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비오는 금요일
남편이 하루 논다고 해서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에 같이 갔어요
혼자서 여러번 갔던 곳인데 복작거리는 서울 안에서 서울답지 않게 조용하고 건물 자체가 매우 멋진 작품이라 제가 아주 좋아하는 곳인데 비까지 오니 운치있더 더 좋더라고요 (제일 좋은건 언제 가도 사람이 없어서 혼자 앉아서 생각하거나 멍때리기 딱 좋아요. 카톨릭 신자분들은 미사도 드리고, 서울 안에 이런 곳이 있나 싶은 하늘 광장, 지하 묘지 같은 카톨릭 박해역사 전시 공간, 곳곳에 적절하게 놓인 작품들은 미술관에 온 듯하고, 어둠 속에 차분한 생각의 시간으로 이끌어주는 위안의 공간, 지상의 푸른 풀밭과 작품들이 어우러진 역사공원,.. 등 양파같이 계속 나오는 공간들이 신기한 곳)
여기저기를 구경하고 나서 '하늘길'이라는 곳을 보러 갔는데 그곳은 좁고 오르막 경사가 진 언덕길에 커다란 돌 조각들이 늘어져있는 '발아'라는 작품이 전시되어 있어요
군데군데 하늘이 보이게 높게 오픈된 밝은 색 시멘트 천정에 길이 점점 올라가게 되어있어서 죽어서 하늘에 올라가는 느낌이 이렇지 않을까 상상이 되는 곳인데 커다랗고 속이 뻥 뚫린 커다란 바윗돌을 식빵 썰듯 5등분한 조각들이 밑에서부터 위까지 놓여있어요
저는 그걸 보며 사람이 죽어서 알맹이인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면서 하나씩 벗어놓은 이승의 옷, 육신의 껍데기 같다고 했어요
남편은 제목이 부적절하다며 자기라면 '얌체'라고 지었을거라고...
뜬금없이 뭔 소리냐 했더니 누군가 빵을 잘라서 속 앙금만 파먹고 껍데기를 하나씩 버리며 도망간 것 같다고.. ㅎㅎ
진지하게 듣다가 빵 터져나온 웃음을 입으로 얼른 틀어막았죠
너무 조용한 곳이라...
뻔한 고정관념의 테두리를 못 벗어나는 제 눈에 34년을 살았는데도 매번 처음 접하는 발상과 순발력으로 가득한 남편이 신기방기~
교과서 표준전과같은 사람이 얌전한 얼굴과 목소리로 한번씩 저런 소리를 하니 반전 효과까지..
매일 한번 이상은 웃고 살자는 주의인데 덕분에 어제 할당치는 채웠네요 ^^
네 남편 자랑 코딱지만큼에 ㅎㅎ 가실 데 마땅치 않은 분들, 혼자서 어딜갈까 망설이는 분들께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강추드리며 이만 물러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