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Banner

유시춘이사장의 이해찬 전 총리 추모사

명문 조회수 : 2,190
작성일 : 2026-01-28 10:25:30

1984년 10월. 서울 관악경찰서 유치장 면회실에서 처음 이해찬을 만났다.

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에 엮여 이미 오랫동안 징역살이를 겪은 이였다. 첫인상은 날카로웠다. 잠자리 안경 너머 눈빛 역시 그러했다. 1980년 5월 전두환의 비상계엄으로 구속된 이후, 4년 만에 또 구속된 내 동생 유시민을 함께 면회하고 나오면서 그가 말했다.

“학생회 부활하려고 하니까 저놈들이 미리 싹을 잘라버리려고 벌이는 수작이에요.”

그 한마디로 모든 일의 전모를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울화, 분노, 공포로 나날을 보내던 내게 이해찬의 정세 분석은 신경안정제가 되었다.

1985년,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출범식 사회를 본 직후 나는 학교에서 해직되었다. 이후 고문 및 용공조작 공동대책위원회,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사무실 강제 폐쇄 등 많은 현장에서 그와 함께했다.

박종철을 고문·살해하고도 체육관에 모여 저희끼리 대통령을 뽑겠다는 전두환의 1987년 ‘4·13 호헌조치’는 마침내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국본) 결성을 재촉하는 방아쇠가 되었다. 국본은 ‘직선제 개헌’이란 최소한의 목표를 위한 최대치의 연합이었다.

이해찬도 나도 국본에 동참했다. 가장 치열한 쟁점은 당시 민주당의 합류 여부였다. 논쟁은 뜨거웠다. ‘염결성’이란 재야의 본성이 목적 합리성을 두고 부딪쳤다. 민통련 정책실 차장 이해찬은 목사님, 신부님, 학생들을 설득했다. 이는 두고두고 생각해도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민주당 합류로 집회의 규모는 천문학적으로 부풀었다.

나는 ‘6·10 국민대회’를 앞두고 거의 매일 열리는 회의의 기록자, 서기 직책을 맡았다. 어느 날, 그가 내게 은밀히 말했다. 내가 쓰는 회의록이 곧바로 국가안전기획부로 들어간다고. 국본 내부에 정보원이 있었던 것이었다. 우리는 회의 장소를 그때그때 바꾸어야 했다. 나는 6월 7일 회의에선 사흘 뒤 집회의 중심이 될 서울 정동 성공회 성당에 들어가겠다고 자원했다. 그때 이해찬이 내 등 뒤에서 특유의 소년 같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유시춘, 이번엔 구속이다.” 그 말은 현실이 되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은 한달 동안 전국에서 타올랐다. 36개 도시에서 500만명이 참여했다. 계엄을 준비한 전두환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쓸 수 있는 군대, 경찰 등 모든 물리력보다 국민이 분출한 힘이 더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1988년 이해찬은 국회에 입성해 5공 청문회 스타로 부상했다. 13대 국회 땐 관행대로 한 기업인이 돈이 들었음 직한 케이크 상자를 이해찬 의원실에 전하려다가 면전에서 내동댕이 쳐지는 수모를 겪었다. 소문이 퍼졌고 이후 그 어떤 이도 선물로 이해찬에게 접근하지 못했다.

그는 내게도 서운할 정도로 엄격했다. 특히 인사 추천 면에서 더욱 냉혹했다. 학연, 지연 등의 인연에 조금도 마음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버럭 해찬’ ‘송곳’과 같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은 별칭을 얻었다. 그의 빼어난 능력과 지나칠 만큼의 엄정한 도덕성을 체감한 나로서는 여러번 대선 출마를 권유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수학을 잘해서 분수를 잘 알고요, 또 국어를 잘해서 주제를 알아요. 흐흐.”

그는 자신의 결함을 너무 잘 알고 있는 리얼리스트였다. 그가 지구별을 떠났다.

군사정권이 모질게 괴롭힌 그의 몸. 그 안과 밖은 상처투성이다. 그 몸에 냉철하고 영민한 지성을, 무엇보다 민주주의와 국민을 향한 끓어오르는 열정을 과포화 상태로 축적했다. 실로 빛나는 상처, 아름다운 동행이 아니던가.

그의 영정에 바친다.

“어느 날 밤 내 깊은 잠의 한가운데에 뛰어들어

아직도 깨끗한 손길로 나를 흔드는 손님이 있었다.

눈 비비며 내 그를 보았으나

눈부셔 눈을 감았다.”

(이성부 ‘손님’ 중에서)

임이시여.

날마다 꿈길로 오시옵소서!

IP : 175.116.xxx.90
1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26.1.28 10:29 AM (175.116.xxx.90)

    이해찬 전 총리님 명복을 빕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명문이라고 느껴져요.
    유작가 형제분들 보면 부모님이 어떻게 키우셨을까 궁금해져요.

  • 2. ...
    '26.1.28 10:32 AM (58.120.xxx.143)

    대한민국 민주화를 위해 투신하신 분들, 감사하고 존경합니다.
    그 뜻 지키도록 도력하겠습니다.

  • 3. ..
    '26.1.28 10:41 AM (117.111.xxx.250) - 삭제된댓글

    존경합니다. 편히 가세요.

  • 4. ㅇㅇ
    '26.1.28 10:57 AM (118.235.xxx.145)

    그는 내게도 서운할 정도로 엄격했다. 특히 인사 추천 면에서 더욱 냉혹했다. 학연, 지연 등의 인연에 조금도 마음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버럭 해찬’ ‘송곳’과 같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은 별칭을 얻었다. 그의 빼어난 능력과 지나칠 만큼의 엄정한 도덕성을 체감한 나로서는 여러번 대선 출마를 권유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수학을 잘해서 분수를 잘 알고요, 또 국어를 잘해서 주제를 알아요. 흐흐.”
    ㅡㅡㅡㅡㅡㅡㅡㅡ
    새겨 들어야 할 말이네요.
    큰 별을 잃었어요.

  • 5. ...
    '26.1.28 11:00 AM (140.248.xxx.3)

    이해찬 총리님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발전에 큰 빛이 되셨습니다.

  • 6. 감사합니다
    '26.1.28 11:01 AM (49.174.xxx.238)

    이해찬 총리님 명복을 빕니다

  • 7. ....
    '26.1.28 11:14 AM (118.235.xxx.102) - 삭제된댓글

    ㅋ큰 울림이 있는 추모사네요.
    이해찬 총리님, 명복을 빕니다.

  • 8. ...
    '26.1.28 11:15 AM (118.235.xxx.102)

    큰 울림이 있는 추모사네요.
    이해찬 총리님, 명복을 빕니다.

  • 9.
    '26.1.28 11:25 AM (61.84.xxx.183)

    민주당의 큰어른 을 잃었어요
    이해찬 총리님 명복을빕니다

  • 10. 노란백일홍
    '26.1.28 12:23 PM (59.30.xxx.47)

    이해찬 총리님 명복을 빕니다

  • 11. ....
    '26.1.28 12:41 PM (142.112.xxx.142)

    사심 없고 솔직한 사람들은 통찰력이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걸
    이해찬 전 총리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새삼 알게 되네요

  • 12.
    '26.1.28 12:56 PM (118.130.xxx.125) - 삭제된댓글

    .....
    좋은 말씀 감사해요.

  • 13. 감사합니다.
    '26.1.28 12:58 PM (211.208.xxx.87)

    읽으며 울었어요. 민주주의자여, 편히 잠드시길.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787798 내일 홈플러스 할까요? 13 ## 2026/02/16 3,493
1787797 인플란트 인공뼈 심을때 많이 아픈가요? 8 .. 2026/02/16 3,066
1787796 기뻐해주세요 찾고싶었던 곡을 찾았어요 2 .... 2026/02/16 1,795
1787795 저희동네 롯데슈퍼만 과일 고기가 맛없는건지 9 ... 2026/02/16 1,908
1787794 명절에 친척들 친구들 주식 자랑 안합니까? 7 가보자 2026/02/16 3,511
1787793 정말 민주당에서 조사해야 할듯 8 2026/02/16 2,178
1787792 도올의 뉴 이재명 7 2026/02/16 2,201
1787791 내가 편하다는 사람은 4 ㅇㅇ 2026/02/16 2,521
1787790 김길리는 인터뷰매너를 좀 배워야겠네요 17 ㅇㅇㅇ 2026/02/16 13,932
1787789 얼굴이 흘러내리는 건 얼굴의 문제가 아니라 이게 문제 7 ㅇㅇㅇ 2026/02/16 6,294
1787788 동계 유니폼이 넘 구려 14 놀며놀며 2026/02/16 3,221
1787787 50대 문신하고 싶어요 29 갈망 2026/02/16 4,750
1787786 급)장조림 질문있어요 3 요알못 2026/02/16 1,297
1787785 좋은 시어머니 같아도 뼈속은 시어머니 마인드 9 며느리 2026/02/16 4,466
1787784 세배 절 자식들한테 받으세요? 6 .... 2026/02/16 2,673
1787783 왕사남 그후 세조 사망 원인 17 2026/02/16 7,752
1787782 적정 집값은 16 ㅁㄶㅈ 2026/02/16 3,044
1787781 왕사남 애들 보여주길잘했네요 2 mm 2026/02/16 4,183
1787780 명절에 가도 기를 쓰고 온다고 욕하고 안가도 뺀질댄다고 욕하는것.. 4 .. 2026/02/16 2,944
1787779 시댁안갔어요 3 ㅋㅋ 2026/02/16 4,210
1787778 김길리 1000m 동메달~~~ 8 축하 2026/02/16 3,109
1787777 5스킨 알려주신분 진짜 많이 감사해요 11 감사감사 2026/02/16 6,819
1787776 시가 친정에서 손 하나 까딱 안하는 남편 7 아름다운 2026/02/16 2,840
1787775 내일 친정가족들 만나면 마니또를 하는데요, 4 ㅇㅇ 2026/02/16 2,205
1787774 김숙 오른팔 마비왔냐는 댓글보고 뿜는중... 7 ... 2026/02/16 9,8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