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저예요 ㅎㅎ
그렇다고 한국인도 아닌데 무슨 오지랖이냐고 섭한 말씀은 말아주셔요
서류상 그렇다는거지 마음은 뼛속깊이 한국인이라 오지랖을 자제할 수가 없었어요
어제 82분들 조언대로 옷 겹겹이 껴입고 방석에 모자에 장갑, 간식 챙겨서 혼자 꿋꿋이 다녀왔어요
5호선 지하철에 사람들에 끼여서 갈비뼈가 눌려 괴로웠지만 뒤에 엄마가 안아올려준 아가랑 얼굴이 닿을락말락 하길래 천사같은 아기 얼굴보며 버텼습니다
게다가 한쪽 옆에는 외국인 아가씨 두명이 콩나물시루가 된 전철 안으로 역이 하나씩 지날수록 더 밀고 들어오는 상황에 어리둥절 하며 무슨일이냐고 자기들끼리 주고받길래 또다시 오지랖으로 상황 설명을 해줬죠
평소 있는 일은 아니고 여의도에서 자기 맘대로 계엄령 내린 대통령 탄핵하러 국회의사당이 있는 여의도로 사람들이 모이는 중이다, 아가씨들 오늘 지하철 뽑기 잘못 했어요 ㅎㅎ~ 라고 말해주며 수다 좀 떨었어요
오 그러냐고.. 자기들은 홍콩에서 왔는데 좋은 결과 보길 바란다고.. 내릴 때 제가 사람 내린다고 소리쳐 주니 고맙다고 하며 뚫고 내렸어요
제가 처음 시위에 참여한게 87년 대학생 때였어요
성적장학금 타는 재미에 들려있던 제가 도서관에서 나와 학기 내내 시험이고 뭐고 팽개치고 친구들과 교수님들과 함께 했던 시간이었죠
그때 다들 불안해할 때 교수님이 오셔서 우리는 한 배를 탔다며 토닥거려 주실 때 힘이 나더군요
그리고 싸웠고 옆 학교 학우는 최루탄 맞아서 죽고.. 다들 몰려나가 한 목소리고 독재타도를 외쳤어요
이후 미국가서 잘 살다 2008년 광우뻥 시위라고 아직도 비하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서 여학생 머리를 여러명의 군인들이 군화발로 짓이기던 모습을 방송으로 생생히 봤고, 의료지원단으로 와 있던 의사의 가슴을 쇠방패로 찍어서 넘기는 모습도 봤고, 지나가던 할아버지를 전경들이 둘러싸 몽둥이로 때려 머리로 얼굴로 피가 흐르는 것도 봤죠
저에겐 또다른 광주를 보는듯 했어요
서울 한복판에서 그런 유혈사태가 있었는데 지금까지도 모르는 사람은 전혀 모르는..
그런데 주변인이고 뭐고 다들 그 피해자들을 간첩이라 몰아가고 제가 다니는 교회 교인들은 저보고 물들지 말라고, 저거 알려야 되지 않냐고 하는데 ㅇㅇ씨 그정도로 애국심이 넘치는줄 몰랐다고 비꼬고 ㅠㅠ
그날 이후 밥도 못먹고 잠도 못자고 이른바 좀비가 되어 내가 알던 세상이 뒤집어지고 그로 인해 머리가 어지러워 생활이 안되고 할 수 있는거 그건 잘못된 거라고 나가서 주말에 나가 외치고 시민기자로 미국신문에 글 올리고 했어요
그로 인해 많이 찾아보고 듣고 하며 내가 몰랐던 무수한 진실을 알게 되고 생각없이 믿었던 거짓들에 대해 알게 되었기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세월호 때도 생명을 그렇게 쉽게 버려버린 대통령과 국짐당 정치인들에게 혐오를 넘어 살의까지도 느끼며 미국 땅에서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시위하고 그랬는데.. 한국에 나왔을 때도 대통령 선거 때라 또 집회에 나가고.. 이젠 그런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살다살다 50년을 되돌리는 이런 일이 다 잠든 한밤중에 생길 줄이야...
아프신 부모님 돌보느라 한국에 나와있는데 맘이 불편해서 국적은 다르지만 제 머리통 하나라도 집회 인원에 더해보고자 나갔고 또한번 가슴이 내려앉고, 분노가 이는 밤이었지만 한편으론 사람들에게서 희망과 힘을 얻어왔네요
생각보다 젊은 사람들이 넘넘 많아서 놀랐어요
계엄과 시위를 몸으로 겪은 중장년층이 많을 줄 알았는데 다들 젊고 어려서 깜놀 ㅎㅎ
거기다 알록달록 야광봉에 귀여운 플래카드 하나씩 가슴에 안고 모여든 중고생들, 조잘거리고 웃어가며 자기 대학 깃발들고 있는 대학생들이 어찌나 이쁘고 고맙던지
겨우 걷거나 부모에게 안겨온 아가들, 신혼부부와 함께 온 부모님, 옆집 할머니 할아버지 같은 어르신들,...
그 속에 있기만 해도 힘이 되고 '혼자인 작은 나'가 아닌 '거대한 우리'를 봤어요
역시 사람이 힘이예요
얼굴은 몰라도 같은 생각, 같은 마음인 사람들이 모여서 한번씩 찡긋 웃고 목터져라 함성 지르며 '우리'라는 것을 확인하는 일은 참 가슴뛰고 속이 차오르는 경험입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 손절하는게 유행인 세상이지만 좋은 사람들이 주는 힘은 그 무엇보다 크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이번 일이 국민도, 국민 개개인도, 나라도 성장하는 매우 드문, 큰 기회라고 생각해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편하고 좋았겠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커가는 암덩어리에 몸 썩어가는 줄도 모를 뻔 했으니까요
사람은 큰 일이 닥치면 별별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삶과 죽음에 대해, 인간은 무엇이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세상엔 나 혼자가 아니구나,.. 등등 철학자나 할 만한 생각과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고민은 내 자산이 됩니다
내가 나를 바라보기 쉽지 않고 드물게 일어나는데 내가 누구고 어디로 가는지 두려움에 떨며 생각해본 사람의 삶은 이전과 달라져요
앞으로도 쉽지는 않을거예요
하지만 대세는 정해졌고 어느 길이 나아갈 길인가 본 사람들은 그 길로 나아갈 수 밖에 없어요
내 시간, 돈, 에너지가 축나는 일만 남은 것 같지만 나와 우리를 다지고 단련시켜 사람다운 사람들이 되는 길임엔 분명합니다
귀한 것일수록 거저 얻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것도 앞서간 분들의 목숨값으로 얻어낸 것들을 공짜로 누리는거죠
오늘 우리가 힘들게 싸워서 얻어낸다면 우리 선배들에게 진 빚을 갚으면서 후배들에게 넘겨줄 것이 있는 사람들이 되는거죠
힘내고 길고 질기고 뜨겁게 가봐요!
이상 상식엔 국경도 인종도 나이, 성별도 없다고 생각하는 아줌마의 생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