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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편지 -- 이럴수가, 이럴수가!

| 조회수 : 2,140 | 추천수 : 15
작성일 : 2005-03-07 18:43:49
사람도 처음엔 좋았던 사람도 끝날 땐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도 뒤끝이 안좋은 것이 있는가보다.

목련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불영계곡의 목련이 안좋은 뒷끝을 보이고 있다.

한창일 때는 그 어느 꽃보다 예쁘고 소담스럽지만 꽃이 질 때에는 길바닥을 지저분하게 하곤 스러진다.

그런 이유로 목련을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가 향기까지 없으니 어느 것 하나 끌어안을 단서를 찾을 수가 없다.

어찌 보면 내 안에 욕심이 많아서인 것 같다. 새봄에 싹을 내밀 때의 경이로움, 겨우내 그 속에서 꼬물락거리다 예쁜 꽃을 피울 때의 '눈의 시림'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하는데 말이다.

내 자신의 몸집이 작아서 그런지 소담스런 꽃보다는 사과씨만한 꽃을 좋아한다.
라일락과 같은...

그 작은 연보라빛이 좋고 멀리까지 따라와 치마폭에 안기는 향기가 더 없이 좋다.

우리나라의 벚꽃 축제처럼 유럽에는 '라일락 타임'이라 하여 비슷한 자연도취의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이 산골에 올 해는 라일락을 몇 그루 심어야겠다.
도시에서 찌든 몸을 풀고자 찾는 이에게 라일락 향기를 듬뿍 담아주기 위해.....


************************************************************
봄이 된지 오래되었건만 초보농사꾼의 논과 밭에는 농부의 손길은 커녕 눈길 한 번 받은 흔적이 없다.

당연하다.
오늘까지 논과 밭쪽으로 고개 한 번 돌리지 못했으니 말이다.
속모르는 사람은 게으르다고 하겠지만 그 이유에는 너무 큰 아픔이 있어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우리가 귀농하고 일어난 사건 중에 상처로 남아 지워지지 않지만 아는 의사선생님의 부탁으로 그 분 게시판에 이 이야기를 처음 세상에 올렸으니 용기를 내어 풀어내고자 한다.

귀농하고 8개월 정도 되었을 때였다.
햇살이 따사로워 아이들 학교보내고 산골부부는 각자의 일을 하러 흩어졌다.

난 집 옆을 정리하였고 농사꾼은 논에 가겠다며 삽들고 사라졌다.
오랫만에 하는 정리라 여기가면 여기가 심난하고 저기가면 거기붙어 치우고, 시골집은 치워도 때깔도 안난다.

한창 그러고 있는데 어디서 무슨 소리가 들리긴 들리는데 알 수 없었다.
다시 일을 시작했고 이젠 큰소리로
"선우엄마, 선우엄마, 불이야! 불!"

고개를 들어보니 저 윗 밭 옆 남의 산에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하고 난 뒤의 모습처럼 검은 기둥연기가 시커멓게 올라가고 있었다.

가슴은 떨어져 땅밑에서 구르고 그것에 채여 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
119에 신고하고 이웃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고는 얼떨결에 싸리비를 들고 올라갔다.

꼭대기 밭까지 가는데 몇 번을 쉬어야 했던가. 입에서 화약냄새가 올라오고 눈물이 위로 위로 솟아나고.....

산에 도착하니 남편은 위에서 끄고 있는지 보이지 않았고 찾을 시간에 하나라도 꺼야 한다는 생각에 빗자루를 두들기니 불똥이 멀리로 튀어 더 빠른 속도로 타들어갔다.

그래서 원래 삽으로 진화한다는 사실도 늦게서야 알았다.
빗자루는 집어던지고 맨 손으로 흙을 파 던지기 시작했다.

"이럴수가, 이럴수가, 엄마!"
흙보다는 눈물로 불을 끄는 편이 더 나았다.

산은 건조하여 종아타들어가듯 타들어갔고 호수에 돌멩이를 던지면 동그라미가 순식간에 호수 전체로 번지듯 산은 타들어갔다.

'사람은 이럴 때 자살하는가보다'
'이렇게 산과 산으로 둘러싸인 곳인데 어디까지 탈까?'

그 와중에 불끄러온 이웃 분이 얼굴에 온통 화상을 입고 포항병원으로 호송중이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

'타향에 와서 정붙이고, 살붙이고 살려했는데 이리되는구나'

'온 산을 다 태우고 나면 우리는.....'

'그래 불에 뛰어들자. 그러면 모든 것을 잊으리. 그러고나면 우리 아이들은.....'

미친듯이 흙을 퍼 던지는데 마을분들이 도착했고 군청과 면의 산불진화팀이 도착하고, 헬기가 뜨고.....

50-60명 되는 사람들이 산골을 덮었고 헬기가 2대씩 뜨고, 소방차와 차들이 내 머리만큼이나 엉켜있었다.

어느 정도 불길이 잡히자 사람을 심문하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죄인다루듯하는 태도에 화가 목까지 치밀어 올라 몇 번 말다툼을 해야 했다.

왜 사람들은 이런 일을 순리대로, 체계적으로, 순서에 입각해서 하지 못할까.
그런 생각이 이 마당에 무슨 소용이겠는가...

한 군데서도 아닌 군청, 면, 경찰서 등 이곳 저곳에서.....
결국 남편은 군청사람들 차를 타고 군청으로 떠났다.

집앞 비포장도로를 막 빠져나가는데 하필 산골아이들이 그 길로 걸어오며 지애비가 탄 차와 스쳐지나갔다.

그 때의 그 감정은 불이 났을 때의 감정보다 더 격앙되어 온 몸을 식가위로 고기자르듯 찢어놓았다.
차 안에서 산골아이들을 본 애비의 심정은.........

큰놈은 나이값을 하는지 나쁜 일이 산골에 일어났다는 것을 가슴으로 받아들인다.
이것 저것 묻는 두 아이를 꼭 끌어안고 들어갔다.

밖에서는 재발을 염려하여 진화팀이 철수를 않고 있었고 집전화는 걸려오는 전화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사람은 왜 되새김질하는 기능이 있어 같은 고통을 생각할 때마다 받는지 모르겠다.
일전에 아는 분 홈페이지에 글올릴 때 눈물이 나고 가슴이 애려 날밤을 새웠는데 또 이리 주책없이 물이 흐른다.

'''''''''''''''

'''''''''''''''
저녁에 군청에 갔다. 안그래도 나까지 심문한다고 하기에 남편이 아이봐줄 사람도 없는데 자신 혼자만 하자고 해서 그리하고 있는중이라고 했다.

내가 심문할 것이 있으면 하겠다고 했고 나에 대한 심문이 시작되었다.
늦도록 조사를 받고 산골로 돌아오니 아이들은 자고 이웃집 아주머니가 아이들을 안심시켜 재웠다며 말을 흐리셨다.

진화팀도 9시가 넘어 철수했다고.....

이제 산골에 토끼가족만 남았다.
하나 남은 청심환을 꺼내 반씩 나누어먹고 차를 한 잔 마셨다.

엉망이 된 마음만큼이나 청심환 맛과 커피향이 어울리지 못했다.
산골은 예전과 다름없이 말이 없었다.

그 날 이후 낮에도 혼자 밖을 나가지 못했고 화장실도 아이들이나 남편과 함께 가야했다.

어두워지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산쪽으로 어쩌다 고개를 돌리면 악을 악을 쓰며 뛰어들어오기를 한동안하였다.

그 뿐이 아니다. 환청까지 들리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자꾸 "선우엄마, 선우엄마!!!"하며 애타게 부르는 것 같아 몇 번씩 허공에 대고 대답을 하곤 했다.

남편도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당분간 내게 선우엄마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고 한동안 남편은 호칭없이 용건만 말해야 했다.

산주인이 이웃 세 분 명의로 되어 있어 합의서를 받아내는 데도....
놀란 가슴을 추스릴 여유같은 것은 사치.

그러고 한 해가 가고 봄이 되었다.
그 산에 겨울 눈이 녹아서부터 오늘까지 초보농사꾼은 꼬박 엎드려 나무베어내고, 잔나무들 베어내고 적당한 간격으로 끌어다 쌓아 줄을 마추어 새로 나무심을 준비를 했다.

심어줄 소나무도 구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산주에게 상처받는 일이 잦았다.
아침 일찍 찾아오셔서는 대강 하다가 못하면 내년으로 미루려고 그러는 거 아니냐 등등

아침만 되면, 개만 짖으면 로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다.
농사준비도 않고 두 부부 산에 엎드려 최선을 다해 일을 지정작업을 하면 할수록 가슴에 상처의 말만 남아 몸보다 가슴이 더 괴로워했다.

하루는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어르신, 어르신도 자식키우시는 분이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너무 그러시면 정말 안됩니다."
왜 그리 눈물은 쏟아지는지....

오늘 결국 품을 샀다.
우리가 심으면 잘못 심었다고 할까봐 그 일을 많이 해보신 아주머니 다섯 분의 품을.

나무를 심고 그 위에 눈물을 뿌려주고 흙을 덮었다.
이제 여름에 풀베어주는 작업을 해 주고, 내년에 비료주고, 풀베고, 죽은 나무 보식해 주고, 후년에 풀베고...........

저녁에 일꾼들이 돌아가고 초보농사꾼은 덕지 덕지 부르튼 입으로
"선우엄마, 마음고생시켜서 미안해. 수고했어."
난 말없이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
그 일을 낱낱이 떠올리니 가슴 속의 탄내도 덩달아 피어오른다.
애시당초 잠들기는 그른 것 같아 아이들이 요즘 듣는 길거리표 댄스곡을 크게 틀어놓았다.

내 타는 마음을 읽었는지 겨우내 더욱 가까워진 별과 달이 문 좀 열어달라 한다.
고맙지만 나중에 탄내가 가라앉으면 열어주마 하고 얘기해야겠다.

2002년 4월 1일
산골오두막에서 배동분 소피아





1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행복이머무는꽃집
    '05.3.7 9:48 PM

    너무도 힘든 일을 겪으시고 마음 고생하신걸 생각하니 가슴이 저려오네요..
    눈물로 심은 나무들은 두분의 열정과 땀을 먹고 잘 자라서 두분의 마음을
    푸르게 덮어 주리라 믿습니다..
    사람들한테 입은 상처들이 빨리 씻은듯 낫길 바라며..소피아님 힘내세요!!

  • 2. 김혜경
    '05.3.7 10:51 PM

    아....눈물이 납니다...얼마나 막막하셨을지...다는 아니지만 짐작은 갑니다...

    요즘 좀 뜸하신 것 같아서...어젠 글 검색까지 하고 배동분님 사이트에게 구경갔었어요.

    우리 모두 힘내요!!

  • 3. 메밀꽃
    '05.3.8 12:00 AM

    저도 마음이 아파오네요...
    힘내세요.... 앞으론 다 잘될거예요^^*

  • 4. 냉동
    '05.3.8 12:54 AM

    힘든 시련이 있었군요.옛말 말씀에 길을 가도 오르락과 내리락이 있다는데 이젠 좋아질겁니다.
    힘내세요! 아자아자!!

  • 5. artmania
    '05.3.8 9:33 AM

    아~ 저산에서 그런일 일이 있으셨군요.
    글을 읽기전에는 그저 '아름답다'는 생각만했는데,
    그런 역경이 담기 '자연'이었군요.
    잘 이겨내시고.. 그리고 이겨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소피아'님이신가요? 전 '안젤라'입니다.
    앞으로 종종 글로 뵙겠습니다.

  • 6. 밍키
    '05.3.8 10:22 AM

    맘이 아파요. 힘내세요..

  • 7. 솜씨
    '05.3.8 2:55 PM

    소피아 님, 귀농하신 분인가봐요.

    글 읽으니 가슴이 먹먹하네요....
    정말정말 힘드신 시간을 보내신 것 같네요.
    화마 보다도 사람들에게 입은 상처가 더 크신것 같습니다.


    기운내세요.
    소피아 님의 눈물을 먹고 자란 나무들이 탈 없이 잘 커주기를 바랍니다.

  • 8. 김정희
    '05.3.8 3:26 PM

    마음이 아파서 .......
    눈물이 납니다. 이겨내고 계신거죠?

    힘내세요. 세월이 약이라더니......
    힘내세요....

  • 9. 지열맘
    '05.3.8 3:32 PM

    맘이 정말 아프네요.. 힘내세요.. 이제 괜찮으시죠?
    정말 사람에게 입는 상처가 더 크네요.. 그냥.. 묻어두세요..

  • 10. 수산나
    '05.3.8 5:18 PM

    많이 힘드셨겠어요
    어디서 본 이름이었더라 아 ㅡ
    몇번 농장에 들려 눈팅만 했었어요
    힘내세요

  • 11. 경빈마마
    '05.3.8 9:35 PM

    여기서나 저기서나 불이 왠수입니다.
    그 마음 저는 압니다.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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