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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미채를 빨갛게 무친 반백발 아짐

점순이 조회수 : 5,811
작성일 : 2026-04-01 00:33:04

윗분 진미채 이야기 보면서

저도 주식으로 물린 퍼런창에 멍든 마음을 달래고자

진미채를 빨갛게 무쳤습니다.

고추장 크게 한숟가락, 같은 비율로 설탕과 간장은 반숟가락씩,

고추가루 찹찹, 깨소금과 참기름은 뺐습니다.

(정확한 레시피 있으면 키톡으로 가야하고 여기는 자게니까요)

맛보다 보니 어느새 밥이 땡깁니다. 

밥공기 냅두고 국사발에 밥을 크게 한주걱 뜹니다. 

이건 분명 무의식입니다. 의식은 그럴리 없으니까요.

 

남편은 취미생활하느라 바쁘고, 아이들은 다 컸고, 저도 하던 일 멈추고 나니

거울속 누군가 있는데 머리가 반백발이네요.

염색 비용도 그렇고

무엇보다 하고나면 몸살이 나서 그냥 저냥 내비두고 삽니다.

만나는 사람들은 조심스레, 혹은 예의없게, 아주 무례하게 물어봅니다.

왜 염색을 안하냐, 니가 강장관이냐, 염색을 안하려면 피부과라도 가라~

 

저는 왜 진미채를 씹으며 흰머리에 대해 생각할까요?

제 의식의 흐름은 AI도 놀랄 알고리즘을 개척합니다.  

 

90년대 학번인 저는 철학박사 강유원교수님의 강의를 들었더랬습니다.

그때는 교수님이 아직 대학에서 강의를 할때였는데

거친외모(꽁지머리와 관상학적으로 의미있는 얼굴)와

더 거침없는 동서양철학자를 꿰는 입담

그와중에 졸고 있는 아이를 깨우지 않으면서 깨우는 강의능력까지...

 

저는 시골에서 갓 상경한 덕선이 스타일이었는데,

시간보다 일찍오시는 교수님과 

전시간 수업을 제낀터라 시간이 널널했던 제가 강의실에서 떡하니 마주하게 된겁니다.

 

"자네는 칸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자네'가 이인용 호칭인지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그리고 '칸트'도 뭐, 대학신입생이 알았겠나요?

"잘 모르겠는데요,,,,,"

 

그때 강유원교수님의 질문은 이어집니다.

"칸트를 모를수 있는데, 내가 왜 칸트에 대해서 물어본다고 생각하나?"

요즘 MZ 같았으면 맑눈광으로 고개짓 답했겠지만

저는 덕선이 캐릭터였으니까요.

"칸트는 모르고 칸쵸는 압니다"

 

그렇게 첫강의부터 제대로 눈도장을 찍혀 한학기 내내 질문공세에 시달렸고

덕분에 아주 의미있는(!!!!) 철학적 그라운드에서 난타를 당합니다.

 

중간고사는 오픈북, 오픈도어 였습니다.

고딩때까지만해도, 달달달 외워서 시험보다가

대학에서 '오픈북'이라니. 그것도 '오픈도어'???

공중전화로 전화걸던 시절에 스마트폰 검색찬스가 없으니

두시간 안에 시험지를 앞뒤로 채워오라는 말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범생들은 시험지를 들고 강의실을 나갑니다.

쟤들이 왜 화장실 가는데 시험지를 들고가지? 했더니

도서관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한두명이 나가는걸 보고 뒤늦게 깨달은 동기들도 주섬주섬 챙겨 나갑니다.

(강의실에서 중앙도서관까지는 거리가 꽤 먼데도 말이죠)

 

저는 쟤들이 왜 저러나? 가는 곳이 도서관이라는 곳을 한참뒤에 깨달은뒤

어쩌다보니 저 혼자 남았습니다.

 

또 심심해진 교수님께서 제게 말을 겁니다.

"자네는 왜 안나가나?"

이미 발빠른 애들은 도서관에 도착했을테고,

책을 찾았을테고, 

늦은 애들은 서가를 서성거리겠구나 싶어서,,, 라고 얘기하고 싶었으나

철학수업이니 만큼

철학적인 답이 튀어나왔습니다.

 

"답은 제 안에 있으니까요"

 

하지만 속마음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문제조차 이해하지 못했습니다(지금도 문제는 뭐였는지 기억이.... )

그러니 나가봤자 뭔소용이었겠어요?

기말고사때도 오픈북, 오픈도어였지만

그때는 중앙도서관으로 달려가는 동기는 거의 없었습니다.

한학기 등록금이 아깝지 않았던 수업이었습니다.

 

그렇게 흘러흘러 교수님도 대학에서의 강의를 그만두시고

이런저런 책을 쓰고

제가 아는 '박사'같지 않은,

가장 '박사'다운 학자로 기억에 남았습니다.

 

아! 다시 정신줄을 흰머리에 붙들어 매보겠습니다.

 

어느날 수업시간에 당신의 지도교수님 이야기를 꺼냅니다.

지도교수님은 강유원교수님을 '강군'이라고 부르셨다는군요.

태생적으로 곱슬머리에 대해 신세한탄을 했더니

그분의 지도교수님은

"강군,

나는 자네의 헤어스타일에는 관심이 없네,

자네의 머리속에 관심이 있지"

저는 한번도 만난적이 없는 그분의 지도교수님이 궁금해졌습니다.

 

궁금해지는 것, 

궁금해하는 것,

저는 그게 철학인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자, 

다시 진미채로 돌아옵니다.

주식은 파래도,

진미채를 간장양념으로 고추장양념으로 승화시키는 82의 해학이 좋습니다.

 

전쟁이 나고, 기름값이 오르고, 주가는 떨어져도

흰머리는 소복소복 올라오고

밥때는 꾸역꾸역 돌아오는 세상.

 

AI가 대체할수 없는 영역이

'유머'라고 하더군요.

 

진미채 하나로 

시퍼런 세상을 

짭쪼롬달달매콤하게

 

밥한대접 끝.

IP : 119.195.xxx.39
2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아하하하
    '26.4.1 12:38 AM (59.16.xxx.109)

    의식의 흐름, 좋네요.

  • 2. 몬스터
    '26.4.1 12:40 AM (125.176.xxx.131)

    완전 몰입해서 읽었어요
    그 교수님이 궁금해서 찾아보게 되네요

  • 3. ...
    '26.4.1 12:42 AM (114.206.xxx.43)

    제가 82에 오는 이유예요.

  • 4. 점넷
    '26.4.1 12:43 AM (119.195.xxx.39)

    저도 아래 어떤 댓글에서 강유원 교수님 얘기가 나와서 유튜브로 강의를 찾아봤는데,,
    결혼식 사회보는 것처럼 뻣뻣,,,,해서 의미는 있을지 모르나 재미는 없...
    당시의 젊은 철학자 강유원은 우리와 함께 나이들어 갑니다.
    (나이는 혼자 먹는게 아니라는 위로)

  • 5. 재미
    '26.4.1 12:50 AM (14.50.xxx.208)

    주식은 푸르딩딩하고
    요알못이라
    진미채로 스트레스도 못푸는데

    님 글 읽고
    따스하게 붉은 심장 하나 가져갑니다.

  • 6. 쓸개코
    '26.4.1 12:50 AM (175.194.xxx.121)

    "칸트는 모르고 칸쵸는 압니다"
    "답은 제 안에 있으니까요"
    재밌는 답변 ㅎ 멋부린 답변 ㅎㅎㅎㅎ
    아 미치겠어요 원글님 ㅎㅎㅎ 글 재밌게 읽었습니다.

  • 7. 점넷
    '26.4.1 12:56 AM (119.195.xxx.39)

    맞아요..
    멋부린 답..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이제 아이가 대학생이 되어서
    GPT, 제미나이, 뤼튼으로 과제한다길래,, 문득 생각이 났나봅니다.

  • 8. satellite
    '26.4.1 12:59 AM (39.117.xxx.233)

    학점 잘주셨나요? ㅎㅎ 궁금합니다

  • 9. ....
    '26.4.1 1:11 AM (116.121.xxx.21)

    재미있어요 그러게요 학점은요?ㅎ

  • 10. 덕분에
    '26.4.1 1:21 AM (211.206.xxx.191)

    유쾌한 심야를 보냅니다.ㅎ
    저는 최고점에서 확인해서 행복했고
    너무 바쁜 나머지 한 달 가까이 열어 보지 않고 있습니다.
    그냥 이대로 지낼래요.

  • 11. 점넷
    '26.4.1 1:36 AM (119.195.xxx.39)

    학점을 물어봐주시는 분들은 범생분들이죠?

    학점도 기억이 안나네요.
    (기억도 안날 그 학점에 왜 그렇게 연연해 했는지)
    하지만
    칸트는 왜 순수이성을 비판했는지
    아직도 궁금이 안풀렸습니다.

    아들아
    학점은 상관없다,
    학고만 면해다오


    최고점에서 확신하셨다는 분.
    승!

  • 12. ....
    '26.4.1 1:43 AM (116.121.xxx.21)

    저도 확인 안하고 있어요
    기분 나쁠거 굳이ㅋㅋ
    지금 팔지도 않을거고요
    전쟁 끝나고 열어볼래요

  • 13.
    '26.4.1 2:12 AM (49.175.xxx.11)

    영화 파반느 보고 옛생각에 눈물 질질짜고있다가 이글 읽고 웃었어요. 야심한 밤에 나 뭐하냐ㅠㅜ

  • 14. 반가움
    '26.4.1 2:56 AM (121.168.xxx.172)

    저 평생학습관에서 강유원 선생님 강의 듣고 있어요~ 선생님 여전하세요. ^^

  • 15. ....
    '26.4.1 3:46 AM (218.51.xxx.95)

    진미채 레시피 있나 보려고 들어왔다가
    진미를 맛본 기분이랄까요?
    제 흑흑역사인 오픈북 시험 생각이 떠올라 괴롭지만
    님 글이 너무 재미있어서 상쇄가 되네요.
    이 글을 읽으라고 자다 깼나 봅니다.
    강유원 교수님 명성은 말로만 들었었는데
    강의 한번 들어봐야겠습니다.
    님좀짱!

  • 16. ㅇㅇ
    '26.4.1 3:55 AM (73.109.xxx.54)

    저는 대학원때 거의 모든 과목이 오픈북이었는데 오픈북+시간무제한 이었던 수업이 유난히 기억나요.
    6시간만에 나왔지만 제가 제일 빨리 끝낸 거였거든요...

  • 17. ..
    '26.4.1 4:02 AM (211.234.xxx.128)

    자다가 눈이 번쩍 떠지는 글이네요.원글님은 모하시는 분이길래 이런 위트가득한 글을 쓰시는걸까요? 이게 82의 저력...저도 주식땜에 속쓰린데 이글이 위로가 되네요.감사합니다.

  • 18. 의식의 흐름
    '26.4.1 5:20 AM (221.160.xxx.24) - 삭제된댓글

    웃겨요.ㅎㅎㅎ
    저는 새치 염색 지겨워서( 최소 6개월은 염색에서 자유로워질수 있다길래)
    미용실가서 새치머리 발레아쥬를 시도했다가 망했어요. ㅎㅎㅎ
    머리가 온통 노오란... 노는? 아줌마가 되었어요.
    새치머리 발레아쥬도 아무데서나 하는게 아니더라구요
    새치머리 얘기라 끼어들어봤어요.

  • 19. 강유원
    '26.4.1 6:22 AM (220.85.xxx.165)

    교수님은 여전히 멋진 모습으로 살고 계시는군요. 저도 강의 찾아듣고 싶습니다. 주식은 퍼래도 비싼 진미채에 밥을 대접으로 드실 수 있는 부와 건강에, 이렇게 재미난 글을 쓰실 수 있는 원글님은 다 가지신 분이세요. 계좌 안 열어보기 저도 참 배우고 싶지 말입니다 흑흑

  • 20. satellite
    '26.4.1 6:59 AM (39.117.xxx.233)

    아뇨, 범생이라 물어본게아니라
    칸트는 몰라도 칸초는 안다, 정답은 제안에있다.
    이런 제자를 교수님이 어떻게 평가?하셨을지 궁금해서였죠.
    원글님이 묘사한 그냥 그시절 철학과 교수님이면 그런친구한테 학점 잘줬을것같아서요.

  • 21. 아!!!
    '26.4.1 8:10 AM (211.210.xxx.9)

    이 근사한 글을 이 아침에 읽는 호사라니^^
    언니, 멋있어요. 저는 80년대 학번이지만, 멋있으면 무조건 언니입니다. 글 자주 써주세요!

    앞으로, 주식창이 퍼래지면, 우리 주술처럼 진미채 무칠것 같습니다.

  • 22. 어제
    '26.4.1 8:46 AM (175.124.xxx.132)

    제가 자는 동안 이웃님들끼리 이렇게 좋은 대화를 나누고 계셨군요.
    저도 뒤늦게 뛰어들어 흐뭇하게 즐기고 갑니다.

    "답은 제 안에 있으니까요"
    모든 존재의 시공간을 관통하는 통찰, 감사합니다.
    위트 넘치는 지혜로운 원글님, 늘 평안하세요~!!!

  • 23. 염색해말아
    '26.4.1 8:50 AM (122.36.xxx.179)

    염색 안한 지 6개월 정도 되는데
    최근 만난 친구가 훨씬 젊어
    보일 텐데 왜 염색 안하냐고 난리치더라구요
    ㅎㅎㅎ
    89학번인데 교양 철학 시간이 생각나네요
    여대였고 그분은 외부 강사였던 거
    같은데 그 당시 우리는 정말 철없었던 거 같아요. 근데 어느날 그분의 공허한 눈빛을 우연히 보고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거 같아요. 지금 다시 철학을 들으면 귀에 쏙쏙 들어 왔을 텐데 그때는 어서 수업 끝나고 놀러 갈 생각만 했었지요.

  • 24. 저도
    '26.4.1 10:43 AM (211.246.xxx.21)

    이런글을 기대하고 제목을 클릭해요
    82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죠

  • 25. 원글님
    '26.4.1 11:13 AM (211.36.xxx.2)

    라임 좀 타시는데요
    전 활자 중독 수준이나 쓰는 제주는 없는지라
    원글님처럼
    내 머릿속 생각을
    간결하고 쉽게 글로 풀어 내는 사람이 부러워요

    주식과 진미채
    진미채와 흰머리 그리고 칸트에서 칸쵸까지 ㅎ

    재밌고 멋진분 같아요
    행복하세요 ^^

  • 26. 아놔
    '26.4.1 1:49 PM (122.101.xxx.85)

    의식은 그럴리가 없다니 ㅋㅋㅋㅋ

    원글님!
    혹독한 철학 수업 한학기가 이렇게나 유익합니다.
    오늘 저를 행복하게 해주셨잖아요(요즘 안 행복함 ㅜ)
    자주자주 글 올려주세요
    진심 눈꼬리까지 웃었습니다. 감사해요

  • 27.
    '26.4.1 9:41 PM (218.154.xxx.147)

    의식의 흐름인데 글 잘 쓰시네요. 낭만있던 대학 시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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