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완전 고립된 채
저 특수부대를 맨몸으로 맞닥뜨리고
자구를 위해 총기를 들어 스스로를 지켜야했을
광주사람들의 공포가
병아리 눈물만큼 느껴졌던
24년 12월 서울의 밤.
1980년 완전 고립된 채
저 특수부대를 맨몸으로 맞닥뜨리고
자구를 위해 총기를 들어 스스로를 지켜야했을
광주사람들의 공포가
병아리 눈물만큼 느껴졌던
24년 12월 서울의 밤.
대한민국 국군이
대한민국 국민을 때리고 쏘고 죽인 일이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우리에게
지난 밤, 무장 군인들 앞에 맨몸으로 선다는건
목숨을 바친 각오였다는 걸 알지요
현장에서 버텨주신 시민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 공포가 고스란히 다시 느껴져 지금까지 뜬눈으로 폰만들여다 보고 있습니다.
이게 끝이 아닐것 같은 불안감 때문에요.
덧붙여 빨갱이라고 호도되어
전국민들에게 지탄받고 조롱받고
누명쓰고 몇십년을 살았습니다.
진짜 미안합니다
말도 안되는 상황에서 잠 못들면서
저도 광주의 그 상황이 떠올랐어요.
총끝에 칼달고 시민이 어제처럼 항의하니 그칼로 휘둘렀어요.
그래도 계속 항의하니 총쐈고요
그래서 계엄이 그렇게 무서운거에요
차단하고 죽어나가도 모르게 그렇게 광주가 있었던거네요
온몸의 피가 쫙 빠져나가는 긴장감을 맛봤어요. 민주주의의 큰 빚을 지고 살고있습니다. 광주분들께 ㅠ
'광주'에 빚진 마음으로 살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옛날 일제시대 광주학생운동도 그렇고,
우리는 80년 5월18일의 광주를 잊으면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