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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옛생각

... 조회수 : 1,059
작성일 : 2025-01-17 01:23:32

예전에 미묘한 기류가 있던 동갑 남자와 둘이서 술을 마신 적이 있어요.

우리의 처음이자 마지막 술자리였죠. 

제가 벽을 등진 자리에 앉았고 이 남자는 제 맞은편 자리에 앉아서 둘이 술을 마셨어요. 

한데 화장실에 갔다 와 보니까 이 남자가 벽을 등진 제 자리에 앉아 있는 거예요.

응? 

저는 당황해서 왜 제 자리에 앉아 계시냐고 했더니 

이 남자가 원래 여기가 내 자리 맞다는 거예요. 

거짓말 하는 거죠? 했더니 많이 취했냐고 대답했어요. 

엥? 에엥? 

어리둥절해서 내가 진짜 취했나 싶어서 그냥 맞은편 자리에 걸터앉았죠.

이번엔 남자가 화장실에 갔어요. 

그런데 기다리는 잠깐 동안 제 머릿속에 뭐가 반짝했고 원래의 제 자리인 벽을 등진 자리로 돌아가서 앉았어요. 

남자가 돌아와서 저를 보고 당황하더라고요. 

자리가 왜... 하는 남자의 말에 전 시침 뚝 떼고,

뭐가요? 많이 취하셨나요? 했고요. 

그러고 둘이 실실 웃으면서 술을 마셨네요.  

 

거기서 술자리를 파했으면 좋았을 것을...

그 뒤 집에 가겠다는 말을 뒤집고 2차를 갔다가

2차 술집에서 일어난 일로 우리 사이는 파국으로 치닫고 미묘한 기류는 아주 혼란스럽게 끝나고 말았네요. 

10년 전의 이야기. 

요즘 그 인연이 자꾸 생각나는데 오늘은 그 남자가 너무 보고 싶네요. 

순진한 아이 같은 인상이었는데 알고 보니 거침없이 하이킥의 까칠이 이민용 선생처럼 한 마디도 안 지던 그 남자가. 

 

IP : 221.162.xxx.37
1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25.1.17 1:27 AM (59.19.xxx.187)

    재밌어요
    2차 술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파국으로 치달았는지 얘기해 주세요 ㅎ

  • 2. 아니아니
    '25.1.17 1:30 AM (211.234.xxx.168)

    2차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 3. ㄴㄴ
    '25.1.17 1:37 AM (122.203.xxx.243)

    2차에서 술 진탕 미시고 원나잇 했다는거죠?
    남녀가 같이 술마시면 뭔일이 꼭 생기죠

  • 4. 그린티
    '25.1.17 1:40 AM (112.171.xxx.25)

    글을 참 잘 쓰셔서
    한편의 영화를 본것 같네요
    표현은 파국이라고 하셨지만
    어쩌면 평생 잊을수 없는 추억이실듯
    살다가 다시 만난다면 재회장면은
    아델의 When we were young 노래의 가사처럼
    될것 같아요
    노랫알과는 반대로 해피엔딩이 되시길 바래요

    저는 태연이 부른 버전이 더 좋더라구요

    https://youtu.be/J3d5OkPxER4?si=TwohJ4NfEFyNBC5B

  • 5.
    '25.1.17 1:45 AM (223.38.xxx.146)

    원글님, 그런 남자가 왜 보고 싶어진 겁니까. 으윽.
    그냥 찍어 보자면, 원글님 문과 아니죠? ㅎㅎ
    왜 이렇게 질문하느냐면… 극 문과를 나온 저는 저런 놈들을 아주 한 트럭 알고 있거든요. 얼굴은 순하게 생겼거나 순진하게 생겼거나
    샌님 같거나 착한 교회 오빠 같거나 하여간 경계심 별로 안 들게 생겨 가지고

    처음엔 말이 잘 통하는 줄 알았는데
    말을 하면 할수록 자가당착에 빠져 가지고는
    문과 특성상 나불나불을 잘 해서 그게 말발인 줄 알고 ㅠㅠ ㅋㅋ 궤변만 늘어놓던 녀석들…
    그러다 내 논리에 발리면 벌컥 하거나
    얼굴 빨개져서 끝까지 우기거나 하던 녀석들.
    그나마 아, 내가 좀 잘못 말한 거 같아 라고 인정하는 사람들은 양반이었어요. 극히 드물어서 문제지.

    덜 자란 남자애들의 못난 특성일지도 모르지만(즉 철이 들면 나아지는 걸지도…)
    그 애들보다 똑똑하고, 궤변과 논리를 구분하고, 누군가를 왜 꼭 바득바득 이겨야 하는지 모르겠는 많은 문과녀들에게 남자에 대한 환멸을 안겨 주던 녀석들 ㅋㅋㅋㅋ 하…

    만약 원글님이 문과라면

    반전.

    어쨌든 저는 그래서
    작가 김영하 급 아니면
    어지간하면 그냥 말이 좀 덜 통해도 곰돌이 같은 착한 공대남이 낫다~ 는
    편협한 결론에 이르렀답니다.
    뭐, 사실 중요한 건 문과인지 이과인지가 아니라
    그가 얼마나 선량한 사람인가이지만.


    죄송해요, 추억 얘기하는데 딴소리만 잔뜩 해서 ㅋㅋ

    근데 사실 원글님도 제가 무슨 얘기 하는지 알 것 같지 말입니다~

  • 6.
    '25.1.17 1:48 AM (223.38.xxx.146)

    원나잇 전혀 아닐 거 같은데요.
    제가 보기엔
    누군가 본의 아니게 상대방 약을 올리게 됐거나 열을 받게 했거나 하고
    작은 불씨가 생각보다 커져서
    크게 말다툼을 했거나
    말다툼까진 아니어도 서로 어이없어 하거나… 그러면서 자리가 파했을 거 같아요.

  • 7. ㅇㅇ
    '25.1.17 2:20 AM (223.62.xxx.35)

    저도 으님 의견에 한표요. 공대남 결론까지 구구절절 공감합니다
    좋은 추억이 아니라 개쌉소리남인데 ㅠㅠ
    오랜 세월이 흘러 기억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왜곡되신듯

  • 8. ㅇㅇ
    '25.1.17 2:22 AM (223.62.xxx.190)

    솔직히 저는 작가 김영하도 으님이 말하는 범주에 들어간다고 생각해요
    옛날에 어디 프로에서 순해보이던 남자 지망생한테 엄청 꼽주던 모습 보고 큰 실망을 ㅠㅠ

  • 9.
    '25.1.17 10:03 AM (49.163.xxx.3)

    원글도 댓글도 너무 재밌어요. 이런 분들과 만나 술한잔 하면서 수다떨고 싶네요.

  • 10. 나무
    '25.1.17 10:16 AM (147.6.xxx.22)

    2차 얘기도 안해주시고...ㅠㅠㅠ

    원나잇이라도 하셨나요?

  • 11. 쓸개코
    '25.1.17 11:41 AM (175.194.xxx.121)

    2차에서 싸우셨나본데.. 얘기를 더 해주셔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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