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저의 절친한 후배, 후배의 남자친구,
셋이서, 학교에 들른 적이 있었어요. 저희 셋은 같은 학교 같은 과 출신이고요.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었죠. 학교 식당 쪽으로 꺾어지는 쪽이 좁게 길이 나 있어 바람이 좀더 센 편이에요.
길이 좁으니 커플이 지나가기 편하라고 제가 한두 걸음 앞서 나와 먼저 걸었습니다. 바람이 앞에서 뒤로 불고 있었죠.
그 순간 뒤에서 남자애가 하는 말이 들렸어요. 자기 여자친구인 제 후배에게 웃으며 건네는 말이었죠.
"** 누나 되게 좋은 향 난다~." (저를 가리키는 겁니다. 바람에 향이 실려갔나 봐요.)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후배가 딱 그러더라구요. 톡 쏘듯이.
"향수 뿌렸잖아."
그 말투가 어찌나 톡 쏘듯 하던지. 톡 쏘면서도 목소리를 낮출 수가 있더군요.
반응도 놀라웠지만 제게 들리길 원치는 않은 듯 낮춘 목소리도 놀라워서 저는 제 귀를 의심했어요.
그러니까 그 말은 (제가 듣는 것을 바라지 않았으므로 분명) 고운 말이 아니었던 거죠. 웃지도 않고 톡 뱉어 놓던 그 말.
흠... 그런 말 할 수도 있지, 또는 여자들 사이에서는 그런 말 하기도 한다... 생각하시는 분들 계실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 장면은 제게 잊혀지지 않고 새겨져 있어요.
그 애는... 그냥 절친한 게 아니라 저와 정말 서로를 사랑하고 신뢰하는 그런 사이라고 생각하는, 아이였거든요.
말도 별로 많지 않고 진중하고 어른스럽다는 평을 받는 그 애가
자기 속을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말했던 것이 저였고...
저는 그 말을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어요.
그런데 사람을 오래 사귀면 안 보는 게 나을지도 모를 면들이 보이는 걸까요.
저 장면과 겹쳐 떠오르는 또 다른 장면들이 있습니다.
이 후배의 친동생과 저는 함께 몇 번 만난 적이 있어요. 후배를 보고 짐작했듯 아주 밝고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였죠.
얼굴도 참 개성 있고 예뻐요. 눈이 푹 들어가고 코가 오똑한, 이국적인 이미지죠.
쌍꺼풀이 뚜렷하고.
그래서 그 아이(동생)가 없는 자리에서, 네 동생 참 예쁘다, 얼굴도 이국적이고... 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후배가 대번에 그러더라구요.
"걔 쌍꺼풀 한 거에요."
이 때도 저는 귀가 의심스러웠습니다. 아~ 그러냐고 웃고 넘어갔지만
뭐랄까, 하필이면 그 순간, 에 그 말, 을 하는 사람의 인격이... 좋아 보이지 않았는데
절대 그럴 것 같지 않은 애의 입에서 그런 말이 떨어지니까요.
이것 말고도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는데...
아무튼, 제가 질문해 보고 싶은 것은
저 말들을 듣는 순간 '헉' 싶었던 제 놀라움이 좀 이상하냐는 거였어요.
이 게시판에다가 '제가 이상한가요' 류의 질문을 올리는 게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는데 ㅋㅋㅋ
(그 정도는 알아서 깨달아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
이건 정말... 미묘한 말투, 표정, 참... 거시기한 타이밍 등등이 제게는 충분히 이상하게 들리는데
(약간 비뚤어진 마음씨의 표현같아 보인달까요),
혹시 다른 이에게는 그렇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왔다갔다 할 정도로 사소한 일이라 질문합니다........
저런 말, 글쎄요. 할 수도 있긴 하겠죠. 본격적인 뒷담화도 아니고...
하지만 저 같으면 첫 번째 경우라면 '그치 좋은 냄새 나지 ^^' 했을 것 같고,
두 번째라면 '저 안 닮아서 이쁘죠 ㅋㅋ' 내지는 '자매가 다 미인이죠? ㅋㅋㅋㅋ'
어떤 것이든, 편하게 좋은 말을 했을 것 같거든요.
동생이 스스로 말하지도 않은 성형 사실을 밝히느니.
그게 그토록 '헉'스러웠던 것은... 저는 아마도 그 후배의 됨됨이에 실망을 했던 것 같아요.
그 후로도 사소하고 사소한 일들이 잊을 만 하면 한 번씩 쌓여오고 있고
다른 때에 이 후배는, 제게 너무나 진중하고 지적이며 편안한 얼굴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여전히 이 아이는 주변에서 인기도 많고, 사람들을 조용히 끌어들이는 매력으로 잘 살아가고 있어요.
저는 이제... 이 후배가 평소 감추고 있는 인격의 바닥(? 좀 심해 보일 수도 있을 표현이지만...)을
저 혼자 깨닫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지경이라, 솔직히 혼란스러워요.
혼란스러워서, 이런 글을 올려 봅니다.
너무 사소한 사례만 들어서 혹시 이게 무슨 소린가... 너무 확대해석하는 거 아닌가 싶은 분도 계실지 모르겠는데
그 외의 사소한 일들을 일일이 늘어놓기에도 제가 약간 부끄럽고, 뒷담화 하자고 장을 펼치는 것같이 되긴 싫어서 또 그렇네요.
에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