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 친구가 참 신기해요.
몇 년째 같이 알바하는 친구예요. 둘 다 30대 초반 싱글.
밤 11시쯤 일을 마치고 집이 같은 방향이라 같이 걸어오는데..
항상 제가 먼저 아는 척하고 인사하고.. '왔어?' '날씨가 춥다' 등등..
대화도 제가 항상 먼저 화제를 꺼내야 돼요.
정말 독특한 건.. 제가 입을 다물고 있으면 그 친구도 끝까지 말을 안 한다는 점이에요.
그러다가 분위기가 싸~ 해지죠. 이해는 안 가는데 싸운 사람들 같은 분위기가 돼요.
저는 그 친구와 같이 있을 때 오버하는 경향이 있어요.
친구가 불편해서.. 마음에 없는 말을 하거나 과장되게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웃기지도 않은데 소리 내서 웃는다거나... 암튼 의식적으로 자제하려고 노력하고는 있는데..
이게 대체 뭐하는 플레인지 모르겠네요. 매번 집에 오면 힘이 쭉빠지고.ㅋㅋ
상전 모시고 다니는 것 같아요.
저도 언제나 기분이 좋은 게 아니고 우울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땐 싸움 날 것 같아요.
실제로 싸움 난 적도 있었죠. 휴우... 왜 화가 났냐면서 생사람 잡고..ㅠㅠ
뭔가 너무너무 불편해요. 그 친구도 저도 둘다 너무 예민해서. 서로 안 좋아하는 거 뻔히 아는 것 같은데ㅋㅋ
밤 11시라.. 들를 데가 있다고 핑계 댈 수도 없고, 갑자기 따로 가는 것도 넘 이상한데..
자연스럽게 헤어지고 싶어요 ㅠㅠ 알바는 넘 맘에 들어서 잘리기 전에는 절대 관둘 마음 없어요. 그 친구도 마찬가지고.
예전에 상담 선생님은 제가 관계 회복을 위한 노력을 안 한다며..
트러블이 있을 때는 솔직하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해보라는데..
별로 그렇게까지 제가 액션을 취해야 되는지...
왜 이친구한테 항상 제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좋은게 좋은 거 아닌가요? 이런 점만 아니면 그 친구 불편해할 이유도 없고..
30분 정도 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그냥 즐거운 대화 나누고 싶은데 참 부담스러워요ㅠㅠ
누군 뭐 좋아서 이야기하는 줄 아나.. 쪼금만 배려해주면 어디 덧나냐!!
뭐, 별거 아닌 일일 수도 있지만.. 넋두리하고 나니까 좀 시원하네요ㅋㅋ
편한 친구하고는 말안하고 몇 시간도 아무렇지 않은데..
이친구하고는 말안하고 있으면 꼭 싸운 것 같은 분위기가 돼버려서.. 우앙. 죽겠어요
집에 오면 제가 되게 비굴한 사람 된 것 같은 기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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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니까.. 그 친구는 관계를 놓아버리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어디 놀러가자면..좋다고 같이 가고.. 먼저 말을 걸어주면 하하호호 웃고 떠드는데..
항상 제가 액션을 취해야 따라오는 식인 것 같아요.
제가 아무것도 안하면 아무것도 아닌 관계가 돼버리는 거죠.
이상한 사람 만났네.. 하고 털어버리기에는 알아온 세월이 길고.. 저는 속으로 정도 들었는데..
이게 과연 이야기를 해서 해결될 문제일까.. 고민이네요.
그냥 끝내는 것도 방법이긴 한데 제가 상처를 받을 것 같아서 이러고 질질 끌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