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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여의도 갔다온 후기

... 조회수 : 3,951
작성일 : 2024-12-07 22:17:11

제가 작년부터 자발적 안식년입니다

말이 근사해보이지만 백수란 얘기죠

 

먹고 사느라 주말에도 일하는 직업이었던지라 집회같은덴 그냥 미안한 마음과 후원금으로 땜빵하고 살았는데 백수인 지금은 이젠 머릿수 채워야지 싶어서 나갔습니다

 

나 하나 가봐야 별 차이 있겠나 싶지만 내 평생 이 역사적인 순간을 기억하고 싶은 욕심에...

영하 15도용 착장 야무지게 챙겨입고 보온병에 더운물 담아서 좀 일찌감치 나갔습니다

본격적으로 집회 시작하기 전에 사람구경 좀 하려구요

 

동작역에서 9호선 갈아타기 전에 화장실부터 들렀습니다만, 여기서부터 아차 싶었습니다

지하철 화장실에 줄이 나래비...

아니나 다를까 9호선이 미어터지더군요

오랜만에 러시아워 출근길 지하철 체험

2시 좀 못되서 국회의사당 역에 내리니 뭐 길을 몰라도 그냥 따라 쓸려 가다보니 국회의사당 정문 바로 앞으로 나왔습니다

서울에서 50년 넘게 살았는데 국회의사당 처음 가봤다는 ^^V

 

그때도 이미 사람 많긴 했지만 그 시간에 자리 잡았으면 최고 명당에 앉을 수 있었지만, 제 1차 목적 사람구경

국회 정문 앞까지 짧은 거리지만 인파 때문에 걷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 많은 탄핵 인파 사이에 탄핵 저지를 외치는 한줌단이 있어서 그들에게 피켓 흔들며 약올리고 지나가는 재미도 좀 보고 국회 담벼락 한바퀴 돌고 다시 길건너 국회대로를 쭉 내려왔어요

그 사이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늘어서 빠져나오기 쉽지 않았어요

엄청 웃기는게 인터넷이 안터져서 정작 몸은 현장에 있는데 도무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알 수가 없는 답답함에 저는 혹시나 국회에서 멀어지면 인터넷이 좀 터질까 싶어서 계속 쭉 내려왔습니다

정말 그 인파 헤치고 걷는게 너무너무 힘들었다는...

그 사이에도 사람이 훅훅 느는게 실시간으로 눈에 보여서 이젠 앉을 자리도 전혀 없어서 점점 더 멀리 갈 수 밖에 없었어요

 

전 응원봉 연대를 찾으러 갔는데 결국 못 찾았습니다

응원봉 연대의 본진은 못 찾았지만 정말 다양한 수없이 많은 종류의 이쁜 응원봉 많이 봤습니다

에이티즈, 스트레이키즈 응원봉이라 알려준 친구들 고마왔구요, 엔씨티 응원봉이 독보적으로 많고 눈에 확 뜨입디다

저 수많은 응원봉들이 콘서트나 팬미팅이 아니라 이 추운 길바닥에 나온 이 현실이 너무나 슬프고 참담했지만, 본인의 덕질과 팬심을 추구할 자유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온 저 많은 친구들이 너무 기특하고 귀여웠습니다

귀여움이 세상을 구한다더니, 당신들이 나라를 구할 것이오

 

여의도 공원 끝즈음까지 내려오니 브라질리언 퍼커션 팀이 신나게 공연하고 있더군요

실력좋은 그들과 함께 신나게 한참을 즐기다보니 인파가 무시무시하게 늘더군요

5시가 점차 가까와지고 있었거든요

차량 통제하는 범위가 순식간에 늘고 그 자리에 순식간에 사람들로 메워지고 탄핵하라 체포하라 구호들이 채워지기 시작했어요

 

아, 김건희 특검 부결되니 어이가 없더군요

삼삼오오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이 모두들 막말을 쏟아냈습니다

유일하게 인터넷 잡혀서 실시간 속보 보고 있던 낯선 이 옆에서 얻어보고 있다가 둘이 같이 쌍욕을 내뱉기 시작했어요

어영부영 한명이 더 끼어서 셋이 항 30분쯤 울분을 토했습니다

결국 탄핵 가결의 희망이 멀어지고 투표는 언제 시작할지도 모르겠어서 저희는 귀가하기로 했어요

코 앞의 여의도역은 사람이 겹겹이 차서 도저히 내려갈 수도 없어서 여의나루역까지 걸어갔는데 승강장이 만원이라 지하철공사 직원이 경찰에게 인원통제를 요청하더군요

그래서 할 수없이 마포대교를 걸어서 건너기로 했습니다

차로는 수도없이 건너다닌 한강이건만 걸어서 넘어보는 건 처음이네요

안터지는 인터넷 때문에 길에서 만난 생면부지의 동무랑 마포대교를 걸어 넘어오면서 오늘 자고 나면 내일 아침에 새 세상이 올까 안올까 한숨과 한탄과 욕과 울분을 터트리며 걷다보니 강바람부는 마포대교가 그리 춥지는 않았지만 입맛은 참 씁쓸했습니다

하루종일 쫄쫄 굶었는데도 입맛이 싹 사라져 배고픈 줄도 모르겠더이다

 

이제 우리가 기대해볼 건 자연사 뿐일까?

매일 정안수 떠놓고 치성드리며 살을 날려야 하나?

머릿속이 아무것도 정리가 안되더라구요

 

집에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보는 스포츠경기마다 지는 징크스를 가졌습니다

그래서 국가대표 경기, 안 봅니다

근데 설마 스포츠 경기만 그런 줄 알았지, 이것도 그럴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설마 내가 오늘 집회에 나와서 재수 옴붙었나? 

아아... 미치겠네 ㅠㅠ

 

죄송합니다

오늘의 이 참담한 결과가 모두 제탓인 것 같아서 ㅠㅠ

다음 집회부터는 안 나가고 집에서 치성만 드리겠습니다  아우 씨...

IP : 106.101.xxx.68
2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ㄷㄹ
    '24.12.7 10:18 PM (182.224.xxx.83)

    수고하셨습니다

  • 2. 에잇
    '24.12.7 10:19 PM (211.241.xxx.39)

    이젠 집회 나가지 마세욧!! ㅋㅋㅋㅋ

  • 3. ...
    '24.12.7 10:19 PM (59.10.xxx.58)

    원글님 탓일리가요.
    집회에 나가신거 감사드려요.
    다들 같은 마음일거예요

  • 4. 가치
    '24.12.7 10:22 PM (211.234.xxx.190)

    원글님 탓 아닌거 아시죠? 감사합니다

  • 5. 아니요
    '24.12.7 10:22 PM (218.39.xxx.130)

    징크스 깨도록 계속 나와 주세요..

    국민 이기는 권력자 없습니다. 우리 다시 이길겁니다...화이팅..고마워요.

  • 6. 감사
    '24.12.7 10:22 PM (175.123.xxx.37)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7. ㅎㅎㅎ
    '24.12.7 10:23 PM (210.126.xxx.33)

    지하철 깨달음부터 제 얘긴줄요.
    에휴...

  • 8. 구름
    '24.12.7 10:23 PM (14.38.xxx.229)

    아니예요.
    죽지않고 사법정의로 법정에 세우고
    수의도 입히고
    단체급식도 먹이고
    추위와 더위도 체험해보고
    무위와 고독도 경험해봐야합니다.

    저도 오늘 그 자리에서 같이 있었는데
    참담했습니다.
    그렇지만 희망을 놓지는 않을겁니다.

  • 9. 감사
    '24.12.7 10:25 PM (211.54.xxx.169)

    추운데 고생하셨어요. 감사합니다.

  • 10. ,
    '24.12.7 10:26 PM (124.54.xxx.115) - 삭제된댓글

    무슨소리세요..
    참석할 상황이된다면 무조건 가셔야죠.
    우린 깨어있는 깨시민
    저희도 참깨 3알 보탰어요.
    물한방울들이모여 폭포가되듯
    폭포가되어 저들을 쓸어버려야죠.

    오늘가서 진짜 놀란건
    이십대로보이는 젊은애들이 정말 많이 왔다는거요.
    너무 이쁘고 대견하고..

    추운날 고생 많으셨습니다.

    달걀로 바위깨는 심정으로 임하려구요.

  • 11.
    '24.12.7 10:29 PM (203.166.xxx.98)

    아… 문득 생각해 보니 저도 오늘 못 참고 집회에 참여하는 바람에 부결의 기운에 시너지가 생긴게 아닌지 반성이 되네요.
    박근혜 탄핵 표결 때는 TV도 끄고 피클을 만들면서 버텼거든요.
    저도 다음 표결할 땐 TV를 끄고 다시 탄핵피클이나 만들어야겠습니다.

  • 12. ㅇㅇ
    '24.12.7 10:32 PM (61.39.xxx.168)

    원글님 너무 글을 귀엽게 쓰시네요
    50살 맞아요?
    감성은 25살같아요 ㅎㅎㅎ
    원글님 땜에 부결된거 아니에요 저 조카크래파스18색국민의적 새끼들 107명 (김예지의원 제외해드림. 안철수는 재외국민투표후 후보단일화한것 때문에 평생 용서못함) 이 죽일 놈년들임

  • 13. ㅎㅎㅎ
    '24.12.7 10:33 PM (211.234.xxx.13)

    어쩌면 마포대교 같이 건넜을지도 모르겠네요~ 오늘 도강파 꽤 있었죠 ㅎㅎㅎㅎ

  • 14. ...
    '24.12.7 10:35 PM (125.129.xxx.20)

    생생한 이야기 잘 봤습니다.
    다음에도 가셔야죠. ㅎㅎ

  • 15. ㆍㆍ
    '24.12.7 10:42 PM (118.33.xxx.207)

    너무너무 수고하셨고 감사해요.
    원글님 탓 아닌거 아시죠?

  • 16. ㅇㅇ
    '24.12.7 10:45 PM (125.129.xxx.109)

    고마워요 글남겨줘서 다음번에도 같이 참석해요

  • 17. 고생하셨습니다
    '24.12.7 10:48 PM (106.102.xxx.46)

    정말 감사드려요.

  • 18. 고생하셨습니다
    '24.12.7 10:59 PM (203.128.xxx.165)

    원글님 탓 아니예요.

    그네때도 한번에 안되었어요.
    몇달을 매주 주말 반납해가며 추위에 떨어가며 시위해서 간신히 끌어내렸는데요.

    우리 쉽게 지치거나 자기탓 하지 말고 즐겁게 만나요.
    꼭 끌어내릴 수 있어요^^

  • 19. BF
    '24.12.7 11:14 PM (58.122.xxx.43)

    고생 많으셨어요 전 근무라 후원만 하고 계속 맘졸이며 82만 확인했어요 ㅠㅠㅠ

  • 20. ...
    '24.12.7 11:14 PM (211.234.xxx.2)

    브라질리언 퍼커션 그리고 82쿡 뜨면 백맙인파 모였다는 증거죠 :) 브라질리언 퍼커션 못봤는데 왔다니 반갑네요.

  • 21. 아니에요
    '24.12.8 12:06 AM (222.236.xxx.112)

    다음에도 시간되시면 꼭 오세요.
    저는 지하철로 신논현까지 갔는데 사람이 어마어마해서 버스로 가려고 나가보니 거기도 어마어마.
    남편이 도저히 불가능이라고 더빨리 나왔어야했다고 집에 가자해서 어쩔수없이 돌아왔어요.
    집에서 유튭실시간 지금까지 보고 있는데, 응원봉 아이들 아직 까지도 목청터지게 외치고 있네요. 너무고맙고 미안하네요.담주는 무슨일이 있어도 저도 갈거에요.

  • 22. ^^
    '24.12.8 7:51 AM (112.145.xxx.185)

    징크스 깰 기회!!!입니닷
    추운날씨에 감사합니다 ㅠㅠ

  • 23. 나옹
    '24.12.8 10:04 AM (124.111.xxx.163)

    원글님 탓 아니죠.
    이렇게 생생하게 중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한 자리에 붙박이로 있었어서 이런 광경을 못 본 게 아쉽네요. 다음에는 좀 여기저기 돌아다녀볼까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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