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엔 나라가 위태로울 때마다 스스로 목숨 걸고 나선 이들이 있었다. 우리는 이들을 의병(義兵)이라 부른다. 삼국통일 때의 화랑, 임진왜란 때의 어린 의병, 6ㆍ25전쟁 때의 학도병은 모두 10대 후반의 청소년이었다. 그리고 1963년 12월 23일.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79달러로 필리핀(170달러)과 태국(260달러)에도 크게 못 미치던 가난한 나라 대한민국. 엘리트, 대학 졸업자들은 경제성장‘종자돈’을 마련하기 위해 1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독일의 광부로 선발되어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후 한국인 광부와 간호사를 통해 한국인 근면성이 세계로 알려지게 되었고, 광부와 간호사의 헌신은 서독사회의 화제가 되면서 뤼브케 대통령은 64년에 박정희 대통령을 초청하기에 이른다.
루르 탄광지역에서의 유명한 눈물바다 이야기
박정희 대통령은 뤼브케 대통령과 광부, 간호사를
위로하기 위해 북서부 루르 탄광으로 간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애국가가 울려 퍼지자 통곡을 하기 시작했는데, 광부들은 육 여사를 붙잡고 "어머니, 어머니, 고향가고 싶어요."리고 울어댔고 박정희 대통령은 광부들을 포옹하며 통곡했다.
돌아오던 길에 뤼브케 대통령은 계속해서 박통이 울자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며 "저희 서독이 도와드리겠습니다. 울지 마세요, 도아드릴께요."를 반복했다. 이 일은 서독이 한국을 가난의 질곡에서 헤어나게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다음날 박통은 에드하르트 경제장관을 면담했는데, 박통은 2시간 동안의 면담 내내 왼손을 내밀며 돈을 꿔달라는 이야기만 했다. 결국 감동한 에드하르트 장관은 박통에게 엄청난 충고를 한다.
“한국은 산이 많다, 산이 많으면 발전을 할 수 없다. 고속도로를 닦아라, 독일 경제를 키운 건 아우토반이다, 그 동맥을 질주할 자동차 산업도 필요하다. 자동차산업은 고용창출을 하고 부품 공장을 세우게 하고, 세금이 들어오게 한다, 자동차를 만들려면 철이 필요하니 제철산업을 하라, 휘발유를 위한 석유화학도 반드시 필요하다, 출한국을 위해서는 선박회사도 필요하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를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1974년, 세계가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동안 한국은 GNP 8.1% 성장, 수출 38.3% 성장이란 대기록을 세웠다. 기능사와 기술자를 양성해 중화학공업과 엔지니어링 산업을 육성했다. 공업구조를 선진화해 해외에 플랜트까지 수출할 수 있게 됐다. 수출 100억 달러와 중화학공업 비율 50% 이상을 이룬 한국은 완전한 선진공업국으로 성장했다. 기적 같은 업적을 국민이 이뤄낸 것이다.
다시 듣는 한강의 기적-눈물 겨운 이야기를 떠올리는 밤~
지금의 성장이 거저 되지 않았고, 피땀흘린 어무이 아부지들의 헌신과 희생
나라사랑이 있었음을
그 위에서 피어난 '자유민주주의'의 아름다운 꽃,
그 눈물의 향기를 맡으며
대한민국 국민임이 자랑스러운 이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