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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명장면, 생활속의 즐거움

산골편지 -- 맑아진다는 것

| 조회수 : 1,082 | 추천수 : 20
작성일 : 2004-09-22 02:19:42
다른 계절에는 그런 바램이 없는데 가을에는 마음을 하늘에 대고 열고 싶다.
그리되면 그동안 퇴비보다도 더 썩고 냄새나는 마음의 찌꺼기를 끄집어내고 햇빛에 가슴 구석 구석까지 소독을 해댈 수 있기 때문이다.

욕심도, 미움도, 시기, 질투 모두 표백되면 산골의 넉넉함, 신비스러움, 너그러움 만을 담아두고 싶다.

아직은 도시의 잔재를 버리지 못한 채(버리지 못했는지 버리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는지...)양다리 걸치고 살다보니 머리가 갈피를 못잡을 때가 허다하다.
그러니 나쁜 머리 고생시킬 필요가 뭐있겠는가.

서리걷이하듯 서둘러 도시의 것들은 버리고 내 산골의 모습을 닮아야겠다.그러면 제일 좋아할 친구들 얼굴이 떠오른다.



홀딱벗고 새, 새이름과는 달리 방정맞은 소리를 내는 꾀꼬리, 달맞이꽃, 꿩가족, 다람쥐, 미움덩이 청솔모 등이 펄쩍 펄쩍 뛸 생각을 하니 빙그레 웃음이 묻어난다.

*****************************************
시골일이라는 것이 미루어서는 안되는 일이 많다.
도시에서야 오늘 못하면 내일한다해도 큰 무리가 없는 경우가 많지만 시골일은 다르다.

어제 한 밤중에 야콘과 씨름한 생각을 하면 오늘 정도는 늦잠을 좀 자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손목이 시도록 야콘캐고, 나르고, 포장하고 한 몸뚱이를 곤질러 세워보지만 머리와는 달리 몸뚱이는 옆으로 옆으로 기울어진다. 어서 털고 나가야 한다. 상품가치가 있는 것을 고르고 난 것들을 씻어 효소를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안그러면 얼거나, 시들거나 하여 미룰 수가 없다.
어쨋든 집에 있는 솔이란 솔은 다 꺼내 왔다.
하다못해 칫솔부터 항아리닦는 솔까지 쓰임새나 크기에 관계없이 다 동원시켰다.

아예 바깥 마당에 있는 수돗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야콘 하나 하나를 손바닥에 놓고 이 솔, 저 솔을 번갈아 가며 닦다보니 끝이 없다.

한 시간이 넘게 문질렀는데도 남은 자루는 열 손가락이 모자란다.
손목에, 허리까지 이젠 한계다 싶어 무식한 방법을 생각해냈다.

큰 고무통에 야콘을 쏟아 붇고 지들끼리 부대끼게 계속 문지르는 방법을.
깨끗하게 씻기지 않을 것 같아 망설였는데 왠걸 몸의 흙을 물에 남겨두고 제 몸만 나오는 거였다.

솔로 하나 하나 씻은 것과 손색이 없다.
허리를 펴면서 물 속에 잔뜩 잠긴 야콘을 보았다.
우리들도 저 물 속의 야콘과 다름이 없지 않은가.

사회라는 울타리 속에 잠겨 저마다의 가치관을 갖고 살아간다.
그러다보니 서로 부딪치고 상대방의 단점을 보물찾기하듯 집어서는 그 자리에서 뿜어낸다.

상대방의 티끌만보고 그것도 모자라 제 것은 두고 상대방의 그것만 털어주겠다고 대들기 일쑤다.

그러나 야콘은 그게 아니다. 서로의 몸을 내어주어 서로의 흙을 털어낸다.
상대방의 것도 털어주고 내 흠도 털어주면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물을 쏟아버릴 때마다 같이 쏟아져 나왔다.

어둑 어둑해져서야 씻는 일이 끝났다. 아마 남의 흙만 터는 방법을 고집했더라면 3분의 1도 못했을 것이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이치는 똑같다는 생각이 발걸음을 따라다녔다.
씻은 야콘을 수돗가에 두자니 얼어버릴 것 같아 제 몸에 맞는 이불을 덮어주었다.

달 아래 야콘을 두고 들어오는데 낮에 물 속에서 뽀얗게 속살을 드러내고 웃던 야콘의 여운이 따라들어온다.
우리는 자신을 내어주는 것에 인색했다. 단점까지도...........

자신을 내어 맡기고 상대방이 내어놓은 것을 서로 쓸어내릴 수 있을 때 모두가 맑아질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내 자신 그렇게 못하면서...................

****************************************

걱정이 생겼다.
집 앞에 거의 차를 세워 두는데 언제부턴가 새 한 마리가 진종일 부리로 차의 백미러를 쪼는 거였다. 며칠째.

수돗가에서 일을 하다 '톡톡'하는 소리가 나기에 무심히 흘려 버리다 뒤돌아 보니 아무도 없었다.
별일 아니다 싶어 하던 일을 계속하는데 다시 귀에 들어와 앉는 소리가 있었다. 가까이 가 보니 새 한 마리가 이 쪽 저 쪽 백미러를 번갈아 날아 다니며 쪼는 거였다.

그러다 가만히 거울을 들여다보고 무어라 중얼거린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그 친구를 바라보고 있자니 가슴이 자꾸 저려왔다.

쏟아놓은 배설물이 백미러 밑과 유리에 보기 싫게 쌓여 있다.
그러다 말겠지 하는 생각에 그대로 두었는데 저물어도 뜰 줄을 모랐다.
배설물이 문제가 아니라 밥도 안먹고 그러고 있으면 탈진할 것 같아 남편과 머리를 짜냈다.

결국 차를 논가에 갖다 놓았다. 그러나 다음 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여전히 출근하여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다.

내일은 먹이라도 먹고 저러는지 보초를 설 생각이다.
그래야 먹이를 뿌려 주던지 할 것 아닌가.
동료들에게 왕따당하고 와서 홀로 마을을 쏟아내고 있는건 아닌지 자꾸 마음이 쓰인다.


2001년 11월 5일에
갑자기 개구리 소리가 듣고 싶은 날에 배동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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