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ly Night 노래가 한창 인기일 때, 라디오에서 이 노래가 나오면 숨을 멈추고 귀기울여 듣곤 했어요.
난생 처음 라이브로 이 노래를 듣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마침 마음에 드는 남자애가 있었거든요.
그 아이한테 부활 콘서트 하면 같이 가자고 밑밥을 깔아놓고 부활 콘서트 하기를 학수고대했지요.
제 기도가 하늘에 닿았는지 콘서트 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바로 예약을 했어요.
그리고 기쁘게 그 남자애에게 콘서트 표를 예약했다고 말했어요. 남자애는 처음엔 알겠다고 하더니 며칠 뒤에 일이 있어 못간다고 하더군요.
저는 표를 취소할까, 아니면 다른 친구랑 갈까 잠시 고민도 했던거 같은데
좋아하는 남자애한테 거절당한 상심에 적극적으로 해결방법을 모색하지 못했던 거 같아요.
그러다 엄마한테 부활 콘서트 표 있는데 같이 갈래? 물었는데, 엄마가 덥석 가겠다고 하는거예요.
엄마가 저를 스물한살에 낳았기에 그 당시 엄마 나이는 사십둘 정도였을거에요. 젊은 엄마였지만 저한테는 그저 엄마였을 뿐이었지요.
그렇게 얼떨결에 부활 콘서트에 가게 되었어요.
세실극장에 길게 줄을 서서 표를 받으려고 기다렸던거 같아요. 엄마는 줄을 서고, 저는 중간에 왔다갔다하며 뭘 바꾸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 머리카락이 긴 남자가 지나가더라고요.
제가 자리로 오자 엄마가 김경호가 지나갔다며 소녀 눈빛을 장착한 채 말하는거예요.
당시 김경호는 최고의 인기를 구가할 때였기에, 저는 단번에 김경호가 얼마나 바쁜데 여기에 오겠어, 라고 말했지요.
그날은 콘서트 마지막날이었고, 박완규는 아주 왜소했어요.
멘트를 칠 때는 목이 완전 쉬어서 목소리가 거의 나오지 않았는데, 노래를 부르면 신의 경지에 이른 사람처럼 음을 뽑아내더라고요. 화려한 퍼포먼스도 없고, 숫기 하나 없는 락커였어요.
엄마랑 저는 앞에서 두세번째 줄에 앉았는데, 갑자기 김태원이 자기가 몇년생인데 여기에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 있냐고, 있으면 손들어보라고 하는거에요.
제가 엄마를 쳐다봤더니 엄마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고개를 못들고 계셨는데, 제가 짖굿게 어서 손들으라고 했더니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어쩔 줄 몰라하던 엄마 모습이 생각나네요.
콘서트 중간에 정말 김경호가 게스트로 나왔어요. 현란한 무대매너로 관객 혼을 쏙 빼놓고, 여우가 둔갑한것처럼 무대를 뒤흔들고는 깔끔하게 무대에서 사라지더라고요.
엄마는 자기가 김경호를 알아봤다는 것에 엄청 흥분하셨는데, 이후 30여년 동안 김경호가 나올 때마다 으시대면서 말씀하십니다. 자기가 김경호를 알아봤다고!
요즘 부활 콘서트중인지 길가에 홍보물이 붙어 있더라고요.
엄마는 올해 일흔이 되셨는데, (저는 오십이 되었고요.) 저는 여전히 엄마 마음 속에 어떤 소녀가 살고 있는지 모르는 것 같아요.
사족으로,
몇 년 전에 남편이 공짜 티켓이 생겼는데 가겠냐면서 하춘화님 콘서트 티켓을 가져왔었어요.
공설운동장 같은데서 하는 공연이었는데, 엄마한테 물어보니 가신다고 해서 둘이 갔어요.
저희처럼 공짜티켓 받아 온 사람들이 많아던 것 같았어요. 광화문 태극기 집회장 같은 분위기, 새마을 모자 같은 거 쓰신 어르신들 군단이 있더라고요.
기대가 하나도 없었는데 당시 엄마가 우울하다고 하셨던터라 엄마가 바깥에 나오는게 목적이었기에 가보았던 거였거든요.
무대가 시작되고, 하춘화님 공연이 시작되었는데 관객석은 허름했지만 무대는 정말 기깔나더라고요.
곡마다 옷을 갈아입고, 댄서들 총동원해서 무대를 꽉채우고, 멘트는 어찌나 다정하면서도 정중한지.
탭댄스를 추면서 노래를 부르는 무대가 있었는데 새로 배운거라고, 하춘화님이 저희 엄마보다 언니셨는데 정말 입이 안다물어지더라고요.
저 콘서트 끝나고 집에 오니 박수를 얼마나 정신없이 쳤는지 손바닥이 멍이 든 것처럼 욱신거리더라고요.
저희 엄마도 대단하다, 나보다 나이도 많은데 저렇게 살 수도 있구나, 하시면서 기운이 난다고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무엇보다 딱 봐도 공짜티켓 받아온 티가 풀풀 나는 관객들 앞에서, 너무나 예의있고 무대를 채웠던 하춘화님에 대한 경외심이 생겼던 공연이었어요.
아, 글 마무리는 어떻게...이게 젤 어렵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