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시어머님 나쁜 분은 아니세요.
다만 본인이 인정욕구가 엄청 강하시고
본인 자체가 제사 매니아여서
제사를 놓지 못하실 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며느리 눈치도 보시고
최대한 배려하려고 노력하시지만
어차피 음식장만 해야하는건 변함 없고
산더미 같은 설거지며 명절노동은 피할 길이 없쟎아요
그러다보니 매번 설거지 다 놔두고 밥만 먹고 가라
이번 제사는 넌 쉬고 아들만 보내라
아무것도 가져오지 말고 나물과 전만 맡아서 해와라
하시는데 처음엔 진심인줄 알고 그나마 생각해주시네
감사한 마음으로 기꺼이 다 했거든요?
그러나 10년 넘게 겪어보니 딱히 위선은 아닌데
말이라도 며느리 듣기 좋게 하자는거지
절대 본심은 아니시더라구요.
뭐 매번 제사 치르고 나면 얼른 집에 보내주시려고 하고
시부모님 생신은 항상 외식하려는 노력 정도는 하셔서
그동안 저도 괜찮다며 다 맞춰드렸어요.
허리가 너무 부실한 디스크 환자인데
작년 말 적출수술하고 2달 넘게 복대하고 있었더니
더 형편없이 부실해져서
어제 하루종일 음식장만하느라
정말 허리가 부숴질것 같더라구요.
그래도 같은 서울이니 후딱 다녀와야지하며
오늘 새벽 6시에 시가에 가서 차례상 차리고
식구들 식사 수발 들고 설거지 하는데
저와 키 차이가 15cm인 어머님 키에 맞춰서 시공한
싱크대 높이에 맞춰 어정쩡하게 구부리고
설거지 하려니 진짜 허리통증에 고통스러워 죽겠더라구요.
그런데 설거지 할 그릇 날라주시던 어머님이
냉장고에 있던 온갖 반찬통들 다 꺼내서
냉장고 정리까지 하시네요?
제가 해서 가져간 명절 음식 정리하고
집어넣으려다보니 그렇겠지만
먹다 남은 밑반찬들 한 두 젓가락 남은 것들은
미리 좀 치워두시던가 제가 설거지 끝내고 간 후에
차근차근 정리하시던가 하면 안되는지
냉장고를 홀딱 뒤집어 대청소 하시는데
저도 오늘 몸이 너무 고통스럽다보니 화가 나더라구요
명절 차례나 제사는 제가 같이 하더라도
어머님 살림까지 해드릴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남편이 제사상 정리하고 제기들 정리해주곤
했는데 오늘은 아침 먹자마자
바로 아버님 방에 들어가서 안 나오길래 가봤더니
혼자 곯아떨어져 자고 있더라구요.
원래 제사 없는 집에서 자랐고 저에겐 제사의 의미도
제로인데 다만 시가의 문화를 존중한다는 의미로
그동안 싫은 소리 한번 안 하고 명절노동 다 한건데
이게 뭔가 싶어 현타 오더라구요.
난 얼굴도 모르는 이 집구석 귀신들 먹이자고
내 몸 갈아넣으며 종년처럼 이게 무슨 짓인가 싶어서.
그래서 어머님께 그동안 싱크대 높이가 너무 낮아
설거지하는거 정말 힘들었는데 이제 저도 나이 들고
디스크가 넘 심해져 내 살림도 못 하고 산다고.
그러니 식세기를 설치해주시던가 다른 방법을
찾아주시면 좋겠어요 말씀드리니
어머님이 정말 당황하시다가 남편 때문에 화나서
그런거라고 생각하셨는지
얘가 안 그러더니 오늘은 왜 저러고 잔다냐 하시며
이래서 여자들만 힘든거지 하시길래
여자들만 힘든 시대가 언제적 얘긴데
그런 말씀 하지 마시라고 잘랐어요.
설거지 끝나고 세배 드리는데 허리 때문에
제대로 절도 못 드리고 일어나려는데 혼자 못 일어나서
남편에게 부축해달라고 했거든요.
그랬더니 그 모습 보시던 어머님이 갑자기 소파에
벌렁 누우시며 아이고 나도 허리 아파 죽을것 같았는데
이제 좀 살겠다 그러시네요?
그래도 괜찮은 축에 드는 시어머니라고 생각했는데
처음으로 며느리도 힘들고 아프다 소리 들으니
그건 못 참으시겠나봐요.
그러시거나 말거나 저나 남편이나 힘들어서
어서 가서 쉬어야겠다고 인사 드리고
짐 챙겨서 집에 와버렸어요.
기꺼이 남의 집 종년 노릇 자처하고 살며
거기에서 자부심 느끼는 시어머님과 제 성향이 너무 달라
답이 안 보이네요.
제가 할 수 있는 범위와 시부모님이 생각하시는
며느리 역할의 간극이 너무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