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 전문입니다~

좋아요 조회수 : 2,423
작성일 : 2024-12-11 13:02:12

한강 작가님 노벨문학상 수상소감 

너무 좋아서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

 

폐하, 왕실 전하, 신사 숙녀 여러분.

제가 여덟 살이던 날을 기억합니다. 오후 주산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갑자기 하늘이 열리더니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비가 너무 세차게 내리자 20여 명의 아이들이 건물 처마 밑에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길 건너편에도 비슷한 건물이 있었는데,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처마 밑에 또 다른 작은 군중이 보였습니다.

 

쏟아지는 빗줄기, 제 팔과 종아리를 적시는 습기를 보면서 문득 깨달았습니다. 저와 어깨를 맞대고 서 있는 이 모든 사람들, 그리고 건너편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나'로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을요. 저와 마찬가지로 그들 모두 이 비를 보고 있었습니다. 제 얼굴에 촉촉이 젖은 비를 그들도 느끼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1인칭 시점을 경험하는 경이로운 순간이었습니다.

글을 읽고 쓰면서 보낸 시간을 되돌아보니 이 경이로운 순간이 몇 번이고 되살아났습니다. 언어의 실을 따라 또 다른 마음 속 깊이로 들어가 또 다른 내면과의 만남. 가장 중요하고 긴급한 질문을 실에 매달아 다른 자아에게 보내는 것. 그 실을 믿고 다른 자아에게 보내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저는 알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태어난 이유. 고통과 사랑이 존재하는 이유. 이러한 질문은 수천 년 동안 문학이 던져온 질문이며,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잠시 머무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무슨 일이 있어도 인간으로 남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

 

가장 어두운 밤, 우리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묻는 언어, 이 지구에 사는 사람들과 생명체의 일인칭 시점으로 상상하는 언어, 우리를 서로 연결해주는 언어가 있습니다. 이러한 언어를 다루는 문학은 필연적으로 일종의 체온을 지니고 있습니다. 필연적으로 문학을 읽고 쓰는 작업은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되는 위치에 서 있습니다. 문학을 위한 이 상이 주는 의미를 이 자리에 함께 서 있는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IP : 39.7.xxx.73
1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24.12.11 1:08 PM (220.94.xxx.134)

    나라의 경사에 나라꼴이 이러니ㅠ

  • 2. 대단히
    '24.12.11 1:08 PM (222.119.xxx.18)

    감사합니다.
    여러일들로 자리에 앉아 그녀의 소강소감을 읽을새가 없었는데,
    늦은 점심을 먹으며 식당 구석에서 읽을수있었습니다.

    그녀의 무심한듯 깊은 이야기들은 늘 눈물이 나도록 합니다.

  • 3. ㅠㅠ
    '24.12.11 1:18 PM (125.240.xxx.204)

    무슨 일이 있어도 인간으로 남는 일...
    여기서 울컥합니다.

  • 4. ..
    '24.12.11 1:23 PM (211.246.xxx.29)

    영어로 하시는데 자막이 없어서 너무 궁금했었어요.
    고맙습니다

  • 5. ㅇㅇ
    '24.12.11 1:25 PM (59.29.xxx.78)

    무슨 일이 있어도 인간으로 남는 일..
    울컥합니다 22222

  • 6. 진심
    '24.12.11 1:25 PM (123.111.xxx.222)

    왜 노벨문학상을 탔는지
    알게 해주는 소감이군요.
    다시 한번 수상을 축하합니다.
    바로 이 시기에 받아서 더 좋습니다.

  • 7. dfdf
    '24.12.11 1:32 PM (211.184.xxx.199)

    존경합니다. 한강 작가님

  • 8. 오래
    '24.12.11 1:37 PM (210.181.xxx.111)

    생활에 휩쓸려 살다가,

    조용히 그러나 치열하게 인생이 무엇인가에 대해 간직해 오신 그 물음을 마주하는 게 너무 고맙습니다.

  • 9. 문학의 힘을 빌어
    '24.12.11 1:51 PM (124.53.xxx.169)

    한여인이 던지는 메시지는
    종교 경전만큼 숙연한 마음이 들게한다.

  • 10. human
    '24.12.11 1:55 PM (222.110.xxx.175)

    정말 영어 못해서 자막 보고 있었는데

    우리가 human으로 살아내야한다는 것
    언어와 문학이 주는 힘
    울컥하며 3번 연속 들었습니다.
    인간으로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야하겠습니다.

  • 11. 전율
    '24.12.11 1:57 PM (125.128.xxx.172)

    라이브로 듣고 이렇게 또 글로 읽으니 소름인듯 전율인듯
    거센 몸의 흔들림이 느껴집니다
    너무도 진지하게 경청하던 성장(盛粧)한 관객들과
    공감대가 형성되는 진기한 경험이었어요

  • 12. 넘조으네요
    '24.12.11 2:24 PM (118.221.xxx.50)

    역시 노벨상수상자다운 소감
    공유 감사합니다

  • 13. ..
    '24.12.11 2:28 PM (95.57.xxx.25)

    내란 사태만 아니었어도 한강노벨상 축하 소식으로
    기뻤을텐데...
    문학가는 역시 다르네요.
    그.어린 나이에 저런 생각을 하다니..
    무슨 일이 있어도 인간으로 남는 일..
    울컥합니다 3333
    다시 한 번 수상을 축하합니다.

  • 14. 사람답게
    '24.12.11 2:34 PM (110.70.xxx.225)

    먹먹하네요ㅠㅠ

  • 15. 청중들도
    '24.12.11 3:00 PM (211.114.xxx.199)

    몰입해서 듣더군요. 실방으로 보는데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메시지는 언어를 초월하는 것 같아요.

  • 16.
    '24.12.11 4:11 PM (118.32.xxx.104)

    수많은 1인칭 시점을 경험하는 경이로운 순간
    --------
    존경하고 축하드립니다!

  • 17. 체리망고
    '24.12.11 8:29 PM (39.125.xxx.74)

    감사해요 먹먹합니다

  • 18. ㅇㅇ
    '24.12.12 7:14 PM (218.147.xxx.59)

    너무 좋아요 ㅠㅠ 올려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728320 다음주는 윤 체포 될까요? 4 2025/06/19 1,140
1728319 윤석열 첫 추경 - 59조 4천억 13 슈킹 슈킹 2025/06/19 2,230
1728318 김민석 칭화대 관련 출입국 기록 ㄷㄷㄷ 엄청 나네요 29 ㅇㅇ 2025/06/19 5,808
1728317 긴 수영복 입어도 되나요 5 그냥 2025/06/19 1,150
1728316 이거 신용카드 도용인가요? ㅜㅜㅜ 10 뭘ㄲ요 2025/06/19 2,167
1728315 국민 기만하는 민주당 18 비판 2025/06/19 2,481
1728314 저것들 반성 없어 내란은 사형.. 2025/06/19 291
1728313 잠실 주공5단지 8 드디어 2025/06/19 2,994
1728312 쇼핑하니까 신나네요 4 123 2025/06/19 2,457
1728311 "김건희 마약 투약" 허위 신고에 치킨 배달 4 111 2025/06/19 2,666
1728310 진짜 이거 시키길 잘했다 하는거 있으세요?? 27 진짜 2025/06/19 4,765
1728309 냉면, 삼계탕 값 또 올랐네요 5 ㅁㅇㅁㅇ 2025/06/19 1,368
1728308 사람말을 섬세하게하는 천재새가 있네요~ 4 와우 2025/06/19 1,360
1728307 82쿡에서는 연봉 1억 흔하고 넘쳐 남다는데 14 2025/06/19 3,401
1728306 조국혁신당, 이해민의원실 -  기술로 세상을 바꿀 학생들의 미래.. ../.. 2025/06/19 384
1728305 땅콩버터 만들어드세요 (초간단) 9 .. 2025/06/19 3,263
1728304 곰탕 (냉동) 추천해주세요. 3 오예쓰 2025/06/19 580
1728303 20년만에 선풍기 사야 하는데.. 20 .. 2025/06/19 2,565
1728302 유튜브에 서울대병원 명예교수 믿을 수 있나요? 4 진짜 2025/06/19 1,257
1728301 박영규 6 예능 2025/06/19 3,455
1728300 경찰 .3차 소환불응 윤전대통령 특검과 체포영장 협의중. 28 ... 2025/06/19 4,872
1728299 명신이 평택항은 또 뭔가요 9 ㄱㄴ 2025/06/19 3,147
1728298 어떤 게 더 운동량이 클까요? 3 ㅡㅡ 2025/06/19 977
1728297 홧병 나서 부모님한테 쏟아붓고 연락 차단했어요 12 홧병 2025/06/19 4,504
1728296 분갈이 한 화분과 흙은 어디에 어떻게 버려야 하나요 10 ... 2025/06/19 1,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