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인 것 같아서 공유합니다.
[ 누가 맞냐, 다르면 배척해야 하는가 ]
학습결정기라는 것이 있다. 오리는 알아서 깨어난지 24시간 이내에 처음 본 대상을 엄마로 알고 평생 뒤따른다.
사람이 언어를 배우는 데도 학습결정기가 있다. 12세 이전에 외국어를 배우면 유창하게 습득이 가득하지만 이후 배우게 되면 학업성취에 한계가 있다. 물론 개인적 차이가 다소 있기는 하다.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 운영시스템(OS)에는 윈도우, 매킨토시가 있다. 처음 컴퓨터에 어떤 OS를 설치하느냐 여부에 따라 이후 운용할 수 있는 응용프로그램이 제약된다.
오리의 어미 인식이나 OS의 유무로 응용프로그램 사용이 제약되는 것처럼 사람은 어느 진영 어느 집단에 속에 어떤 정보에 익숙해지냐 여부에 따라 대체적으로 그 사람의 성향이 고정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한쪽으로 치우친 사람은 다른 쪽 정보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눈뜬 장님이라는 말이 있다. 분명 눈은 뜨고 있는데 눈 앞에 펼쳐지는 상황을 보지 못하는 것인데, 생각이 한쪽으로 치우쳐 다른 정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눈뜬 장님에 비유된다. 한쪽으로 치우쳐 보는 인간의 어리석음에는 끝이 없다.
지구가 태양 주변을 돈다는 지동설은 오늘날 초등학생들도 아는 과학지식이다. 이런 평범한 진리가 중세 이전에는 최고의 천재들도 알지 못했다. 정치적, 종교적 어리석음도 이에 비유될 수 있다. 이런 류의 어리석음은 그 사람의 지적 역량과 상관없이 어느 쪽으로 치우치느냐 경향성의 문제라는 것이다.
내가 6으로 읽는 숫자라도 반대편에서 보면 9로 읽힌다. 내 편이냐 네 편이냐 여부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도 한다. 사람 사이의 이런 사고와 관점의 간극으로 인해 인간관계에서 서로 화합불가의 대립과 갈등으로 치닫기 쉽다.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대립 역시 어떤 신을 믿느냐의 사고의 문제이다.
사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우리 가족, 이웃, 친구 중에도 이렇게 입장이 다른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정치적 입장이 첨예한 상황에서 서로 공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서로 다른 점은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고, 서로 공감하는 접점을 늘리면 된다.
상대의 다른 생각을 내 생각으로 바꾸려고 논쟁을 벌이는 순간 상대는 자신의 인간적 가치를 거부당한다는 생각에 관계가 단절될 수 있다. 인간의 삶의 가치는 정치가 다가 아니다. 경제, 문화, 스포츠 등 다양한 영역이 있다. 정치나 종교를 위해 삶의 판을 깨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사회의 가치, 부를 창출하는 구성원은 전체이지 어느 일부 집단이 아니다. 즉 생각이 다른 집단도 사회 전체를 이루는 존립기반이라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