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법개혁과 관련해 판결의 내용 자체를 근거로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가졌다. 이것이 오늘자 신문지면에 실리고, 인터넷 기사에도 올랐다.
https://www.ajunews.com/view/20250921103512696
이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한 글이다.
<사법부 독립은 공정한 재판에서 시작한다.>
12.3 내란 이후 매우 충격적인 장면 중 하나가 윤석열 내란수괴에 대한 구속취소 인용이었다. 담당 판사 지귀연이 내세운 명분은 ‘의심스러울 땐 피고인의 이익으로’였다. 용납할 순 없어도 일응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구체적 사유를 확인해 보니 형사소송법을 위반한 자의적 해석이었다. ‘법왜곡죄’를 신설해야 한다는 대표적인 사례가 돼버렸다. 그렇다면 사법부는 ‘의심스러울 땐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법의 대원칙을 평소에도 그토록 지켜왔는가?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이 있었다. 홍준표가 국회의원 시절 1억 원을 당대표 경선자금 명목으로 받았다는 혐의다. 여기서 재판부는 돈을 건넨 이의 진술이 추상적이고 추론만으로 진술한 점, 진술내용의 일부가 일관되지 않고 객관적 사실에 반한 점, 허위진술의 동기가 있는 점, 수사기관에서는 구체적인 사실관계도 포함해 진술했음에도 법정에서는 인상 깊은 것만 기억하고 있는 점 등을 이유로 그의 자백진술을 그대로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하여 무죄를 선고했다. ‘의심스러울 땐 피고인의 이익으로’를 지킨 사례다.
최근엔 이재용 삼성 회장의 자본시장법 위반 등의 사건이 있다. 삼성의 불법승계를 위해 부당합병과 회계부정 등을 범했다는 혐의다. 이미 관련 사건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과 형사처벌을 받았고, 서울행정법원도 회계부정의 불법성을 인정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재용 삼성 회장은 23개 혐의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받았다. 위법수집증거가 결정타였다. 수사기관의 절차 위반으로 증거능력을 배제하는 것이 도리어 실체적 진실 규명과 형사사법 정의에 반하는 것으로 평가될 땐 위법수집증거도 예외적으로 유죄인정의 증거가 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2007도3061)도 있지만, 그럼에도 역시 ‘의심스러울 땐 피고인의 이익으로’를 지킨 사례다.
여기까지 보면, 사법부는 ‘의심스러울 땐 피고인의 이익으로’를 지키는 인권의 최후 보루다.
하지만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사건이 있었다. 한명숙이 국회의원 시절 3차례에 걸쳐 불법정치자금을 받았다는 혐의다. 그러나 돈을 건넨 자가 검찰 소환 조사에서의 진술을 정작 법정에선 번복하였다. 당연히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의 신빙성이 의심되었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이것만으로 검찰 진술의 신빙성이 부정될 수 없다고 판단하며 검찰의 손을 들었다. 한명숙 전 총리는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오죽하면 이것을 반대하는 ‘반대의견’이 덧붙여진 판결이었다. 심지어 훗날 검사의 모해위증 교사가 있었다는 것이 사실상 드러난 사건이기도 하다. 이처럼 유죄 판단에 합리적 의심이 있었지만, ‘의심스러운데 검사의 이익으로’ 판단한 사례다.
최근엔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사건도 있다. 유동규 전 상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이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의 측근인 김용에게 금품을 전달했다고 진술한 것이 핵심 증거가 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다. 하지만 수사과정과 법정에서 유동규의 진술은 수차례 바뀌었다. 그 배후에 검찰의 회유가 있었다는 의혹 속에 일관성 없는 그의 진술은 그 신빙성을 의심하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본질적인 부분에 있어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할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고 보았다. 이에 김용 측은 검사의 공소사실을 탄핵하는 구글 타임라인을 제출했다. 돈을 받았다고 문제 삼는 일시를 포함해 김용 전 부원장이 이동했던 모든 기록을 제출함으로써 검사의 공소사실이 객관적 사실과 일치하지 않음을 증명한 것이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구글 타임라인의 무결성과 정확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다른 사건들에서는 채택하는 구글 타임라인이라는 증거를 믿을 수 없다며 검찰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김용 전 부원장은 징역 5년을 선고받아 법정구속됐다. 차고 넘치는 합리적 의심 앞에서도, ‘의심스러운데 검사의 이익으로’ 판단한 사례다.
위 두 사건에서 사법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렇다면 합리적 의심이 있을 때 사법부가 누군가에겐 피고인의 이익으로, 누군가에겐 검사의 이익으로 판단했다는 강한 의구심이 들지 않은가? 자기모순에 빠진 사법부의 잣대가 심히 의심스럽다. 판사도 사람인지라 다양한 구성에 따른 결과라고 선해할 수 있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이 있다. 위 이재용과 김용의 서로 다른 판단을 한 항소심 재판부가 동일한 재판부다. 심지어 같은 재판부의 똑같은 판사들이 올 2월 초 불과 3일 간격을 두고 선고한 전혀 다른 판결이었던 것이다.
사법부의 독립은 공정한 재판을 전제로 지켜진다. 삼권분립은 견제와 균형으로 이루어지는 만큼, 사법이 공정성을 잃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면 국민주권으로 견제돼야 한다. 근래 사법개혁의 요구도 그것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공연히 외부로부터의 사법부 독립만을 외칠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먼저 공정한 재판과 원칙의 일관된 적용을 위해 사법부 스스로를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위 사례 중 아직 확정되지 않은 재판이 있다. 김용 전 부원장의 사건이다. 대법원에서 상고심이 진행 중이다. 사법부에 남은 기회인지 모른다. 여기서만큼은 사법부가 ‘의심스러울 땐 피고인의 이익으로'의 원칙을 지켜 자기모순이라는 불신과 오해를 불식시켜 주길, 이를 통해 사법부 독립을 주장할 자격을 갖추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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