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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명장면, 생활속의 즐거움

산골편지 -- 칼가는 아이

| 조회수 : 1,371 | 추천수 : 20
작성일 : 2005-05-26 14:21:16
2002년 5월 13일 햇살이 따가운 날에


도시에서도 그랬지만 주부는 칼이 잘 들어야 일이 수월하다.
도시에서는 아버지께서 갈아주셨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친정에 가겠다고 전화드리면 대뜸
"막내야, 칼 신문지에 잘 싸가지고 가방에 찔러넣어오너라."
하신다.
그러면 난 집에 있는 칼은 다 갖고 나선다.

딸이 들어서면 딸 얼굴도 안보시고 가방 먼저 받아 칼부터 꺼내신다.
그러시고는 당뇨병으로 힘든 몸을 어찌 어찌하여 하루 종일 칼만 가신다.
엄지 손가락으로 날을 슥 문질러 보았다 다시 갈았다를 반복하시며 하루 종일 잘 노신다.

다리가 굳어진다며 의자를 찾으시고 다시 자리를 고쳐 앉으시면 한동안 다시 칼을 가신다.

이 칼로 어찌 살았느냐고 계속 중얼거리시며 날이 서기를 기다리신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한참만에 엄마가 우리 집에 오셨는데 신문지에 싼 것을 내놓으신다.

"막내야, 아버지가 병원에 실려가시기 전날 네 칼 마저 한 개 두고 간 것 갈아서는 이리 싸놓으시고 가셨구나."
엄마와 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한 겹 한 겹 신문지를 풀며 아버지의 애린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리고 그 위로 다 헐어버린 내 상처에 애비의 애림이 흘러내린다.

한동안 그 칼을 쓰면서 '이제는 이 도시에서 누가 내 칼을 갈아주나.'하고 혼잣말을 하곤했다.

그리고 귀농
한동안 그 칼을 썼으니 얼마나 칼이 무뎌졌겠는가.
오는 이 마다 칼을 갈아 쓰란다.
갈아써도 되지만 왠지 내키지 않았다.
아마도 아버지의 손끝을 느끼고 싶어서이리라.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너무 들지 않으니 손가락이 위험할 지경까지 되었다.
혼자 칼을 간다.

초보농사꾼이 낫을 간다고 사다놓은 슷돌에 나의 아버지를 흉내내며 이젠 딸이 칼을 간다.
먼저 물을 숫돌 위에 적시고 그 위에 칼을 반복하여 문지른다.
이 방법이 맞는지 틀리는지 조차 모른다.

물을 부으면 아버지의 얼굴이 흘러내리고 그 위로 눈물이 구른다.
눈이 침침하여 이내 때려친다.

그래도 갈았다고 며칠은 잘 든다.
그리고 한 일 년을 그리 살았다.
얼마 전에 선우가 낫을 간단다.
말렸다.
아직 서투르니 다음에 좀더 크면 아빠처럼 씩씩하게 갈라고 했다.
아이는 알았다고 하고는 나모르게 낫을 반듯하게 갈아놓았다.
그래도 칭찬을 아꼈다.
자꾸 할까봐.

그리고 어느 날 혼잣말로
'칼이 이리 안드는데 칼도 안갈아주고....' 초보농사꾼에게 불평하는 소리를 선우가 들은 모양이다.
"엄마, 저 칼 잘갈 수 있어요."
"이 담에 갈아주렴"

칼을 갈려면 이 추위에 물을 밖에서 만져야 하고 그러면 손이 얼어터질 지경일텐데 하는 생각만 했다.
그 땐 한 겨울이었다.
아이는 칼을 멋지게 갈아와서는 혼이 날까봐 식탁 위에 슬그머니 올려놓고 가버린다.

내 아버지의 그림자가 보인다.
아무말 없이 칼을 써보니 내가 간 것과는 질이 다르다.

아이에게 진심으로 고맙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사실 너무 요긴하게 칼을 쓰기 때문에 그것은 당연한 말이었다.

작년에 야콘캐는 날 부엌 칼을 가지고 밭에 갔다가 잃어버리고 왔다.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올해 비닐을 치기 위해 올라갔다가 초보농사꾼이 발견하고 찾아내려 왔다.

선우가 오길 기다렸다.
"선우야, 엄마 칼 좀 갈아줄래?"
"네~~에~~~"
한 톤이 높다.

숯돌을 비스듬히 놓고 자리를 잡는다.
멀리서 보니 그렇게 신중할 수가 없다.

"아버지, 제 칼 걱정마세요. 선우가 잘 하고 있어요. 그곳에서도 남의 무디어진 칼을 갈아주고 계시는지요?"


아버지가 보고싶은 날에 산골오두막에서 배동분 소피아



9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서순덕
    '05.5.26 4:33 PM

    미워용!!! 눈물나구.... 울아빠생각나구....이~~씨~~~ㅇ

  • 2. 이규원
    '05.5.26 5:45 PM

    저도 소피아님 미워요.
    어쩜
    글을 잔잔하게 쓰신데요!
    님의 글을 대하니
    갑자기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가 보고싶네요.

  • 3. 수산나
    '05.5.26 5:52 PM

    소피아님 글보니 눈물나네요
    10년전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나서
    울아버지도 칼 잘갈아주셨는데...
    아버지가 쓰시던 숫돌도 아직 있구요
    선우 칼가는 자세가 제법인데요

  • 4. indigo
    '05.5.26 6:42 PM

    전에 올렸던 글이네요
    이유가 있는지..

  • 5. 하늘마음
    '05.5.26 10:37 PM

    아버지 생각이 나셨군요.
    저도 칼을 갈면서 아버지 생각을 하게 되지요.

    그리고 indigo님, 처음에는 몇 개의 글을 올리다 시리즈로 올리게 되었지요.
    그래서 이번이 이 글 차례구요. 이유는 그뿐입니다.^^

    모든 분들 그저 건강하고 나날이 행복하실....

  • 6. 냉동
    '05.5.26 11:17 PM

    과거를 모르면 미래가 없지요^
    좋은글 읽었습니다.

  • 7. 키리
    '05.5.27 8:59 AM

    저는 친부모 다 살아계시지만 할머니 생각에 눈물이 나는 군요.
    늘 님의 글을 읽으면서 가슴 뻐근함을 느낍니다.
    행복하시고 글 많이 올려주세요.

  • 8. intotheself
    '05.5.27 9:32 AM

    하늘마음님

    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생활을 보여주는 그런 글은 없어서 아쉽군요.

    귀농 이후 지금은 어떻게 살고 계신가

    혼자 상상을 하는 아침입니다.

    저는 돌아가신 아버지하면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바로 전축에 대한 추억입니다.

    고등학교 때 더 공부하고 싶어서 방학이면 졸라서 서울에 올라와 있곤 했지요.

    어린 나이에 친척집에서 보내는 한 달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습니다.

    그 때 처음으로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아주 절실하게 생각을 했었지요.

    조그만 일에도 눈물이 나고

    길거리를 걷다가 음반점에서 들려오는 음악에도 감성이 반응하던 시절

    우연히 듣게 된 클래식 음악에 반해서 무작정 음반을 하나 사 들고

    집으로 전화했습니다.

    아버지가 받으시길래 아빠,전축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말을 하고는 잊어버렸습니다.

    그런데 다시 시골로 내려가니 집에 전축이 있는 것입니다.

    산 전축이 아니고

    기술선생님에게 부탁해서 만들었노라고 말하자면

    사제 전축인 셈인데 그 때부터 저의 음악과의 만남이 시작되었고

    아버지 하면 이상하게 제겐 전축이 떠오르는군요.

    제가 이 세상에 없을 때

    우리 아이들은 어떤 엄마로 기억할 것인가

    두려운 마음으로 공상을 하게 되는 아침이기도 하고요.

  • 9. 사과나무
    '05.5.27 12:32 PM

    지금 사무실에서 눈물 닦아내느라 바쁘네요..
    우리 아버지는 뭐가 그리 바쁘신지 저 초등학교 입학하는것도 못보시고
    저세상에 가셨는데
    그러보 보니 거의 30년이 다 되어가네요..
    아이 엄마가 되어보니 부모의 잘하고 못하고에 상관없이
    그 존재자체가 큰 힘이 된다는걸 느낍니다.
    별로 아버지의 기억도 없는 저도 가끔은 그리운데
    하늘마음님은 얼마나 그리우실까요..
    우리모두 살아생전 부모님께 잘해야되요
    안그럼 평생 가슴에 한으로 남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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