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살림만 하면서 살고싶었다는 엄마

목요일 조회수 : 3,411
작성일 : 2025-02-13 21:09:27

집에 있을때면 제일 많이 하는일이

설거지예요,

힘들이지않고도 잘 닦여지는 물컵도 있는가하면

힘써서 닦아야하는 밥솥도 있어요.

스텐수세미가 닳고 그 찬란한 빛을 잃은댓가로

거듭 깨끗해진 우리집 냄비들, 컵들, 접시들.

그 단촐하고 평범한 일상이

엄마에겐 이루기 힘들었던 삶이었어요.

 

어쩌다, 한동네 살던 이모네 가면

다들 외출했는지 빈집인경우가 있는데

그럴때마다 어지럽혀진 소파위의 옷가지를 치우고

산더미처럼 쌓인 그릇들을 설거지하고,

수건을 삶고, 이불홑청을 빨아, 옥상위 빨래줄에 널면

바람결에 나부끼며 펄럭이는 청결한 냄새들.

냉장고를 정리하고, 꽃무늬 식탁보로 깔고 

온집안 청소를 한뒤 말간 유리창너머 보이는 마당의 꽃들.

청결한 꽃무늬식탁보와, 

뽀얗게 말라가는 빨랫줄의 수건들이

바람결에 나부끼며 흔들리는 그 일상의 잔잔한 그림들이

엄마에겐 평생을 이루지못한 꿈이고, 가보지못한 노스텔지어였구나.

 

유년시절, 인상깊은 성경구절이 있어요.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며 오소서 주님하고

군중들이 반겨맞으며 기다렸다는 내용이

저는 종종 생각나요.

사람들마다, 손에 들고 흔드는 바램이 있을텐데

주님을 바라는 사람들은 종려나무일테고.

우리 엄마는 빨랫줄위의 하얀 수건들일테고

게다가 언젠가

평생을 가장의역할을 하지못한채

식당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온언니에게 기대며 살았던 형부가 누군가와 채팅하면서

쓴 편지도 발견이 된적있었어요.

그대를 알아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손엔 하얀 손수건을 흔들고

입엔 빨강 양말을 흔들고 서있을까요.

언니말로는, 평생 이런 다정한 말을 해준적이 없는 사람이

채팅창에선 이런 근사한 시를 썼대요.

늘 술만 마시고, 세상을 향해 포효하던 아빠는

평생을 그렇게 살다갔어요.

그런 아빠덕분에 엄마는 몸으로 할수있는 모든 중노동은 다 해야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채를 잡혀 밤새도록 잠못자는 고통도 겪어야 했어요.

가끔, 온몸에 암이 퍼져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손쓸수가 없이 무섭게

고통당하고 간 아빠가 생각나요.

엄마의 일상에 단한번도 놓여보지못한 꽃무늬 커피잔,

외롭고 힘들었어요. 그 삶이 저물듯, 저물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깨끗이 정리된 엄마의 싱크대와 꽃들. 저는 알아요.

치열하게 살아낸 오늘의 흔적이라는것을요.

 

IP : 58.29.xxx.183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탄핵인용기원)영통
    '25.2.13 9:14 PM (116.43.xxx.7)

    님 글 읽고 눈물이 살짝 맺히네요.

    어머니 존경스럽네요..
    그 일상의 전투를 이겨내신 분.

    님과 님 어머니에게 이제 행복이 가득하면 좋겠어요.

  • 2. 이렇게 글로
    '25.2.13 9:16 PM (211.185.xxx.35)

    풀어 놓으니 엄마의 삶도 아빠도 언니도 형부도..모두 영화속 등장인물 같애요
    지금은 살림만 하고 계시겠죠?
    엄마 인연으로 아빠를 만났고 귀한 자식 얻었으니 힘들어도 살 힘이 생겼을거예요
    아빠는 이승에서 엄마를 더 훌륭한 존재로 만들어주기 위한 역할이었나 봐요
    글쓴 사람도 읽는 사람도..우리 모두 다 행복합니다

  • 3.
    '25.2.13 10:54 PM (119.193.xxx.110)

    글을 참 잘 쓰시네요
    그 잔잔한 일상이
    엄마의 평생 이루지 못한 꿈이라니
    슬프네요
    오늘도 투덜거림으로 하루를 마무리 했는데
    반성하고 갑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684118 지인에게 감동했어요 20 2025/02/16 5,699
1684117 스타킹 비너스 or비비안 ? 1 비너스 2025/02/16 690
1684116 봉지욱- 국힘 내부비밀 보고서도 함께 공개 하겠습니다. 10 000 2025/02/16 2,436
1684115 지금 취업시장은 거의 IMF급임 10 ... 2025/02/16 3,942
1684114 전광훈의 13개 사업장 10 결국돈이구나.. 2025/02/16 2,190
1684113 예비대학생 아이패드 살려는데 도움 좀 12 문과남자 2025/02/16 1,181
1684112 달고나가 달지가 않아요 4 달고 2025/02/16 761
1684111 홍장원 ‘45년 지기’ 홍창성 교수가 쓴 글 14 ,, 2025/02/16 4,235
1684110 당근 거래 거절 했어요 11 오늘 2025/02/16 4,033
1684109 명품백 추천 16 이제 곧 6.. 2025/02/16 2,358
1684108 친정엄마들은 금을 며느리or딸 누구에게 주나요? 31 ..... 2025/02/16 4,723
1684107 사회생활 하시는분 요즘 다니는 회사 어떤가요? 9 ... 2025/02/16 1,830
1684106 윤석열은 홍장원에게 전화를 했고 34 @@ 2025/02/16 4,615
1684105 알뜰요금제 단점은...? 33 고민중 2025/02/16 3,147
1684104 사양꿀 결정은 어떻게 하나요? 2 2025/02/16 697
1684103 현대백화점에 @@@ 2025/02/16 920
1684102 집, 교육 해결해주면 누구라도 뽑을 거예요 38 ... 2025/02/16 2,304
1684101 은둔 독거인은 어떻게 해야하나요 29 2025/02/16 3,873
1684100 위대장내시경 병원 추천부탁드립니다(서울) 4 감사 2025/02/16 627
1684099 경조사비 지긋지긋 해요. 8 나도막쓸래 2025/02/16 3,308
1684098 상대방이 분노를 표출할때 어떻게 대응하세요? 6 ㅇ ㅇ 2025/02/16 1,389
1684097 자녀들 외출할 때 부모께 인사하나요? 7 ... 2025/02/16 1,859
1684096 드라마에서 방문 닫는 이유…? 5 2025/02/16 3,160
1684095 대딩아들 고혈압 17 2025/02/16 3,890
1684094 주변에 친구가 없는건 인성문제가 아니예요. 116 .... 2025/02/16 22,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