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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편지 -- 엄마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난다.

| 조회수 : 2,606 | 추천수 : 32
작성일 : 2004-04-27 13:00:47


법정스님께서 이해인 수녀님께 "수녀님은 그래 시를 쓴다고 하면서도 기껏 아는 게 뻐꾹새 소리밖에 없느냐"고 핀잔을 주시며 일일이 새이름을 구별해 가르쳐 주셨다듯이 나 역시 새소리는 뜸부기,까치,까마귀 소리밖에 모른다.

또 설령 열심히 알려줘도 그 소리가 그 소리같고 그 모습이 그 모습같아 난처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 뿐인가.
나물이름,들꽃이름도 매한가지다.

특히 나물은 더 까막눈이라 왼손에 샘플을 들고 다니면서도 똑같은 것 뜯기가 여간 능력에 부치는 것이 아니다.

이웃 형님의 놀림도 놀림이지만 이곳 산골에서 뿌리내릴 사람이다보니 내 자신 실망스럽기까지 하다.

오늘은 샘플로 뜯어 준 것이 시들어 꼬부라지도록 똑같은 것을 못뜯었다.
나물과 새와 들꽃들과 정말 친해지고 싶은데 잘 안되니 그 친구들에게 미안하다.
******************

부모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다.
"공부는 엄마주려고 하니? 너 위해서 하지."

내가 한국생산성본부 첫 여자 연구원으로 입사했을 때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난 사실 학교다닐 때 정말이지 엄마위해 공부할 때가 많았어. 그 정도로 엄만 내게 헌신적이셨지."

그 말은 사실이었다.
여느 엄마가 자식에게 헌신적이지 않을까마는 얼굴이 안개꽃처럼 하얀 내 엄마는 당신은 없고 오직 자식만 있었다.

어쩌다 한 겨울 새벽에 도서실가는 것이 귀찮아 포기하려다가도 내 에미 새벽부터 도시락 싸놓고 자식 머리맡에서 시계 초세고 계시는 모습이 가슴저려 졸면서 도서실갈 때가 부지기수였다.

또 개인주택에 산 탓에 한 겨울 자식이 신을 신발을 미리 방안에 갖다놓으시고는 혹여 덜 따뜻할세라 당신 옷으로 덮어두시는 엄마를 생각하면 도서실에서 잠시 졸다가도 벌떡 일어나 앉곤했었다.

그 덕에 이 머리로 대학.대학원을 수석졸업할 수 있었다.
엄마는 늘 "여자도 많이 배워 활동적인 여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유학도 자신있으면 해보라고 부추겨서 아버지에게 시집이나 보내지 쓸데없는 소리한다며 핀잔을 들으시기도 했다.

결국 일본유학을 계획하고 사전답사도 다녀왔었다.

그러던중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하느라 유학을 덮어놓고 있었다.
몇 달 전에 풍을 맞으신 엄마를 보기 위해 서울에 갔었다.

시원찮은 발을 끌며
"막내야, 그 때 유학을 더 서둘러 보냈더라면 벌써 다녀왔을텐데...."하셨다.
산골에 들어가 뙤앝볕에 고추밭매고 나물뜯는 막내딸이 가슴에 저려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앉아 있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며 눈에서 맑은 물을 흠치셨다.

그 때 내 가슴은 두릅나무 가시보다도 더 큰 가시가 파고드는 것같았다.

그 때 보았다.
우리 고추밭골보다도 더 깊이 깊이 패인 엄마의 주름을...

그도 그럴 것이 엄마는 충청도의 어느 종가집 맏며느리셨다.
머슴까지 13명의 뒷치닥거리를 다 해야 하는 전형적인 종가집.

이러다가 딸 다섯을 다 시골남자와 결혼시키겠다 싶어 밤마다 아버지 옆구리찔러 서울가자 하셨었단다.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일축하시던 아버지도 결국 엄마의 끈질긴 설득끝에 아이들을 서울에서 공부시켜 서울남자와 결혼시키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그때 난 코흘리개였고.

그랬더니 결국 막내딸이 다시산골로 들어가 농사짓는 모습을 보게 되었으니 그 에미의 가슴은 어떠했을까.

그 생각만 하면 어느새 목구멍이,목구멍이 불덩이로 막히는 것같다.

병든 엄마가 보고싶을 때마다 읽는 글이 있다.
피천득님의 '엄마'라는 글이다.

"엄마가 나의 엄마였다는 것은 내가 타고난 영광이었다....내 기억으로는 그는 나에게나 남에게나 거짓말한 일이 없고,거만하거나 비겁하거나 몰인정한 적이 없었다.
내게 좋은 점이 있다면 엄마한테서 받은 것이요,내가 많은 결점을 지닌 것은 엄마를 일찍이 잃어버려 그의 사랑 속에서 자라자지 못한 때문이다."

이 글을 맨 처음 읽었을 때 많이 울었다.
이 밤에 혼자 중얼거려본다.

'엄마 나도 엄마가 내 엄마라는 사실이 영광이야. 사람은 어느 하늘 아래에 머리를 두고 살든 착하게 넉넉한 마음으로 살면 행복한거야. 엄마, 너무 마음아파 하지마.'

******************************
오늘은 과꽃같은 우리 엄마가 보고싶을 때 보려고 과꽃씨를 뿌렸다. 가뭄에 말라죽지 않고 흐드러지게 피어 이 산골이 엄마의 향기로 가득찼으면 좋겠다싶어......

도시에 있을 때에도 글을 썼었다. 책으로 내서 울 엄마에게 드리려고..... 이 곳 산골에 와서 더 열심히 쓰고 있다.

오늘따라 하늘에 별도 몇낱없다. 모두 지에미 품에 들어가 자는가보다. 바람도 자고 텃밭의 마늘들도 자겠지.
나도 자기 전에 병든 엄마에게 목소리 공양을 해야겠다.


2001.5.13일
엄마가 무척이나 보고싶던 날에.

산골에서 배 소피아.

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푸른바다
    '04.4.27 1:15 PM

    엄마가 보고 싶군요 서울에 살땐 그렇게 모르더니 떨어져사니 더욱 보고싶은 우리엄마 엄마 사랑해요 나또한 우리 엄마 만큼 딸에게 할 수있을까 하죠

  • 2. 최미경
    '04.4.27 3:29 PM

    그냥 아무것도 받지 않아도 그냥 자식을 바라보는 거 하나만으로도 눈시울을 붉히시는 엄마가 생각납니다..글이 참.,..........따스합니다.

  • 3. 칼라(구경아)
    '04.4.27 4:27 PM

    하늘마음님의마음은 산골의 순순한 자연만큼이나 맑게느껴져요.
    산골에서 지내시면 그렇게 되남요?
    왠지 작은야생화같다는느낌이네요............

  • 4. 집이야기
    '04.4.27 6:55 PM

    "너 때문에 살았다." 하셨죠.
    저는 그렇게 못합니다. 절대로 엄마 만큼은 못합니다.
    막 유방암 수술한 엄마 두고 하나 밖에 없는 딸년은 시집갔습니다.
    그 딸년 회사 간 사이에 우렁각시처럼 김치 만들어 놓고, 청소해 놓고,
    시골집에서 꺽어 오신 진달래랑 들국화랑 온 집안에 치장해 주시고
    퇴근하기 전에 시골집으로 돌아가시던 분.
    전생에 내가 엄마한테 엄청난 은혜를 베풀었을꺼야. 우린 그런 사일꺼야.
    그렇게 위로했었지요.
    아직도 받기만 하는 습관은 우리의 인연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일까요?

    저는 그렇게 못합니다. 우리 엄마처럼.
    소피아님, 감동적인 글이었습니다.
    아주 작은 몸짓 하나로도 우리 엄마 행복해 하는데....
    왜 못하는지 원. 내가 미워지는 군요.

  • 5. 레아맘
    '04.4.27 7:37 PM

    마음이 짠 ~해지네요....저도 아기엄마가 된 이후로는 정말 '엄마'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납니다.
    언제 효도할까....벌써 내 자식 생각에 온 마음을 쏟고 있으니....에고..그래서 내리사랑이라 하는걸까요..

  • 6. 복주아
    '04.4.27 10:51 PM

    소피아님!......
    가슴이 터질듯한 반성의 답답함이 밀려옵니다.
    어쩜 이리도 구구절절 가슴에 와닿는 마음의 표현을 잘 하셨는지....
    저 정말 감동했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계신 친정어머니를 생각하며...
    엄...마! 불러봅니다.

  • 7. 하늘마음
    '04.4.29 12:32 AM

    푸른바다님, 최미경님, 칼라님, 집이야기님, 레아맘님, 복주아님~~~~
    많은 사람이 엄마하면 그저 가슴 울렁임을 느끼지요.
    모두가 그렇다고 보면 되겠지요.

    저 역시 그렇습니다.
    또 글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그리 엄마 가슴에 못박고 내려온 마당이라 더욱 세월이 무겁게 느껴집니다.

    엄마 살아계실 때,
    엄마가 활짝 웃으실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엄마가 그런 말씀을 하셔요.
    "네 얼굴이 편안해 보이는 것을 보니 조금 마음이 풀린다"고요.

    살아계실 때 목소리 공양이라도 자주 드려야겠습니다.

    모두 건강하시구요.
    안녕히 주무세요.

    산골 오두막에서 배동분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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