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침공,
-명분의 언어 뒤에 숨은 미국의 계산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군사적으로 압박하고 결국 침공에까지 이르렀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국제질서의 중대한 균열을 의미한다.
미국은 이를 마약, 독재, 인권, 안보라는 언어로 포장하지만, 그 명분은 이미 설득력을 잃었다. 국제사회가 묻는 질문은 단순하다.
왜 지금, 왜 베네수엘라인가.
표면적 이유는 분명하다. 도널드 트럼프는 마두로 정권을 범죄국가로 규정하며 ‘질서 회복’을 말한다. 그러나 이 언어는 새롭지 않다. 미국의 개입사는 언제나 정의의 수사로 시작했지만, 끝은 언제나 다른 곳에 있었다.
미국의 직접적 이유는 세 갈래로 압축된다.
첫째는 자원이다.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 수준의 석유 매장량뿐 아니라, 희토류·철·금 등 21세기 산업과 군사기술의 핵심 광물을 품고 있다.
중국이 희토류를 무기로 삼아 글로벌 공급망을 흔들자, 미국은 깨달았다. 군사력만으로 패권을 유지할 수 없고, 자원 통제야말로 새로운 전쟁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베네수엘라는 그 취약지점 한가운데 있었다.
둘째는 지정학적 요구이다. 베네수엘라 단일 국가만이 아니라 중남미 전체의 좌파·반미 성향의 정권들이 다시 힘을 얻는 흐름 속에서, 미국은 오래된 영향권을 잃고 있다는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베네수엘라를 제압하는 것은, 중남미 전체에 “여기까지가 선”이라는 경고를 보내는 행위다.
셋째는 패권 경쟁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베네수엘라와 군사·에너지·금융 협력을 강화해 온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미국의 시선에서 베네수엘라는 ‘독재국가’이기 이전에 경쟁 세력이 발을 딛고 선 전초기지다. 침공의 속셈은 정권 교체 그 자체보다, 이 연결고리를 끊는 데 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미국의 계산이 아무리 치밀해 보여도, 베네수엘라의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베네수엘라는 파나마가 아니다. 군부는 정권과 경제적으로 깊게 얽혀 있고, 차베스주의라는 이념은 여전히 상당한 사회적 뿌리를 갖고 있다.
외부의 침공은 내부 분열을 봉합하는 역설적 효과를 낳기 쉽다. 지도자를 잃은 정권은 약해질 수 있지만, 침략당한 사회는 오히려 하나로 수렴한다.
향후 베네수엘라는 단기간에 안정되기 어렵다. 점령과 통치에는 막대한 비용이 따르고, 괴뢰정권이 들어선다 해도 정당성의 부재는 곧 저항으로 되돌아온다.
이는 내전, 게릴라전, 장기 불안정이라는 익숙한 경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전투에서 이길 수 있을지 모르나, 전쟁의 결과를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오만이다.
이 사태가 세계평화에 던지는 위협은 분명하다. 국제법의 핵심 원칙인 주권과 무력 불사용이 또다시 예외로 취급될 때, 그 예외는 곧 규칙이 된다.
강대국이 ‘안보’를 이유로 마음대로 침공할 수 있다면, 약소국에게 남는 선택지는 무장과 동맹 경쟁뿐이다. 평화는 협상의 결과가 아니라 힘의 균형 위에 얹힌 불안정한 휴전으로 전락한다.
결국 베네수엘라 침공은 한 나라의 비극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미국이 세계경찰이라는 신화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규범을 소모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미국에게 그런 권한을 누가 위임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한, 세계는 점점 더 위험한 방향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이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 그리고 명분의 언어를 해체하는 것.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평화적 저항은 바로 거기에 있다.
[ 천주교정의평화연대 페북에서 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