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Banner

부활콘서트

세실극장 조회수 : 1,824
작성일 : 2026-01-05 20:43:47

Lonely Night 노래가 한창 인기일 때, 라디오에서 이 노래가 나오면 숨을 멈추고 귀기울여 듣곤 했어요. 
난생 처음 라이브로 이 노래를 듣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마침 마음에 드는 남자애가 있었거든요. 
그 아이한테 부활 콘서트 하면 같이 가자고 밑밥을 깔아놓고 부활 콘서트 하기를 학수고대했지요.
제 기도가 하늘에 닿았는지 콘서트 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바로 예약을 했어요. 
그리고 기쁘게 그 남자애에게 콘서트 표를 예약했다고 말했어요. 남자애는 처음엔 알겠다고 하더니 며칠 뒤에 일이 있어 못간다고 하더군요. 
저는 표를 취소할까, 아니면 다른 친구랑 갈까 잠시 고민도 했던거 같은데 
좋아하는 남자애한테 거절당한 상심에 적극적으로 해결방법을 모색하지 못했던 거 같아요. 
그러다 엄마한테 부활 콘서트 표 있는데 같이 갈래? 물었는데, 엄마가 덥석 가겠다고 하는거예요. 
엄마가 저를 스물한살에 낳았기에 그 당시 엄마 나이는 사십둘 정도였을거에요. 젊은 엄마였지만 저한테는 그저 엄마였을 뿐이었지요. 
그렇게 얼떨결에 부활 콘서트에 가게 되었어요. 

세실극장에 길게 줄을 서서 표를 받으려고 기다렸던거 같아요. 엄마는 줄을 서고, 저는 중간에 왔다갔다하며 뭘 바꾸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 머리카락이 긴 남자가 지나가더라고요. 
제가 자리로 오자 엄마가 김경호가 지나갔다며 소녀 눈빛을 장착한 채 말하는거예요.

당시 김경호는 최고의 인기를 구가할 때였기에, 저는 단번에 김경호가 얼마나 바쁜데 여기에 오겠어, 라고 말했지요. 

그날은 콘서트 마지막날이었고, 박완규는 아주 왜소했어요. 
멘트를 칠 때는 목이 완전 쉬어서 목소리가 거의 나오지 않았는데, 노래를 부르면 신의 경지에 이른 사람처럼 음을 뽑아내더라고요. 화려한 퍼포먼스도 없고, 숫기 하나 없는 락커였어요. 
엄마랑 저는 앞에서 두세번째 줄에 앉았는데, 갑자기 김태원이 자기가 몇년생인데 여기에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 있냐고, 있으면 손들어보라고 하는거에요. 
제가 엄마를 쳐다봤더니 엄마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고개를 못들고 계셨는데, 제가 짖굿게 어서 손들으라고 했더니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어쩔 줄 몰라하던 엄마 모습이 생각나네요. 
콘서트 중간에 정말 김경호가 게스트로 나왔어요. 현란한 무대매너로 관객 혼을 쏙 빼놓고, 여우가 둔갑한것처럼 무대를 뒤흔들고는 깔끔하게 무대에서 사라지더라고요. 
엄마는 자기가 김경호를 알아봤다는 것에 엄청 흥분하셨는데, 이후 30여년 동안 김경호가 나올 때마다 으시대면서 말씀하십니다. 자기가 김경호를 알아봤다고!

요즘 부활 콘서트중인지 길가에 홍보물이 붙어 있더라고요.
엄마는 올해 일흔이 되셨는데, (저는 오십이 되었고요.) 저는 여전히 엄마 마음 속에 어떤 소녀가 살고 있는지 모르는 것 같아요. 

 

사족으로,
몇 년 전에 남편이 공짜 티켓이 생겼는데 가겠냐면서 하춘화님 콘서트 티켓을 가져왔었어요.
공설운동장 같은데서 하는 공연이었는데, 엄마한테 물어보니 가신다고 해서 둘이 갔어요.

저희처럼 공짜티켓 받아 온 사람들이 많아던 것 같았어요. 광화문 태극기 집회장 같은 분위기, 새마을 모자 같은 거 쓰신 어르신들 군단이 있더라고요. 
기대가 하나도 없었는데 당시 엄마가 우울하다고 하셨던터라 엄마가 바깥에 나오는게 목적이었기에 가보았던 거였거든요. 
무대가 시작되고, 하춘화님 공연이 시작되었는데 관객석은 허름했지만 무대는 정말 기깔나더라고요. 
곡마다 옷을 갈아입고, 댄서들 총동원해서 무대를 꽉채우고, 멘트는 어찌나 다정하면서도 정중한지.
탭댄스를 추면서 노래를 부르는 무대가 있었는데 새로 배운거라고, 하춘화님이 저희 엄마보다 언니셨는데 정말 입이 안다물어지더라고요. 
저 콘서트 끝나고 집에 오니 박수를 얼마나 정신없이 쳤는지 손바닥이 멍이 든 것처럼 욱신거리더라고요. 
저희 엄마도 대단하다, 나보다 나이도 많은데 저렇게 살 수도 있구나, 하시면서 기운이 난다고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무엇보다 딱 봐도 공짜티켓 받아온 티가 풀풀 나는 관객들 앞에서, 너무나 예의있고 무대를 채웠던 하춘화님에 대한 경외심이 생겼던 공연이었어요. 

아, 글 마무리는 어떻게...이게 젤 어렵군요.

IP : 61.77.xxx.114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11
    '26.1.5 8:53 PM (175.121.xxx.114)

    제목으로 기대안했는데 글이 너무 좋습니다 어머님과의 공연 추억에 가슴이 벅찰것같네요

  • 2. 재미있는글
    '26.1.5 8:53 PM (219.255.xxx.120)

    잘 읽었어요!!

  • 3.
    '26.1.5 10:10 PM (218.235.xxx.72) - 삭제된댓글

    공연 같이 가는 따님 두신 어머님 부러워요.
    우리딸은...쳇...
    기대도 안하네요.
    씁쓸ㅡㅡㅡㅡ

  • 4. satellite
    '26.1.5 10:45 PM (211.234.xxx.250)

    엄마 어린이날 선물로 부활콘서트 티켓사주세요.
    저는 2년전에 초6, 초4 아들 둘 어린이날 선물로 부활티켓사서
    셋이 다녀왔어요.
    그날도 김경호님 오셨고요 ㅎㅎ
    부활 멤버들 나이들어서 힘들어보였지만,
    제 아들 둘은 좋아하더라고요. 태어나 처음 가보는 콘서트였어서요 ㅎ

  • 5.
    '26.1.6 5:00 AM (73.109.xxx.54)

    글이 진짜 재밌고 좋아요 ㅎㅎ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785005 명언 - 최고의 결과 1 ♧♧♧ 2026/02/16 2,057
1785004 이재명 대통령 취임 8개월 만에 달성한 것들 12 ㄷㄷㄷㄷ 2026/02/16 3,110
1785003 매운거 잘 드시는 분들 8 ㆍㆍ 2026/02/16 2,291
1785002 최악 시댁 배틀도 해봅시다 32 . 2026/02/16 7,988
1785001 김나영이 시부모 집을 공개했는데 참 따뜻하네요 47 ㅇㅇ 2026/02/16 17,414
1785000 케잌 먹고 싶어요 3 ㅡㅡㅡㅡ 2026/02/16 2,712
1784999 충주맨 연관검색어에 욕 29 ... 2026/02/16 7,445
1784998 엄마가 몰래 내 편지랑 사진을 다 버렸어요 6 2026/02/15 4,878
1784997 알바해서 가족들 플렉스 했어요 9 좋아요 좋아.. 2026/02/15 4,633
1784996 여수 혼자 여행 가는데 안전하게 산책할 수 있는 곳 추천해 주세.. 4 흠냐 2026/02/15 2,506
1784995 99년생 아들 결혼하는분 계신가요? 14 푸르른물결 2026/02/15 4,600
1784994 짝궁 쳐다보느라 집중못하는 이대통령 45 ㅋㅋㅋ 2026/02/15 14,844
1784993 도토리묵 쒀서 식혔는데 냉장고에 넣어요? 2 ... 2026/02/15 1,802
1784992 명절 전날 몸살이 왔어요 ㅠ 6 남천동 2026/02/15 2,843
1784991 대상포진 약 다 먹었는데.. 아직도... 4 ㅠㅠ 2026/02/15 2,663
1784990 원매트리스와 투매트리스 차이 3 .. 2026/02/15 2,184
1784989 발이 큰 여성분들은 어디서 신발 구매하세요? 2 .. 2026/02/15 1,632
1784988 40후반 싱글.. 오피스텔 사도 될까요 17 .. 2026/02/15 5,124
1784987 내가 좋아하는 예술인과 사귄후 무조건 이별한다면 10 2026/02/15 4,725
1784986 최준희 결혼하네요 30 .... 2026/02/15 22,649
1784985 1가구 1주택인데 4 ㅇㅇㅇ 2026/02/15 2,191
1784984 레이디 두아 보신 분 7 ㅇㄷㄷ 2026/02/15 4,884
1784983 이제 주식시장도 코인처럼 쉼없이 거래 9 ㅇㅇ 2026/02/15 4,461
1784982 44세 여.. 왜 생리를 안할까요? 13 2026/02/15 4,120
1784981 집에서 공항까지 캐리어 배송 서비스? 1 .. 2026/02/15 2,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