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로 쓸려다가 그냥 제 이야기여서 따로 써요.
그 여고 선생님은 나이가 몇인지 모르겠는데 저는 70년대 초반생입니다. 90년대 초반 학번이구요.
기억하실진 모르겠지만 제가 대학쯤 여권 운동이 본격적으로 열매를 맺던 시절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됐거든요.
특히나 저는 굉장히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자랐음에도 아들딸 남녀 차별에 심한 거부감을 갖고 자랐어요.
제 위에 언니들이 많은데 언니들은 다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더라고요.
그러다 대학을 갔고 당연히 그 원글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만 해도 여자는 대학을 아무리 잘 가도 대학 졸업할 때쯤에는 결혼 예정자가 있어야 부모들이 안심을 했고 직장 생활 몇 년 한 후에 임신과 동시에 사표 쓰고 나오는 게 암묵적 룰이었어요.
물론 지금처럼 그때도 교사 공무원 약사 이런 직업들은 좀 달랐구요.
저는 제 힘으로 대기업에 들어가서 커리어를 쌓으면서 멋진 여성이 되고 싶었어요. 절대 남자한테 의존하지 않고 살겠다고 다짐했죠.
남자도 사귀지 않고 스펙도 쌓으면서 공부도 열심히 했어요.
그리고 대학 졸업하기 전에 4학년때 유명 모 대기업 인턴으로 합격했습니다. 그때는 인턴 합격이 정규직으로 들어가는 코스였어요. 제가 상경계열인데 그때도 여자는 드물었어요.
나름 자부심도 컸고 세상이 다 내 것인것 같고 열심히 노력하면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으리라 확신도 가졌죠.
당시 물가대비 급여도 높은 편이었어요.
아버지가 엄마랑 자식들한테 돈으로 갑질하는 분이었는데 내가 벌어서 내가 쓰니까 그것도 너무 좋더라구요.
그런데 입사하고 나니까 예상치 못한 돌발변수가 생기더라고요.
의외로 제가 일을 너무 못하는 겁니다.
인턴 때는 잡일만 시키니까 몰랐는데
하필 제가 들어간 부서가 꽤 중요도가 높았어요. 의전 담당 역할도 조금씩 했구요.
처음에 혼나도 이러면서 배우는 거지 했는데 너무 많이 혼이 나니까 진짜 눈물 흘릴 때도 있고
서서히 자긍심이 무너지더라구요.
그리고 그 높은 분들이 많은 곳에서 아무리 날고 뛰어도 여자로서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는 거를 봤어요.
내가 지금 일을 못 해서 혼나고, 이 설움을 참고 견뎌도, 아무리 노력을 해도, 회사에 다니는 동안
매 순간순간 한계를 느끼겠구나 깨달음이 온 거죠.
이 깨달음이 정말 빨리 온 거예요.
만약 공대 쪽이나 자연계 연구 분야였으면 쫌 달랐을것 같기도 한데 어쨌든 당시 제 위치에서는 입사한 지 2년도 안돼서 이 모든 것이 다 눈에 보이더라구요.
그리고 그때부터 20년 넘게 가졌던 제 가치관이 흔들리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좀 더 객관적으로 나를 보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그 당시엔 공무원 되는 게 어렵지 않아서 한 1년 공부하면 7급 공무원 합격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공무원을 잠깐이면 몰라도 평생은 못하겠더라구요. 그렇게 한 26세 되니까 집에서 선을 보라는 거예요. 그때만 해도 여자가 26넘어가면 집안에서 결혼시켜야 된다고 안 달 복달하던 시절입니다.
강제로 선을 보는데 다 눈에 안 들어오는 거예요.
물론 상대방 남자들은 다 애프터 신청을 했어요.
제가 외모가 좀 됐거든요.
나중에 보니까 그래서 외국 바이어들 많이 상대하는 부서로 저를 배치한 것도 있었던 거 같아요.
정말 인생이 서서히 바닥으로 내려갈 쯤
저희 남편을 만났어요. 전문직이었고
우연히 잠깐 이야기를 했는데
나랑 나이 차이도 별로 없고 겨우 20대 후반인데도
뭔가 아빠 같은데 따뜻한 느낌?
우리 아빠는 무지 무서웠거든요.
순간 내 커리어 직장 다 내려놓고
이 남자한테 시집가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이 드는 거예요.
태어나서 남자한테 의지하고 싶다는 생각 처음 한 것 같아요.
그런데 이미 스쳐 지나간 인연이라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이 남자가 저한테 연락을 한 거예요.
이 남자도 저를 못 입고 연락처 알아냈더라구요.
당연히 연애 4개월만에 일사천리로 결혼을 했습니다.
새 신랑은 직장생활 열심히 해봐라 도와주겠다.
그때만 해도 여자가 아무리 직장 생활을 해도 아침밥 잘 차려서 남편 먹게 해줘야되는 시절인데
남편이 아예 아침을 안먹더라고요.
그리고 저녁은 늦게까지 일을 하니까 또 안 먹고 들어오고요.
가끔 퇴근 시간 맞을 때 되면 저 데리러 와서 같이 퇴근하고요.
그리고 아이들이 들어서면서 결국 그만뒀어요.
전업으로 살다가 남편이 개업하면서 개업 전두지휘를 제가 했고 관리 업무를 제가 해요.
관리 업무라 봤자 초라하죠 예전 대기업 다닐 때에 비하면요.
그리고 세월이 흘렀어요.
그때 같이 일했던 여자 동기 중에 1명은 저보다 일을 더 못 했었거든요. 근데 고만고만한 회사원 남편이랑 결혼해서 직장 못 그만두고 다니다가 작은 데로 이직을 했는데 그 작은 회사가 대박이 터진 거예요.
거기다 직급도 계속 올라가서 이젠 제가 쳐다도 볼 수 없는 사회적 지위 차이에요.
또 같은 부서 여자 후배는
제가 연애할 때 걔는 대학원 다니기 시작했거든요.
직장과 대학원을 같이 병행하길래 정말 쟤 힘들겠다 싶었는데 몇년후 그만두고 유학가더니 시강부터 시작해서
지금 지방국립대 교수에요.
저는 그냥 그 평범한 아줌마예요.
그 여고 선생님 글을 읽어보니
저의 20대가 떠올라서 쫌 울컥했어요.
제 결론은
인생은 정답이 없는 거 같아요.
그리고 원인과 결과가 일직선 모양이 아니고 입체적이란 생각도 들고요.
또 요새 드는 생각은 인생을 너무 길게 보려고 하지 말고 짧게 보면서 살아가는 게 또 현명한 것 같기도 하구요.
또 그 선생님 글에서는 좋아하는 일보다는 잘하는 일을 하라고 하는데
저는 이건 반대입니다. 잘하는 일보다는 좋아하는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잘하는 일로 먹고사는 건 잠깐은 해도 평생은 못 할 것 같아요. 인생이 너무 지겨울 것 같거든요.
이래서 제가 그 당시에 서울교대 가라는 담임 선생님 말 안 듣고 상경대 갔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