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가자의 눈으로 볼 때, 대한불교조계종 종단의 회의는 늘 보이지 않는다.
원로회의, 총무원 부장회의, 중앙종회까지 종단의 운명을 좌우하는 회의들이 어디서, 어떻게, 어떤 논의 끝에 결론에 이르는지 신도는 알 수 없다. 수행 공동체를 지탱하는 대중은 철저히 배제된 채, 종단은 여전히 ‘알 필요 없는 사람들’ 위에 군림한다.
종단의 어른 스님들이 존경받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말씀과 판단이 공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누가 어른인지, 누가 책임 있는 판단을 내리는지 알 수 없는 구조에서 존경은 생기지 않는다. 재가자는 침묵 속에서 결정을 통보받을 뿐이고, 그 결과가 납득되지 않아도 질문할 통로조차 없다.
총무원과 중앙종회의 회의 역시 마찬가지다. 종단 재정과 인사, 제도 개편이 논의된다지만, 재가자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결과 발표뿐이다. 누가 종단을 위해 발언했는지, 누가 계파와 인맥의 논리를 따랐는지는 끝내 가려진다. 이런 구조에서 책임은 흐려지고, 권한만 남는다.
이 불투명한 구조는 결국 금권선거와 줄 세우기라는 고질병을 낳았다. 재가자의 눈에는 너무도 명확하다. 어둠 속에서 결정되는 곳에 돈과 관계가 스며들지 않을 수는 없다. 회의가 공개되지 않는 한, “수행자들의 공동체”라는 말은 공허한 수사가 된다.
회의가 공개되면 무엇이 달라질까.
재가자는 비로소 누가 종단을 위해 말하는지, 누가 침묵으로 책임을 회피하는지를 보게 된다. 발언과 표결이 기록으로 남는 순간, 종단의 직책은 특권이 아니라 책임이 된다. 금권과 인맥으로 움직이던 관행은 그 빛 앞에서 힘을 잃는다.
재가자는 간섭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알고 싶을 뿐이다. 우리가 보시한 정성과 신뢰가 어떤 논의와 판단으로 사용되는지, 종단이 어떤 가치 위에서 움직이는지 알고 싶을 뿐이다. 이것은 요구가 아니라 최소한의 권리다.
정부조차 회의를 공개하고 업무보고로 신뢰를 얻으려 애쓴다. 하물며 수행과 청정을 생명으로 삼는 종교가 왜 여전히 닫힌 문 뒤에 숨어 있는가. 종단이 재가자를 ‘외부인’으로 취급하는 한, 신뢰는 회복되지 않는다.
회의 공개는 종단을 흔드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종단을 살리는 일이다. 투명한 회의와 기록되는 판단 위에서만 존경받는 원로가 서고, 재가자와 승가가 함께하는 공동체가 가능하다. 재가자의 눈은 이미 알고 있다. 종단이 건강해지는 길은 공개와 책임뿐이라는 사실을.
대한불교조계종이여 혁신하라.
여러개의 계파 놀이.
이재명 대통령처럼 종단회의 실시간 생방으로 하라, 재가자들은 궁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