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5월의 마지막 날(바람이 부나 햇살은 무지 뜨거움)
서울의 날씨는 어찌나 눅눅하고 훈덥지근하던지 땀은 삐질 삐질 나오는데 끈끈하기는 이를데 없었다.
산골로 돌아오니 바람은 시원하면서 햇살은 따가우니 땀을 흘려도 끈끈하기보다는 살갗이 매끄러울뿐이다.
새벽에 산골에 도착하니 역까지 마중나왔던 초보농사꾼이나 나나 날이 밝아오는 것을 보며 잠시 눈을 붙이려 한다.
잠이 오지 않자 이내 일어나 농사일을 챙긴다.
나더러 오늘은 읽다 펴둔 책을 제발 마무리하란다.
나쁜 버릇이 초보농사꾼에게까지 피해가 가는가보다.
책욕심이 많아 책만 보면 산다.
그리고 읽다만 책이 아무리 많아도 일단 건드려놓고 본다.
그러니 진행중인 책이 최소한 다섯 권은 기본
오늘중으로 한 권은 해결하리라 마음먹으나 밭이 나를 부르는 것만 같아 방 안에 있을 수가 없다.
효소거리하려고 개울가로 갔다.
그곳은 사람다니기도 쉽지 않고 금방이라도 뱀이 나올 것 처럼 풀이 우거진 곳이라 미루다 오늘 도전하기로 했다.
논둑을 지나 언덕을 내려가 개울가 밑에 가니 머위가 어찌나 싱싱하게 바람을 쐬고 있던지....
낫으로 정신없이 머위를 베어 자루에 담기를 한동안 했나보다.
어느새 초보농사꾼이 합세하여 시원하게 효소화될 머위를 잘라 넣었다.
머위가 사람에게 그리 좋다던데...
작년 생각이 났다.
산골로 봉고차가 들어왔다.
어느 아주머니들이 내리시더니 이곳에 머위를 해마다 사갔는데 머위를 팔란다.
우리가 이사와서부터는 저희 쓸 머위도 부족하니 올해부터는 고생하지 마시고 사러오시지 말라고 했다.
그럼 머위를 사란다.
사실 머위라고 다 필요한 것이 아니다.
머위를 어디서 채취했느냐가 중요하다.
제초제치고, 농약을 물붇듯 하는 논둑이나 개울이나 밭의 머위는 우린 필요치 않았으므로 사정얘기를 드렸더니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산골을 떠나셨던 기억이 났다.
초보농사꾼이
"선우엄마, 이런 일이...."
고개를 둘러 보니 아무도 없다.
무슨 일이냐니 이쪽을 보란다.
"아니?"
새알이었다. 주현이 엄지 손톱만하다.
다섯 놈이 그리 포근한 잠자리에서 에미를 기다리고 있는거다.
세상에 처음 왔으니 그들에게도 신의 축복이 있기를 기도했다.
그런 내게 초보농사꾼
"그런데 당신 애먹이는 까마귀 새끼면 어쩌지?"
내 인상을 본다.
"까마귀도 생명이 있는데 어쩌겠어요. 우리가 머위를 베어버려 햇살이 너무 따가울텐데 어쩌지?"
처음에 에미는 머위가 드리워진 시원한 그늘 밑에서 몸을 풀었을 것이다.
집도 어찌나 정교한지 내가 들어 그늘로 옮겨도 흐트러짐이 없다.
밑에는 넓은 마른 잎으로 배처름 얼기설리 둥글게 움막을 지었다.
그 위에는 작은 나무토막을 넣어 무너짐이 없게 하고 마지막으로 작은 풀을 여러 겹 덮어 새끼들이 푹신 푹신하게 해 주었다.
자연의 소재로 지은 집
우리도 이 새집처럼 자연소재로만 방을 두 칸 지을 생각이다.
먼 발치에서 사람들이 지새끼있는 곳을 낫으로 파헤치는 것을 보고 있을 에미생각에 하늘을 둘러본다.
어디서 몸을 숨기고 가슴을 조이며 이를 지켜보고 있을까...
몸조리나 제대로 하고 몸을 숨기기나 한 건지..
어서 일을 중단하고 자리를 새로 마련해 주자니 초보농사꾼이 에미가 몸풀었던 그곳에 그대로 두고 머위 몇 개로 그늘을 만들어주는 것이 좋겠단다.
예전 같았으면 산골아이들 보여준다고 집어들고 갔겠지만 산골에 살다보니 그 애들 일이 내 일이 되고 보니 산골아이들을 엎어다(뱀때문에) 보여주고는 얼른 제 자리에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산골에 오니 이런 것도 직접 볼 수 있고 산골이 좋긴 좋지?"
"네, 무지 예뻐요."
초보농사꾼의 어깨가 힘이 바짝 들어간다.
새끼들도 세상의 첫 무서움을 경험했을지 모를 일이다.
아무쪼록 놀라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으로 서둘러 작업을 끝냈다.
마루에 앉아 한동안 지켜 보았다.
에미가 새끼에게 돌아가는지.
내일은 꼭 가봐야겠다.
그 자리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혹여 자리가 주저앉아 다른 동물의 침입은 받지 않았는지....
산골오두막에서 배동분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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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편지 -- 세상에 처음 왔으니...
하늘마음 |
조회수 : 1,234 |
추천수 : 19
작성일 : 2005-07-04 19: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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