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아주 가난한 집안의 홀어머니 장녀로 자랐어요.
80년생인데, 다른집 사과밭을 도지로 농사짓는 엄마의 농약줄을 잡아주는 것으로 학창시절의 매일 아침을 시작했어요. 겨울철이 되면 냉이를 씻어 그램수로 파는 엄마 뒤를 쫒아다니면서 눈에 띄는 냉이는 다 캐는 걸로 겨울 방학을 보냈고 봄에는 마늘, 여름엔 고추, 가을엔 들깨 ..
고된 학창시절이었고 엄마와의 교감, 정서적인 허기 같은건 생각도 못하고 지냈어요.
그저 농사일을 하지 않는 그 외의 시간에는 할 것이 공부밖에 없었는데 책을 살 수 없고 근처에 도서관도 없던 시절이라, 하는거라곤 이미 헤진 교과서를 읽고 아랫집 할아버지가 모아둔 신문을 훔쳐읽는 것으로 세상과 소통했던 것 같아요. 그땐 영어를 중학교때부터 배웠는데 이상하게도 영어가 그렇게 힘들지 않았어요.
단어를 외워본 경험이 없는데 영어와 국어가 늘 점수가 좋았어요.
공부를 잘했고 좋은 대학을 갔고 좋은 곳에 취업하고 좋은 사람과 결혼했고
아이둘다 모두 착하고 반듯하게 자라고 있어요.
아무래도 깡시골과 자라온 환경이 이렇다보니 동네 어른들과도 스스럼없이 잘 지내는 성격이라 시어머니도 그렇게 친하게 지낼 것이라는 제 생각과는 다르게 어머니는 참 처음부터 다가가기가 어려웠어요.
여대를 중퇴하시고 국회 비서로 오랫동안 일하신 시어머니는 키도 크시고 아주 미인이셨고 패션센스나 말씀하시는 것이 저희 친정엄마와는 너무나도 다르시더라구요. 처음 어머님을 소개받고 나서 그런 점이 신기하기도 하고 좋았어요. 제가 대기업 해외영업에서 일하면서 만나본 서울 사람들은 다 시어머니 같았는데
저도 왠지 시어머니의 가족이 되면서 그 대열에 합류하는 것 같은 묘한 자긍심이 들었다고나 할까요?
친정엄마 옷은 제가 늘 사다드려야 입으시니 저는 시어머니도 그럴 것이라 생각해서 첫 선물을
분홍니트셋트를 사드렸는데 단칼에 자식(시누가 둘)도 옷선물을 안한다고
옷선물 하지 말라고 하시더라구요. ( 생각해보면 제가 사온 옷이 얼마나 촌스럽게 느껴졌을지..)
친정엄마에게는 월급을 받으면 꼭 얼마씩 드렸어요.
그 돈을 모아서 엄마는 시골집 가전을 바꾸셨거든요.
엄마만 드리기가 뭐해서 시어머니께 약간의 용돈을 드렸는데 생신말고는 봉투를 안받으시겠다고.
봉투를 넣는데 그때는 왠지 무시당하는 느낌이 들어 얼굴이 화끈거렸던 새댁이었네요..
식사를 하면 항상 밥값은 장녀인 제가 지불했는데 시댁에서는 부모님이 내시는 것도
처음에 얼마나 충격이었게요...
명절에 친정은 아빠가 돌아가셨어도 작은아빠가족 삼촌가족이 늘 북적북적이었는데
시댁은 형님들도 잘 안오세요.. 멀리 사셨기도 했지만 살짝 앞당겨서 시부모님 모시고 여행가거나 해서,
명절당일날은 시댁에도 안가고 저와 남편만 덩그러니 있는게 싫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낯설었던 것 같아요)
시어머니가 점점 어려워지고 저를 미워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거리를 두어도 별말이 없으시니 저는 또 그게 답답하고,,,
제가 살아오고 배운 부모자식은 이런 관계가 아닌데 ,,
자주 찾아뵙고 문제가 생기면 해결해드리고 필요한게 있으면 사드리는 그게 자식이라고 살면서 배웠는데..
뭔가 낮설고 불편했어요..
저희 시어머니는 18년 결혼생활 내내 아프다소리 한번 자식에게 안하셨어요.
아프시면 전화하셔라 말씀드렸더니 내가 아파서 전화해도 너희가 119전화할텐데 왜 때문에 시간을
지체하냐 하시더란...
시아버님 돌아가시고 혼자되셨을때 남편에게 우리가 모시자 해서 어머니께 말씀드렸더니,,
내집 놔두고 왜 내가 너희랑 살아야 하나며..
남편이 시아버님이 갑작스럽게 돌아가셔서 제사를 무척이나 지내고 싶어하여 어머님께 말씀드렸더니 본인은 제사지내는 것에 회의적이니 각자의 방식으로 추모하자하셔서 제사는 저희만 지내고 어머님은 연미사로 지냅니다...
80이 넘은 나이에도 충치가 하나 없으시고 허리가 곧으시고 여전히 한두정거장은 걸어다니시고 산을 타도 저보다 잘 올라가시고 (저도 농사일로 단련된 몸이라 남들보다 잘 타는데도)
피부며 옷이며 그렇게 정갈하게 일상을 보내시더니,,
이번 설에 시댁에 다 부르셔서 모처럼 삼남매가 다 모였는데 정말 공평하게 재산을 나누셨더라구요..
본인 장례비 얼마, 묘자리 얼마, 다 구분해서 통장에 넣으시곤 물가 상승률까지 감안해서 여유돈도 ;;
본인이 매월 쓰시는 돈을 계산해서 빼놓으시고 집이며 상가며 자식들 도움없이 다 처리를 해놓으셨더란;;;
본인이 돌아가시면 장례비용 분배하는 것 까지...
정말 이번에 제가 역시 우리시어머니 라는 소리를 하게 되더라구요.
뭐하나 흐트러짐이 없으시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저희 시어머니 처럼 사는게 정말 어려운 것이구나 하는걸 깨닫게 됩니다.
한평생 정말 정갈하게 사시는 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거든요..
저도 그렇게 살고싶긴한데 타고난 성향이란게 있어서 제가 가능할런지..
저는 시어머니와 딱 반대이거든요.. @@@
평생 안맞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