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가 판을 치기전 저의 백부 두분은 다른 선택을 합니다.
한분은 공부를 선택 하셨고
한분은 취직을 선택 하셨습니다.
취직을 선택하신분이 형님이고 ...
이후 두분의 삶은 완전히 달라 집니다
60년전후로 이뤄진 형태입니다
한분은 육사가셔서 거의 1등을 하다시피 하셨습니다만
말년에 출세는 못하셨습니다. 이유는 군부에 비협조적이었다는것이죠 ..
한분은 북파공작원으로 돌아 가셨습니다. 것도 앞서 이야기 한 육사 친족이 있어서 조금 빨리 알았을 뿐이었습니다. 당시 본인은 어려서 잘 몰랐지만
대충은 알고 있었습니다.
육사 이분은 하나회에 제외되어 (지역) 절대 출세를 할수 없었습니다. 재원이긴 하나 별을 달기에는 부족했던게 딱하나 지역입니다.
나중에 뒤늦게 하나회라도 잡고 뭐 하려다 김영삼정권에 역풍물 맞죠 ...
이분보다 집안에서 사라졌던 ... 북파 공작원....으로아니 그저 행방불명으로 사라 졌을 작은 아버님의 생사에 더 힘들어 했습니다.
그나마 군에 고위? 간부급에 인척이 아니 형님이 그렇게 사라지는것을 밝혀 내신 동생이 출세 하지 못하였으면 못 밝혔을겁니다.
우리집안은 늘 역적이었나 봅니다.
지역에서 출신에서 ...
다들 어떤 형태이든 집안을 일으키고자 열심으로 노력 하셨지만 양심이라는 그늘에서 떳떳하고자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렇게 누구나 좋은 사람이지만 누구나 출세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큰누님이 광주분하고 결혼을 하십니다.
매형이죠...
이양반 한쪽귀막 먹었습니다. 지금은 양쪽이 거의 소실 되었는데
최근은 아니지만 5.18에 군경에 맞아서 그랬답니다.
그래도 누님 사랑하고 충실합니다 . 나이차가 나서 문답을 안하지만
80년 초반이야기 는 가능하면 안합니다. 그래도 그 사람의 상처는 온전히 느껴집니다.
나름 특수부대처럼 나온 저같은 사람은 대체적으로 국가관이 뚜렷합니다.
어쩔수 없습니다. 늘 받는 교육이해가 그렇게 합니다.
그러함에도 저는 이겨 나와 습니다.
구한말 토지가 아니라
이후 토지가 쓰여 진다면 저의 집안이 될겁니다.
잘난다면 공부로 내세워서 잘난 사람도 있겠으나 그것으로 뜻을 못이뤄 힘들어진 사람이 있지만 반대로 출세를 하는 이들도 같은 공간에 것도 다른뜻에 사람이 있습니다.
표현하지 않았지만 집안에 많습니다.
그래도 정의에 편은 못들었어도 늘 비판하고 정의의 편에 들려고 했던
술주정뱅이의 아버지의 모습을 알기에
그의 고뇌를 이해합니다.
표현적으로 직시해서 이렇지만
감정적으로 이해할 부분은 너무 너무 많습니다.
아버님 세대를 포함하여 집안의 풍파로 보면 계엄이라는 사건에 모두 얽혀 있습니다.
노태우 부터 돌들었던 저까지 포함하면 그렇습니다.
제가 격은 것 만해도 돌과 최루탄 지랄탄 봉고버스에서 나오는 다연장 최루탄 ..
이명박의 물대포 방패 구타까지 ..
이명박이 청와대에서 무슨 콧노래 듣듯.. 아침이슬을 들었다고? 내가 그날 새벽에 얼마나 처절하게 불렀는데..
계엄이 장난이냐?
그런데 계엄이라구요???? 술취해서 횡설수설 하지만
진심 군정이 민간에 들어오는 보면 죽여 버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