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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나는 포항에서 태어났다

사랑 조회수 : 2,107
작성일 : 2025-02-10 18:31:45

 

나는 포항에서 태어났다

 

내가 태어난 집의 집주인은 남편을 잃고 아이들을 혼자 키우며

작은구멍가게를 하고 또 방을 세를 놓는 일을 하시는 분이었는데

세놓은 방에서 태어난 나를 너무 예뻐하셔서

아침에 구멍가게 문을 열러 가시면서

엄마한테 와서 나를 데려가시는데

이미 아이가 셋이 더 있는 엄마에게서 아마

나를 떼서 봐 주신 것 같았다

 

아주머니는 나를 업고 일하셨고

나를 너무 예뻐하셨는데

우리 가족이 내가 돌무렵에 다시 부산으로 가게 되어

아주머니는 나와의 정을 떼는게 너무 힘들어 우시며

<다시는 사람들에게 정을 주지 않겠다>하시며

눈물속에 나를 보내셨다고 한다

 

이사오는 날 마당에서 찍은 사진에 아주머니는

내 손을 잡고 있으셨다

 

아주머니가 나를 너무 보고 싶어하셔서

그 집 고등학생 오빠가 여름방학때

나를 데리러 왔다

 

방학동안 데려갔다가 다시 데려다 주기로 하고

엄마는 나의 짐을 싸서 마루 끝에 짐가방을 놓았는데

오빠가 나를 안고 일어설때

엄마는 갑자기 너무 무서워져서

오빠에게서 나를 빼앗아 안고 못 보내겠다고 하셨다 한다

 

다시는 못 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고등학생이던 오빠는 그냥 돌아갔고

그리고 오랫동안 소식이 끊어졌다

 

 

엄마는 자식도 많은데 그날 그렇게 무서웠어?

하고 물으니

 

지금 보내면 영원히 못 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며 그 순간 나를 빼앗아 안으셨다고 했다

 

오빠 가족과 우리 가족은 오랫동안 소식이 끊어졌다

 

 

9살 나는 그 때

자주 삐져서 혼자 옥상에 올라가 서있곤 했는데

그날도 옥상에 혼자 서 있었다

 

멀리서 젊은 남자가 바람에 머리가 날리며

걸어올라오는데 나를 보고 웃었다

 

계속 우리집을 향해 걸어와 옥상에 있는 내 이름을

불렀다 네가 정희지

 

오빠는 대학도 가고 군대도 갔다오고

은행에 취직을 하고 다시 우리 가족을 찾아왔다

 

엄마가 뛰어나와 오빠를 얼싸안았다

 

오빠는 엄마가 밥을 차리는 동안 나를 데리고 나가

시계방에 가서 손목시계를 사서 내 손에 채워주었다

 

정신이 얼떨떨했다 처음 가져보는 고가의 물건이었다

꿈일까 생시일까 믿을수가 없었다

오빠가 가고나자 엄마는 내게서 시계를 받아

줄을 바꿔서 큰언니에게 주었다

 

그때부터 오빠는 우리집에 자주 와서 마치 우리 가족처럼

지냈음 내가 갖고 싶어하는 것이나 부끄러워서 말하지

못하는 것도 뭐든지 사주고 갔다

 

언니들이 이번에 오빠가 오면 이거 사달라고 해라고

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절대 그런 짓을 하지는 않았다

 

어느 날인가 오빠가 엄마와 나를 데리고 서면에 가서

어떤 식당에 들어갔는데 <소금구이>라고 적혀 있었다

소금을 구워 먹는다고?

소금을 구워 먹는다고?

 

오빠와 엄마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들어가면서 본 소금구이가 궁금해 견딜 수

없었다 

 

소금구이는 돼지고기를 그냥 구워 소금에 찍어먹는

음식이었고 나는 소고기국이나 불고기는 먹어봤지만

고기를 그렇게 구워서 배불리 먹는 건

처음 해보는 일이었다 잊을 수 없는 <소금구이>

 

 

10살이 되었을 때

오빠가 이번 어린이날에 아주머니를 만나러

포항에 가자고 했다. 처음으로 엄마를 떠나 짐가방을 들고

오빠를 따라 기차를 타고 포항에 갔다.

 

마당이 넓은 집이었다

 

아주머니는 큰 물통에 푸파푸파 많은 빨래를 하며 아들이 들어와도

심드렁하게 맞으셨다 따라들어오는 나를

누구냐 묻는데 오빠가 하숙집딸을 데리고 왔다며

한번 속인후 이내 내 이름을 말하자

아주머니는 번개같이 일어나 나를 안으며

반가워하셨다 포항에서의 꿈같은 2박3일이었다

아이 많은 집에서 나의 요구란 것은 없이 살았는데

가족들 모두 나만 바라보고 예뻐해주셨다

그 시절은 어떻게 그런 시절이었을까

 

선물과 옷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11살에

그해 광주에서 폭동이 일어났다고 했다

 

오빠는 광주에 있었다 오빠가 있는 은행은 셔터를 내렸고

밖에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했다

오빠는 퇴근하지 못하고 집에 가지 못했다

 

내가 중학생이 되자

오빠는 결혼을 하고 가장이 되고 아버지가

되었다 가장이 된 오빠는 예전처럼 우리에게 자주 오지

못했다

어린이날에 갔던 포항의 집

 

넓은 마당의 물통에서 찰랑거리던 물이 기억나곤

했다

 

오빠는 일찍 아버지가 없었고 형제들은

거칠고 어머니는 덤덤했다

 

상냥하고 따뜻했던 오빠는

우리 엄마와 마음이 맞아 학교를 마치고 오면

우리 단칸방에 와서 우리 가족과 부비며 지냈다

나를 예뻐했다

그 마음을 오빠는 평생 버리지 않고 산 것 같았다

 

오빠는 우리 가족에게서 멀어져갔고

나는 사춘기여서 그때는 내내 부끄럽기만 했다

 

 

오빠의 결혼식

오빠의 아이들의 돌잔치

또 오빠가 아팠을때

엄마만 기차를 타고 오빠에게 다녀왔다

 

나는 많이 자라서 엄마를 따라 다니지 않았고

오빠의 소식만 들었다

 

오빠는 왜인지 언니와 마음이 맞지 않았고

언니는 엄마에게 오빠가 같이 살기 힘든 사람이라며

하소연을 한다고 했다

 

그렇게 좋은 오빠가 왜

나는 언니와 오빠가 행복하게 살기를 바랐다

 

 

 

아주머니가 돌아가셨다

 

오랫동안 오빠와 보지 못하고 살았다

 

 

내가

33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35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오빠는 엄마가 살아계시는 동안 엄마에게 해를

끼친 적 없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엄마의 장례식에는

평생 엄마를 괴롭혔던 많은 사람들이 와서 먹고 마시고

울고 떠들어댔다

엄마의 많은 시형제들과 엄마의

형제들이었다

 

나는 너무 오랫만에 오빠를 만났다

 

오빠는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오빠도 나이가 드는구나

오빠는 나이들고 초췌했다

 

옥상에서 바라보았던 젊고 늠름하던 멋진 청년이

떠올랐다

 

엄마에게서 꾸중을 듣고 혼자 울적하게

옥상에 서 있는데 그때 오빠가 왔다

 

네가 정희지 오빠가 내 이름을 불렀다

 

 

엄마의 장례식에 오빠는 오래 머물지 않았다

 

<왜 좋은 사람들이 일찍 죽는지 모르겠다>

 

<너희 어머니는 너무 좋은 분이셨다>

 

오빠는 일찍 일어나서 갔다

장례식에서 들은 가장 좋은 말을 오빠가 해주고 갔다

 

 

 

오빠와 나는 가끔씩 연락하고 지낸다

 

지금 오빠는 귀가 잘 안 들리고 이명이 심해

힘들다고 했다

 

포항에서 보낸 어린 시절 물에 너무 오래 있어

그때 귀를 상했다고 했다

 

이명이 심해 멀리는 가지 못한다고 했다

 

 

가끔 내가 명절이라고 과일이라도 보내면 오빠는

진심으로 보내지 마라하고 또 언제나 미안하다고 한다

 

미안하다

 

오빠는 그렇게 주었으면서 받는 것은 힘들어한다

 

 

오빠와 연락 안한지가 오래 되었다

또 전화를 한번 드려봐야겠다

 

 

오빠는 평생 우리 가족과 엄마와 나를 사랑하고

아꼈다.

 

 

문간방에 살던 가족과 세를 놓던 주인집의

아들은 평생 서로를 사랑했고 가족처럼 지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었을까

 

가끔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그 시절에는 어떻게 그런 일이 있었던걸까 하고

 

어떻게 그런 사랑이 있을 수 있었을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IP : 211.203.xxx.17
19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25.2.10 6:39 PM (223.39.xxx.197)

    보이지 않은 어떤 선한 인연이었나봐요
    소풍같은 이 삶에서 따뜻한 인연들
    감사하네요

  • 2. ..
    '25.2.10 6:41 PM (223.39.xxx.128)

    아름답습니다

  • 3. 너무
    '25.2.10 6:50 PM (106.101.xxx.57)

    따스한 이야기네요

  • 4. 그리움
    '25.2.10 7:03 PM (211.36.xxx.237)

    때로는 가족 같은 이웃이 있어요
    아마도 전생에 가족 아니였을까 생각하며
    한편의 소설을 읽은듯 하네요
    어쩌면 내게도 있던 그런 나날들을 이글을 읽으며
    아득했던 그 때를 떠올려 봅니다

  • 5. 아스라한
    '25.2.10 7:28 PM (122.40.xxx.144)

    동화같은 기억들이네요..
    따뜻하게 머물렀던 아주머니와 오빠의 다정함이
    사는 내내 그리움으로 넘아있을듯해요~

  • 6. ..
    '25.2.10 7:41 PM (14.45.xxx.213)

    피천득의 인연이 떠오르네요
    아름답고 정겨운 한편의 수필같아요
    아름다운 시절의 아름다운 사람들...

  • 7. 따뜻
    '25.2.10 7:46 PM (121.175.xxx.142)

    단편 소설 읽은듯해요
    님 글 잘적으시네요

  • 8. 바삐
    '25.2.10 7:56 PM (218.235.xxx.72)

    옛생각나는 글,
    잘 읽었어요.

  • 9. . . .
    '25.2.10 8:00 PM (59.10.xxx.58)

    동화일까 소설일까 진짜일까
    아름답고 원글님윽 필력도 좋아요

  • 10. 어머나 소설
    '25.2.10 8:05 PM (116.41.xxx.141)

    인줄
    직접 쓰신거에요?! 대박
    진짜 세상에나 좋으신 사람도 많고 일찍 저세상 가는 사람도 많고 원글님처럼 이리 글로 잘 남기는 사람도 있고 ~~

  • 11. 그러네요
    '25.2.10 8:24 PM (221.153.xxx.127)

    피천득의 인연 떠오르네요.
    그래도 마지막은 만나지 말았을 것을 아니고
    좋은 기억이어서 다행이에요.
    어느 한 구절에서도 멈추지 않고 물 흐르듯 읽히는 걸 보니
    글을 편안하게 잘 쓰시는 분이네요.

  • 12. 방송국이나
    '25.2.10 8:35 PM (118.235.xxx.237) - 삭제된댓글

    내년 12월에 뽑는 신춘문예에 사연 보내세요.
    아름다운 한편의 단편소설같아요.

  • 13. ...
    '25.2.10 8:56 PM (211.206.xxx.191)

    다음편이 기다려집니다.
    이제는 원글님이 예전의 오빠처럼 챙겨 주며
    살면 되는 거죠.
    만나지 못해도 마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오빠와 원글님 축복합니다.

  • 14. 정말
    '25.2.10 9:01 PM (222.118.xxx.116)

    아름다운 글이네요.
    따뜻하고 가슴을 울리는..
    정이란 게 이런 거구나.

  • 15. ㅇㅇ
    '25.2.10 9:14 PM (218.158.xxx.101)

    그 시절엔 정말 어떻게 그런 마음이
    가능했을까요.
    그랬던 시절을 추억해봅니다.
    좋은글 감사해요

  • 16. 잔잔한
    '25.2.10 9:29 PM (211.234.xxx.99)

    감동이 스며드는 글 잘 읽었습니다

  • 17. 너무
    '25.2.10 9:58 PM (58.239.xxx.220)

    따뜻하고 정갈하면서
    눈물나는 글이네요
    잘읽었어요~~~

  • 18. 무슨
    '25.2.10 10:02 PM (106.102.xxx.151)

    글을 너무 잘써요 소설가되세요

  • 19. ..
    '25.2.10 11:20 PM (122.39.xxx.115)

    담담하고 담백하고 아름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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