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50대 중반이고 이과였고 평생 이공계 전공으로 트레이닝 받고 그걸로 먹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판단 기준이나 생각이 그쪽으로 거의 고착된 사람이라고 해야할까요?
논리적이라면 논리적이고 간결하고 명확하고 확실한 걸 선호하는 편이고요
애매모호한 걸 사실 잘 감당하지 못하는 편이고 애매모호할 때는 판단을 유보하고 지켜보는 편이랄까요?
그냥 취미생활로 평생 그림 구경하고 소설책 읽고 영화 봅니다
제가 하는 문과적 취미죠
요즘 갑자기 꽂힌데가 있어서 올해 들어서 사회학, 경제학 쪽 대중서를 쭉 읽고 있는데요
읽을 때마다 헛웃음이 나다가 참 경이롭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어렸을 때, 그러니까 2-30대에는 미학, 예술, 철학 쪽 책을 읽으면 내가 익숙하지 않은 분야라 모르는 건가보다 했어요. 사실 모르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외계어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도무지 완독을 하는게 불가능할 정도의 영역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읽어도 글자를 읽었을 뿐, 도대체 뭘 읽은 건가 싶고 실체가 잡히지 않는 건 물론 무슨 소린가 해서 머릿속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 그야말로 뇌의 중노동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었는데, 나이를 먹고 줏어들은게 조금씩 쌓이다보니 어설프게 감을 잡는 것들이 생기기는 하더라구요
그러니 정확히 아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모르는 것도 아니고, 아주 요상 얄딱꾸리한 상태... ㅎㅎㅎ
이 상태에서 문과 책을 읽으니 너무 너무 웃기더라구요
무슨 말을 이렇게 꽈서 어렵게 썼나 하는 책들이 너무너무 많아요
이중부정을 기본으로 깔고 가는 문장들
한문장을 붙들고 끙끙 거리면서 곰곰 따져보면 정작 별것도 아닌 말을 문장을 꼬아놓고 부풀려서 겁나 어렵게 썼는데 알고보니 별소리 아닌 문장들이 얼마나 많던지...
어떤 책들은 내가 문장을 다 뜯어고쳐놓고 싶을 정도더라구요
그나마 요즘 나온 책들은 문장이 간결하고 깔끔하고 쉽게 씌여있어서 그나마 나은데, 우와, 고전으로 취급받는 책들은 장난이 아니던데요
게다가 번역서는 원저자의 꼬임에다 번역의 문제까지 얹힌 건가 싶을 정도로 머릿속에서 몇바퀴나 꽈배기를 틀은 문장을 읽다보면 이걸 읽고 이해하는 사람들을 존경하게 되더라구요
번역서 말고 원서로 읽어야하나를 고민하게 만드는 문장들...
그나마 영어권 도서면 그런 도전이라도 하지, 프랑스어, 독일어 이런건 어찌해야합니까? ㅎㅎㅎ ㅠㅠ
이게 전공이 아니니 망정이지 20대에 이걸 읽고 공부를 했어야 했다면 나를 얼마나 책망하고 머리를 쥐어뜯었을까 싶던데요
미학, 철학 공부하신 분들, 진짜 농담이 아니고, 존경스럽습니다
어떻게 이런 책들을 극복하신 건가요?
개념의 문제 이전에 문장을 읽어낸 것 자체가 경이로울 지경입니다
이렇게 희한하게 문장을 써 놓으면 있어보여서 그런건가? 아님 쓰고자 하는 개념 자체를 저자가 정확히 알고 쓴게 아니라서 그런가? 별별 생각이 다 들면서 실성한 사람처럼 히히거리면서 꾸역꾸역 읽고 있다는...
그나마 경제학쪽 책은 좀 나은데, 사회학쪽 책에 미학, 철학 이런 거 언급이 나오니 머릿속이 엉망진창
이과의 글쓰기는 누가 읽어도 똑같은 내용을 전달하는게 목적인 경우가 많아서 가장 쉽고 간결하게 쓰는 걸 목표로 하기 때문에 평생 이런 글만 읽어왔던 저한테는 정말 문과 문장들은 아직도 적응이 안됩니다
개념은 확실하고 신선한데도 문장이 너무너무 이상해서 한쪽 진도 나가는데 몇시간이나 걸리는 책을 붙들고 있다가 하소연 한번 해봅니다
인문학 전공하신 분들, 이런 역경을 극복하고 공부하셨다니,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제 능력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되는 분야라는 생각, 책 한줄마다 절절하게 느끼면서 읽고 있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