘발유 만원어치 사고, 외상.
지갑을 안 들고 나갔으니 별 수 있나.

엔진오일은 2T, 집에 있으니 됐다.
어깨끈 길이 안 맞는 거, 예전 같으면 그냥 했겠지만,
오바로크집 가서 풀어서 다시 박음질해서 내 몸에 맞춰 돌아온다.

화천 나갔다 오는 길에 로젠택배 한상진씨 만나 같이 들어와서, 감자 두 박스 실어 보내고
음료수 건네니, 시원하게 한 그릇 쭉 들이키고 떠난다.
감자 주문이 뚝 끊겨서 은근히 걱정이다.

이장님네 감자밭에 잠깐 나가본다.
농기계 샀으니 면세유 받아야 하는데, 예초기는 일년에 한 말 반이 나온다고 한다.
이장님 싸인을 받아야 한다.

마을회관 헛간 아래서 감자박스 밑바닥에 테이프 붙이다가 반갑게 맞으신다.

"오늘따라 아침에 물통 들어올리다가 허리를 삐끗했어."

나는 또 <온살돌이>를 열심히 가르쳐드리는데, 별로 믿음이 가지 않는 표정이시다.
나는 열 한 시에 일 끝내고 물 끼얹고
...나처럼 더위 안 타는 사람도 하루에 네 번, 다섯 번 물 끼얹어야 하는 날이다...
나갔는데도 벌써 윗옷이 축축하게 젖는데, 밭에서는 감자 캐느라고 난리다.

이 더위에,
대민지원 나온 군인 아이들은 웃통을 벗고 거의 알몸으로 헉헉대고 있다.
생각보다 감자 알이 굵다. 다행이다. 잘 나왔다.

퍼런 감자, 썩은 감자 모아놨던 거, 잘 씻어서
통에 담아 물을 좀 붓고, 밀봉했다.

일곱 시쯤 예초기 메고 밭으로 나갔다.
정말 꼴 보기 싫은 환삼덩굴놈들, 죽었다.

조자룡이 헌창 쓰듯이 신나게 휘둘러대다가,
가래침을 탁  뱉었더니 얼굴 보호대에 척 달라 붙었다. 이런 **!

어두워져서 돌아왔다.

찬수형네 가서 저녁 얻어먹고, 춘천 한방병원에 가서 한약찌꺼기 싣고 돌아오니 열 두시 조금 넘는다.

차 세워놓고 자전거 타고 나섰다.
우아~ 시원하다. 상쾌하다.
정말 기분 좋다.

찬수형은 밤에 호박 선별하신다.

이 얘기, 저 얘기 ... 찬수형이랑 얘기하고 놀면, 참 배우는 것도 많고, 재미도 있다.
공감대층이 두껍다.
현명한 사람.

형수님이 불쑥,
"아니, 그런데, 왜 브로콜리는 두 박스 따 놓고 안 가져가셨어?"

이런, 빌어먹을!
어쩐지 생각보다 좀 적다 했는데, 풀 숲에 가려 안 보였나 보다.
아깝고 아깝다.
이 땡볕에, ... 어찌 되었는지!
마누라랑 박스 포장해서 가락동 올려보내기로 겨우 정했는데...

어쨌거나 달은 보름달이다.
날이 보름이든 아니든, 달은 보름달이다.

이거는 중요하다.
전에는 내일이 보름인데, 왜 오늘이 제일 둥그렇지? 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오늘이 보름이든 내일이 보름이든, 보름달 뜨면 보름이다.

옥수수는 다 익어 수염이 검어졌다.

올 해 세용씨네서 얻어심은 옥수수는 아무 것도 안 넣고 쪄도 달다.
암놈이라서 그렇단다.
암놈은 곁순을 무지하게 내서, 키우기는 힘들어도 맛이 기가막히게 좋다고 한다.
정말 기가막히게 맛있다.

낮에 놀 수밖에 없으니,
어제부터 나는 다시 놀부다.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냉동
    '05.7.22 12:41 AM

    정겹게 살아 가시는 모습을 보는것 같습니다.
    낮에 노신다고 놀부군요..하하
    찜통더위에 건강 유의 하십시요.

  • 2. plumtea
    '05.7.22 11:04 AM

    정말 더운데 더위 먹지 마시고 쉬엄쉬엄 하셔요. 항상 잘 읽고갑니다

  • 3. 농부
    '05.7.22 12:52 PM

    고맙습니다.
    일할 때는 농부, 놀 때는 놀부로 ... 변신!! 번쩍번쩍*_**

  • 4. 생강나무꽃
    '05.7.22 5:47 PM - 삭제된댓글

    춘천한방병원이요?... 흠.. 원장님 정말 좋으신분인데요.. 남들이 그런 소리 안하던 아주 아주 옛날서부터 몸에 나쁜거 먹지 말고 좋은거 - 유기농 채소, 된장 등등 먹으라고 잘 지도해주시던 분이죠.

  • 5. 농부
    '05.7.23 9:46 PM

    그렇군요...원장님은 잘 모르구요,
    무턱대고 약제과장님을 찾아가서 좀 주십사 부탁드렸어요.
    그래, 가끔 연락 주시면 나가서 실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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