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새벽.
부랴 부랴 서둘러 아침 지어놓고 대화역에서 7곱시에 만나기로한 박정은님을 기다렸다. 한 10분 기다리는 동안
지하철 역 입구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이 참 낯설었다. 전업 주부로 살아온지 18년 이지만 이 시간에 출근한다고 집에서
나와 본적이 없기에 더 낯설었는지 모르겠다.
남편 출근을 위해 역 입구까지 운전하고 나온 주부. 등산나가시는 어르신들. 종종 걸음으로 전철역 입구로 뛰시는 분들.
막 감은 머리 드라이로 바삐 말린듯한 모습에 옅은 화장에 야리야리한 옷차림으로 마구 뛰는 아가씨들
(나도 예전에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학생들. 마을버스 타고 내리는 남자들...
차도 사람도 다 바빠보이는 아침 풍경이었다. 아주 잠시지만 '다~바쁘게 사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잠시 후 박정은님이 도착해서 바로 우린 인천으로 출발했다. 31살의 아가씨. 프리랜서 작가란다.
그녀에게 작은 사건이 터졌다. 그 사건이 잘 해결되길 바라고...
그 일로 인하여 세상을 배우고 또 사람에게 실망도 하면서 다시 사람에게 희망도 가지게 된다고 믿는다.
하루 하루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삶을 배우는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
세상에 절대로 공짜는 없다. 부딪기고 상처나고 아프고 넘어지고 다치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거다.
인터넷 안에서 이렇게 편하게 만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신기하고 놀랍다고 했다. 그럴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되돌아오는 배를 기다리면서 아침 바다를 담아보았다. 바다도 키작은 섬도 막 세수를 한 듯 맑았다.
기분이 그렇게 느껴졌다고 할까? 서울에서 오신 키미님 고은옥님 하니님은 이미 무의도에 도착하셔서
일을 하고 계신 듯 했다. 새벽 6섯시에 출발하셨으니 보나 마다 하늘을 날아 오셨을게다.
하늘에는 신호등도 없고 정지선도 없었을 테니까..^^ 만약 있었다면 하나님이 눈 감아 줬을게다..
다 마음들이 이뻐서... 내 생각이다. ^^
고은옥님.
오늘의 MVP 상을 준다고 하면 아무도 이의 제기 할 사람이 없다.
일을 재미나게 즐기시면서 정말 사랑으로 봉지를 씌우시고 계셨다. 일하시는 얼굴이
"경빈~난 행복해~" 하는 표정. 바로 그것이었다. 무의도 일이 바로 내 일인양... 대단하신 분.
미소가님.
울 남편. 꼭두새벽에 가서 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
오기와 끈기 인내는 두 번째 가라면 서러운 내 남자다. 성실하게 열심히 일을 했다. 다 안씌우면 안되는양...
큰 나무 같은 남자다. 하는 일만 잘 되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여러 가지로 많이 속상할 때도 있고, 나 혼자 설움에
눈물도 흘려가면서 있는 바가지 없는 바가지 다 동원해서 열심히 긁어대지만, 때론 목석처럼 그런가 부다 하고
무시해 준다. 때론 그것 땜에 내 속이 완전히 뒤집어 지기도 하지만...어린내가 많이 이해한다. (엄청 어리네...)
그래도 한 편으론 남자로서 남편으로 존경심마저 생길때도 많다. 인정한다. (내 말 알라나 몰라~)
키미님.
사진에는 없지만 왜 들 그리 열심히신지..모두들 다 이러신 듯 했다.
'내가 하나 더 씌울꺼야~ 말리지마~!' 정말 그랬다. 처음 하시는 분인데도 참 잘하셨다. 일욕심 부려가시면서
1200~1300장 하셨다니 대단하시다. 회사에선 신경을 많이 쓰는 일을 하시나 보다. 그냥 포도봉지 씌우니 마음이
편하단다. 마음이 편하다는 얘기겠지..
나는 얼마나 씌웠을까? 세어 보지도 않았다. 내 마음에는 다 씌울 요량였으니까...^^
도빈이 삼촌하고 잠깐 짝이 되었는데 도빈이 삼촌에게 지기 싫어 악착같이 손을 놀렸다.
나는 꼼꼼하게 다 씌웠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했더니 이름 써 놓았냐고 하시기에 딱~보시면 알아요~ 했다.
한 송이라도 더 실하고 맛나게 영글어 가라고 꼼꼼하게 씌웠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이다.믿어주시길...
달려라 하니님.
정말 꾸준히 봉지를 씌우셨다.
무리 하지 마세요~ 했는데... 한 살이라도 어린 내가 그래도 고은옥님 근처라도 가야
되지 않겠냐며 젖먹던 힘까지 다 쏟아내신 듯 하다. 그래서 이웃을 잘 만나야 된다고 했나보다.^^*
다행히 누워라 하니님은 아니되신 듯... 고맙습니다.
뒤 늦게 오신 서울 soon님.
역시 사진에는 없다. 시어르신 저녁까지 챙겨놓고 오느라 늦었지만, 이곳까지 일하시러 일부러 오셨다고
생각하니 괜시리 마음이 울컥했다. 그냥 감사해서.. 시간이 아까웠는지 점심먹고 나서 얼른 일하자고 조르기까지
하신 분이다. 가끔은 아이같이 맑으시다. 고맙습니다. 가는데 마다 봉다리 봉다리 주니 우리집은 싸줄게 없어
집에 오라고 못하시겠단다. 우리들 손에 봉다리봉다리 안들려 주어도 되니 집에 초대해 주셨으면 좋겠다.
라면만 끓여 먹어도 되는데....^^*그냥 그런 생각을 혼자서 했었다.
복사꽃님과 막내아들.
오늘 무의도 봉지 둘이서 다 씌우려고 새벽 밥까지 먹고 나와 무려 세 시간 걸려 예까지 왔단다.
대단한 엄마와 아들. 김포 친정아버지 일을 도맡아 하는 복사꽃님 답게 정말 열심히 봉지를 씌웠다.
무엇이든 열심히고 최선인 복사꽃님을 존경한다고 하면 매 맞을라나? 아들! 수고했어!
다른 분 사진은 어째 편집하다 없어졌고 왔다 갔다 하느라 담지도 못했고, 죄없는 카메라 밧테리만
원망해야 했다.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했더니 금새 약이 없어졌다. 에이~ 오래가는 밧테리 살꺼야~
박은정님.
유일한 아가씨..속이 상한 일이 있어 뒤숭숭했을 것이다. 그래도 워낙 열심히 일들을
하시니 뒤따라 하느라 마음도 몸도 바빴을게다. 여러 가지 경험들이 새로운 생각을 하게 했을 것 같다.
이 바부탱이는 이렇게 생기면 다 청포돈 줄 알았다. 그런데 청포도는 따로 있단다. 에고~꽁!!
아무것도 없는 작은 나무에서 이렇게 주렁 주렁 열리는 것이 마냥 신기하고 놀랍다.
얘네들을 하나 하나 다 봉지를 씌우는 거다. 그냥 나무에서 떡~열리는게 아니다.
다 손길이 가고 영양섭취도 해야하는 어쩌면 내 자식보다 손이 더 가는 애들이다.
이렇게 하나 하나 씌워 나가는 것이다. 길게 뻗은 농장안에서 포도송이를 하나 하나 씌워나가면서 바라보는 뿌듯함.
그것은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포도나무에 하얀 종이꽃이 핀 듯 하다. 이쁘다. 몇 번이고 되돌아 보곤했다.
울 남편 말이 자귀나무 라고 했다. 박정은님이 그랬다. 꽃 말은 "날 건드리지 말아요~"
라고 그렇게 고고한 꽃나무인가? 건드리면 다 퍼져서 떨어진다고 했나? 아마 그런 것 같다.
해바라기..녹색나무 아래 피었는데 노란색이 아주 강렬했다. 날씬하면서도 눈에 확~띄는 해바라기.
언제 부턴가 해바라기가 좋아진다. 벌이 날아왔다.
이렇게 막 돌아다니면서 열심히 저혼자 맛난 것을 다 빨아먹고 있는 듯... 해바라기는 아프지 않을까?
아니면 해바라기의 운명인가? 가까이 담아 보았다. 땡모님이 왜 생각났을까? 땡모님의 카메라가 생각났다고 해야하나?
우리 점심시간에 무참히 사라진 호박들이다. 호박잎 쌈먹을 걍된장속으로 쏘옥 들어간 이쁜것들이다.
내 맘대로 컸는데 이리 예쁘다. 미안해.호박!
대롱 대롱 수박. 정말 이쁘게 크고 있었다.
무의도엔 없는 것 빼곤 다 있다. 사방을 둘러 보아도 일이다. 그래서 울 것 같았다.
손을 놓기 전까지는 다 손가는 일이다.
복사꽃님 남편이 퇴근하고 무의도 선착장까지 아들과 부인을 데리러왔다.
다른 것은 접어 두고라도 이 하나 만으로도 착하고 좋은 남편이란 생각이 들었다. 귀찮아서 안 올 수도 있으련만....
고마웠다. 부랴 부랴 싸주신 포도주와 토마토 가지고 먼저 나가고 뒤이어 키미님과 고은옥님 순님 박은정님 검은 봉다리
하얀 봉다리 하나씩 들고 출발하셨다. 우리는 언제나 봉다리 여인들..^^
뒤늦게 남편과 나는 두 분이 끊어주시는 머위대와 마늘 양파 가는 기계까지 얻어왔다. 경빈네 김치 맛나게 담그라고..
이제는 고무다라 들고 야채가계 안가도 된다. 워낙 많이 갈다보니 그동안은 야채가계가서 2000원씩 주고 갈아왔었다.
제일 반가운 물건이다. 중고 사서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반품을 해 버렸었는데.. 누구보다도 땡잡은 경빈이다.
나오는 길에 포도 효소를 빠트리고 간 복사꽃님 만나 건네주었다.이럴때 핸드폰이 참 좋다. 뭐든 잘 쓰면 좋은것이다.
남편 말은 콩밭을 가보니 콩밭인지 풀밭인지 모를 정도로 난리가 아니란다. 다음 주 경에 또 가잔다. 풀 뽑으로...
나 뿔은커녕 콩 뽑으면 어쩌지? 중고 세탁기도 가지러 갈겸... 화요일쯤 가자고 한다.
아무래도 무의도를 갈 일이 자주 생길 것 같다.
일하고 오신 모든 분들 마음들이 아마도 같으리라. 포도가 내 자식 같으리라. 내 손으로 씌웠으니 내 손으로 수확하잔다.
아~ 눈물난다. 울컥한다. 몸은 조금 힘들지만 왠지 뿌듯하단다. 나도 그랬다. 뭔가 해야 할 일을 한 듯한 그런 기분.
많이 씌우지는 못했지만 직접가서 내 손으로 만져가면서 씌웠다는 것. 함께 했다는 것!
그래서 어제 하루 울컥 울컥 하는 마음으로 보냈다. 빗속에서 말이다....
그래도 아쉬움이 있다면 다 씌우지 못한 포도송이 들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