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법은 법이 아니다'라고 말한 사람이 대한민국에 있습니다. 바로 박원순씨입니다.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라고 했다는 설이 있는데, 이것은 법의 합리적 절차성에 따른 판결에 자기책임감과 법의 안정성을 고려한 가치판단의 결과입니다.
다시말해 법이 비록 악법이라도 합리적 절차에 의한 판결이라면 법의 안정성을 위해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박원순씨는 과거 강력한 통치시대에 있을 법한 법의 잣대를 2000년 총선 낙선운동때 이러한 말을 뱉었습니다. 2000년이면 현재 동지인 민주당이 집권하고 있을 때입니다. 그런데, 그 악법이란 개념이 사회가 발전할수록 과연 구분이 가능할까요? 살인자에 대한 사형제도는 범죄자에겐 악법일지 몰라도, 피해자에겐 징벌적 선일 것이고, 표현의 자유가 예술가에겐 선이지만, 교육자에겐 악법이 될 수 있습니다. 인터넷 악성댓글도 개인의 자유를 표현하는 선이라 한다면, 그 피해자에겐 자살의 고통까지도 가하는 악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사회적 합의가 되어야 하는 것인데, 그 합의된 법이 당사자의 입장에서 악법이라고 규정해 버리고 지키지 않는다면 법의 안정성은 위협받는 것이 될 것입니다.
또한 박원순씨는 북한정권을 경계하는 법률인 국보법을 용공조작 도구라고 규정하기도 했습니다. 호시탐탐 남한을 노리는 북한정권은 지구 역사상 유례가 없는 강력한 독재체제를 구축하고 인민들을 탄압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실, 박원순씨는 변호사로서 누구보다 법의 정의에 대해서 잘 알 것입니다. 법이란 그 목적이 있는 것이고, 중요한 것은 그 사용자에 따라 달리 표현되는 것이겠지요. 과거 70,80년대가 아닌 문민정부가 들어선 90년대이후부터는 이러한 용공조작보다는 실질적 간첩검거 내지는 간첩 묵인에 이르는 때라 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도 말한 박원순씨는 북한정권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밝힌 적이 없습니다. 물론 우리가 통일 후에야 가능한 소리지만, 과연 현재의 우리에게 공산주의를 용인하는게 맞는 걸까요? 지금 친북적 사고를 가진 자도 함께 살고 있으니 현실은 묵시적 용인이 되고있다 할 것이지만요.
다음은 박원순씨에게 가하는 한 시민의 작지만 큰소리 입니다.
1)변호사의 길 만으로 돈 잘벌고 나을텐데,시민운동가로서 고난의 길을 갔다는 소리는?
사실 박원순씨도 시작은 순수함 그 자체였을 것이지만, 세상에 찌들고 부딪히면서 순수함이나 열정만으로 결코 되는 것이 아님을 직감했을 것이다. 결국 돈이 필요하고 그 돈을 얻기 위해선 재벌의 아킬레스건을 쥐어뜯어야 함을 알았고 그 자체로 그의 순수성은 변해갈 수 밖에 없었다. 변호사로서 잘 나가는 것과 시민운동가는 차원이 다르다. 결국 시민운동도 하나의 사업이며 운영비 떼고 이익도 나야한다. 이런 시민운동은 돈 안되는 작은 일보다는 크고 사회적 파장이 강한 일에 매달리게 된다. 여기에 정치성까지 배합되면 더 큰 파급효과와 이익성을 추구할 수 있다. 결국 서울시장 후보로까지 그 야망을 불태우고 있는 박원순씨는 변호사의 길보다 서울시장 후보로까지 오른 자체가 훨씬 성공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압구정동에서 방배동으로 이사하면서 나락의 길로 갔다는 말을 얼마나 믿어야 하나?(방배동은 압구정동에서 퇴물이 가는곳인가?) 집이 없다는데, 부인도 사업하고 딸은 유학갈 정도인데도 이걸 믿어야 하나?(자기합리화를 위한 버팀목은 아닌가?) 지지율 5%미만이던 박원순씨가 안철수씨의 지지선언으로 일약 급등지지율을 기록했는데, 우리는 이들 두 사람에 대해서 서울시장을 논할 자격을 검증하고 있는 중이다.
2)지금의 진보는 근저엔 보수의 업적이 살아 숨쉬고 있음을 아는가?
현재 진보가 큰소리를 내고 있는 근간은 무엇인가? 그건 바로 성장의 힘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60년대에 분배를 외친다고 과연 누가 눈길이라도 준단 말인가? 성장의 바탕 위에 분배라는 2차적 가치가 부상하게 되는게 인간적 심성이다. 과거는 버리고 바꿔야 할 하릴 가치없는 악습으로 치부하고 모든 것을 자신만이 다할 수 있다는 가치판단은 앞으로 미래의 가치를 스스로 훼손시키는 것이 분명하다. 진보나 보수나 나름대로 추구하는 방향이 조금씩 틀리기에 이 사회가 돌고있는 것이 아닌가! 서로가 상충되지만 동시에 보완되기에 결국 하나의 완전한 기능이 가능하고 완성도도 높아지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결국 누가 어떤 정책을 적재적소에 정확한 타이밍에 실행하느냐 아니냐가 큰 변수일 뿐이다.
3)재벌을 보수의 가치로 치부하지 마라.
재벌은 보수가 성장의 키워드로 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가치는 여전하지만, 폐단도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폐단을 자르는 것은 진보는 물론 보수도 동참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재벌의 폐단을 보수의 가치로 격하시키는 심각성에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때도 재벌은 여전히 건재했고 오히려 이들 정권들은 재벌에 매달리기조차 하지 않았나? 이제 보수정권이라고 재벌이 잘 따르고 진보정권이라고 반대한다고도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이익을 남기는 걸 생명으로 여기는 기업집단이기에 이익 있는 곳에만 그들이 가기 마련이다. 재벌은 보수의 가치실현의 매개체일 뿐, 진보정권이라고 기업을 매도할수도 없을 것이다. 기업은 그냥 이익집단일 뿐이다. 기업들은 여당 야당 할것 없이 더 힘이 센 곳에 돈을 퍼붓기 마련인 것이고, 더욱이 센 힘으로 인식된 박원순씨에게 기업들이 돈을 뿌린 건 당연하다. 그리고 그 먹이사슬적 순환의 고리를 박원순씨도 스스로 인정한 꼴이 되었다.
4)박원순씨의 낡은 시대란 무엇인가?
박원순씨는 후보 수락연설에서 '이명박정부와 한나라당을 넘는 새로운 시대' 운운 하였다. 지금 이명박 대통령은 박원순씨가 운영하는 아름다운 재단의 적극적 기부자였다고 한다. 박원순씨가 품에 안고있는 민주당은 과연 과거의 낡은 정당이 아니란 말인가? 민주당도 정권을 잡았던 정당으로서 이미 그 한계를 보였지 않았나? 같은 세대를 절치부심한 양 당을 어느 당은 낡았고 어느 당은 그렇지 않다는 식의 발언은 서울시장이란 권력을 쟁취키 위한 일념에 합리적 사고가 배지 않은 이중적 잣대가 분명하다. 지금 한국의 정당정치는 분명 개혁의 고삐를 조일 시기이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선 과도기를 심각히 겪고 있는 산고의 시기이기도 하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를 그리고 조선의 당쟁시기를 마냥 잊고싶은 하릴없는 과거로만 보는 역사가는 없다. 자신은 최고인양 먼지없는 청정인간인냥 하는 발언들은 이후 그 한계점을 보일 즈음에 국민이 느낄 절망감을 생각하면 신중해야 할 것이라 확신한다.
4)비판자와 집행자의 차이를 극복할 준비는 되어 있는가?
박원순씨는 그동안 변호사로서 다양한 시민운동을 했지만, 동시에 정체모를 재벌들의 돈을 받았고 강남에서 살면서 보수,진보 할것없이 다양한 인맥을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남에 살면서 자식교육을 위해선 누구에게도 뒤떨어지지 않는 교육을 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있는데, 참여연대 아름다운재단 등의 비판자의 입장에서 이젠 집행자의 위치로 오르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는 박원순씨는 과연 그 한계를 극복할 자세가 되어 있는가? 바른 집행자가 되기 위해선 소수가 아닌 다수의 서울시민을 위해서 일을 해야 할 것이며, 선택의 기로에선 과연 어떤 행로를 택할지도 궁금해진다.
실로, 비판자는 기분좋은 위치지만, 집행자는 모든 시선이 자신에게 쏠려 있는 동시에 무한한 책임까지 따르는 확실히 차원이 다름을 알아야 한다.
지자체장이 된 민주당 전 의원들의 발언들을 보면, 의원시절의 탁상공론적 성격은 온데 간데 없다. 지역발전을 위한 실질적 성장동력이 중요함을 스스로 깨닫는 순간을 보면, 역시 비판자와 집행자로서의 위치는 무섭도록 다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