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추억 돋는 글 읽고 제 얘기도 써봐요
저는 74년생 도시스러운 읍내에 살았고
큰집은 깡시골이었어요
우리 할머니를 전쟁중에 만났고
할아버지는 아빠 애기때 돌아가셨고
제 할머니는 우리집에
큰집에는 본부인 할머니가 계셨어요
각 집에 아들이 한명 있었고요
두 할머니가 절대 서로 얼굴은 안 봤지만
큰집 할머니는 우리 식구를 애뜻하게 챙기셨고
명절과 방학때 방문하면 너무 잘해주셨어요
----- 여기까지가 어린이시절 나의생각---------
제가 머리가 조금 큰 후 보니
큰집할머니의 애뜻함은 큰엄마의 노동력 착취에서
오는 것이었고 도시녀에 엄청 미인( 전 아빠 닮;;)이었던 엄마는 대충 하는척만 하다 우리 맡기고 내빼는
아주 약은 동서더라고요.
결국 머리좋고 예쁜 엄마는 아빠와
수준이 안맞아서인지 우리를 버리고 가출해서
안보고 산지 너무 오래되었네요
큰집에는 사촌이 6명이나 있어서 너무 재밌게 놀았어요. 겨울방학때 푸대자루타고 눈썰매타다 옷 버려온걸
큰엄마가 맨손으로 차디찬 개울물에 빨아 주셨고
부엌에 따라 들어가 얼쩡거리면
이리와 앉아보라하고
아궁이 숯불에 은행을 구워주셨는데
그 빛깔이 너무 영롱해서
어떤 보석보다도 예쁘다 하니
그런말을 어찌하냐며 제 표현을 좋아해주셨죠
제가 커 보니 큰엄마한테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보통일을 해낸게 아니구나 존경스러웠어요
결혼식에도 엄마자리에 큰엄마께서 앉으셨어요
이리 시커먼 촌사람이 거기 앉아있으면
창피하지 않겠냐 하셨지만 제가 부탁드렸거든요
사촌들한테도
할머니가 우리한테 더 잘하라고
큰엄마 구박하고 고생시켜서 우리 엄청 미웠겠다
그런말도하고
우리엄마 얄미워서 어떻게 참았냐
그런말도 하고 지내요 ㅎㅎ
사촌언니 자궁암 걸렸을때 (결국 하늘나라갔지만)
시골에서 데려와 우리아빠가 다 알아보고
국립암센터 데리고 다니고 그런것 보면
두 이복형제사이는 참 좋았네요
시골 큰집 딸래미들은
욱할 기억들 많으실듯 ㅠㅠ
작은엄마 흉보라고 판 깔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