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Banner

천관율 기자의 글 - 공화국을 죽음으로 모는 길로 갈 것인가

공화국 시민 조회수 : 1,490
작성일 : 2024-12-05 15:27:16
천관율
 
다가오는 위기에 대해
 
1.
정치에는 시간 차원이 두 개 있다. 일상의 시간, 그리고 헌정의 시간. 지금은 헌정의 시간이다.
일상의 시간에서 일어나는 정치란, 누가 예산을 얼마 깎았고, 무슨무슨 법을 만들고 거부권을 쓰고, 다음 대선을 누가 이길 것 같고, 이런 것들이다. 일상의 정치를 정의하는 한 방법은, '공화국이 안전할 때 그 안에서 작동하는 정치'라고 볼 수 있다. 이 관점에서는 가장 큰 이벤트인 대선도 일상의 정치다. 헌정체제 안에서 작동하니까.
우리가 12월 3일 이후로 진입한 정치는 이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계엄이 헌법에 정해진 절차라는 이유로, 계엄도 일상의 시간에 속하는 것처럼 취급하려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1) 지금이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라는 걸 입증해야 하고, 동시에 2) 그런 상황에서조차 헌법이 허용하지 않는 국회 군 투입을 헌법 안에서 설명해야 한다. 상식을 가진 공화국 시민이라면 둘 다 불가능하다.
공화국의 작동원리 그 자체가 위협받을 때, 정치는 헌정의 시간으로 차원 이동을 한다. 이 시간 차원에서 정치의 전선이란 딱 하나다. 공화국을 방어하는 자 vs 공화국의 적. 나머지는 전부 허튼소리다.
일상의 시간일 때, 정치에서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이들을 나는 비판한다. 일상의 정치는 대화와 타협으로 이루어져 있고, 선명한 선악구도와 양자택일의 언어는 정치 그 자체를 해친다.
헌정의 시간일 때, 정치에서 양자택일을 회피하는 이들을 나는 경멸한다. 여기는 '공화국을 방어하는 자'가 되거나 그 적이 되거나, 둘 중 하나밖에 없다.
 
2.
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여당 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야당의 폭거 때문에 계엄을 선택했다"는 취지로 말했다. 감액예산, 탄핵남발 등등 그가 말하는 '폭거'를 전부 인정한다 쳐도, 그것은 일상의 시간에 속하는 정치다. 그리고 대통령이 계엄을 선언한 순간, 이것으로 정치는 헌정의 시간으로 넘어간다. 여기는 연속선이 아니라 단절이 있다.
윤석열은 이 둘을 뒤섞었다. 일상의 시간에서 일어난 일로 헌정의 시간을 연 잘못을 설명하려 든다.
이게 얼마나 터무니없는지는 다음 상황을 가정해 보면 된다. 12월 3일 쿠데타가 성공해 계엄군이 권한을 장악했다면, 윤석열은 "야당의 폭거에 충분한 경고를 보냈으니 계엄을 해제하겠다. 이제 다시 제대로 잘 해 보자"라고 했을까? 그럴 리 없다. 그 자신도 일상의 시간과 헌정의 시간이 어떻게 다른지 분명히 알고, 성공했다면 초법적 권력을 마음껏 썼을 것이다. 실패했으니 모르는 척 하는 것 뿐이다.
국민의힘도 이 둘을 뒤섞는다. 그들은 계엄이라는 사건이 마치 일상의 시간에 속한 '좀 과한 정치행위'라도 되는 것처럼, 적절한 유감표명으로 마무리를 하려 든다.
공화국 방어 국면을 일상적 정쟁 국면으로 바꿔치기하기. 이것이 지금 대통령과 여당이 가겠다고 선언한 길이다.
 
3.
헌정의 시간을 마치 일상의 시간인 것처럼 정치가들이 뒤섞을 때, 무엇과도 비교하기 힘든 위기가 온다.
우리는 한 예측불가한 인격에 의해 헌법이 언제든 정지되고 군대가 국가를 통치하는 세상이 올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 이것이 12월 3일 위기다. 대체로 훈련된 정치가들이 운영할 때 위험하지 않은 비상장치(계엄)라 해도, 그 버튼을 울컥하는 철부지가 쥘 때는 어처구니 없는 위기가 올 수 있다는 것.
우리가 12월 3일에 확인한 것처럼, 대통령은 공화국의 적이다. 대통령은 공화국을 지킬 헌법적 의무를 지므로, 이 문장은 자체로 모순이다. 따라서 해소해야 한다. 모순을 해소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대통령'을 사실이 아니도록 만들거나, '공화국'을 사실이 아니도록 만들거나.
전자에 복무하는 이들은 공화국을 방어하는 자다. 그렇지 않은 이들은 곧 후자의 해법, '공화국'을 사실이 아니도록 만들기에 복무하는 것이다. 그러니 공화국의 적이다. 이 전선 외에 다른 모든 자질구레한 정치가 의미를 잃는 곳, 그것이 헌정의 시간이다.
다가오는 새로운 위기란 이 간명하고 선명한 전선을 미묘하고 애매모호하게 바꿔치기하는 위기다. 헌정의 시간을 마치 일상의 시간인양 바꿔치기하는 위기다. 이 바꿔치기가 된다는 것은, 공화국 방어 전쟁이 무승부와 교착상태가 병가지상사인 일상적 정쟁 국면으로 넘어간다는 뜻이다.
궁극적으로, 그들은 계엄의 의미를 바꿔치기하려 든다. '공화국의 헌정적 위기'에서 '대통령의 좀 거친 카드 중 하나'로 바꿔치기하려 든다. 이것은 무엇이 공화국의 위기인가라는 합의를 파괴해 버리는 시도다. 헌법 그 자체에 대한 공격보다 어떤 의미로 더 위험하다.
심지어 이 시도는 계엄보다 쉽다. 군이 국회를 장악하지 않아도 되고, 내란죄의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으며, 많은 국민을 설득할 필요조차 없다. 자기 당 의원의 이탈표를 8명 아래로만 묶고 버티면 이 시도는 일단 성공한다. 대통령은 탄핵되지 않고, 공화국 방어 전쟁은 일상적 정쟁 국면으로 점차 전환될 것이다. 그 상태로 대통령 임기가 2년도 더 남았다. 다음 계엄을 하기에도 국지전을 일으키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다.
이것은 우발적이고 예측불가한 한 인격이 일으킨 12월 3일 위기를 훨씬 뛰어넘는 위기다. 12월 3일 위기가 공화국 수호의 열정을 광범위하게 불러 일으켰다면, 다가오는 바꿔치기 위기는 공화국 수호의 열정 그 자체를 공격하고 혼란스럽게 만들어 끝내 뭉개진 일상으로 되돌리려는, 집단적이고 체계적인 시도다.
그러므로 이것은 곧바로 이어진 두 번째 쿠데타로 볼 수 있다. 첫 쿠데타가 헌법을 직접 거칠게 공격했다면, 두 번째 쿠데타는 공화국 수호의 열정을 우회해서 미묘하게 공격한다.
이 시도가 성공한다면, 우리는 공화국의 위기를 위기로 인식할 힘을 잃어버릴 것이다. 이야말로 공화국을 죽음으로 모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바꿔치기 위기의 기획자들은, 12월 3일의 돈키호테보다 더 위험한 방식으로 공화국을 위협한다.
IP : 106.244.xxx.134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천관율 통찰
    '24.12.5 3:28 PM (118.235.xxx.30)

    살아 있네요

    국힘 정신 차려라

  • 2. ㅇㅇㅇ
    '24.12.5 3:33 PM (203.251.xxx.120)

    예측불가한 인간이 권력을 잡으면 마지막엔 전쟁이 터진다

  • 3. ...
    '24.12.5 5:18 PM (121.129.xxx.10)

    천관율 기자의 글 감사합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648516 우원식 만난 최상목 “헌법재판관 임명 고심 중” 10 .. 2024/12/30 4,322
1648515 오징어게임은 3일째 모든 국가에서 1등이네요(노스포) 11 스포없음 2024/12/30 3,114
1648514 윤가 도끼로 문부수고 총을쏴서라도 잡으시길 6 ㄱㄴㄷ 2024/12/30 1,378
1648513 그래도 이재명은 안 됩니다? 24 ... 2024/12/30 2,258
1648512 아이들 설거지 언제부터 시키셨나요 25 고딩 2024/12/30 3,342
1648511 윤석열 한덕수 탄핵당하고 이상민 사라지니 위패를 모신 분향소가 .. 12 펌글 2024/12/30 3,225
1648510 장나라가 이웃주민들께 빵 돌렸나봐요 39 ........ 2024/12/30 27,516
1648509 죄송)) 제주 신라/롯데/파르나스 호텔중에 6 ㅡㅡㅡ 2024/12/30 1,970
1648508 역시 유시민 !! 4 .... 2024/12/30 5,277
1648507 제주항공 참사 키운 둔덕, 지난해 콘크리트 보강 작업 4 .... 2024/12/30 2,857
1648506 하이그로시가구에 묻은 염색약 지우는 방법 3 죄송 2024/12/30 1,878
1648505 Mbc 잘한다!! 35 ... 2024/12/30 18,010
1648504 최상목이 예비비 타령한게 5 ... 2024/12/30 4,276
1648503 발부 가능성 21 높음 2024/12/30 4,500
1648502 4주가 지났다 더이상 못 기다린다 3 ㅇㅇ 2024/12/30 1,759
1648501 대구분들 7 고향이대구 2024/12/30 1,808
1648500 이정도면 저축 얼마 할까요? 7 저축 2024/12/30 2,710
1648499 유가족에게 도움이 될만한 모금 믿을만한곳 있을까요? 6 22 2024/12/30 1,460
1648498 옷이나 이부자리 먼지 5 ..... 2024/12/30 2,430
1648497 장원영 언니가 연대 버리고 이대 갔던데 11 ?? 2024/12/30 9,103
1648496 조국, 감옥서 헌법소원심판 청구…최상목에 헌법재판관 임명 촉구 21 ... 2024/12/30 5,177
1648495 총이라도 쏘고 6 탄핵인용 2024/12/30 1,357
1648494 계속 82 게시판만 들여다보고 있어요 18 진진 2024/12/30 2,574
1648493 베이커리 질문 있어요 10 시스템 2024/12/30 2,077
1648492 문득 이 노래가 생각나서요. 1 ... 2024/12/30 9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