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한거나 마찬가지인가요.
10년을 사귀고도 결혼을 안 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수도 있는 거 아닐까요.
10년 만난 연인이 있는데 다른 사람과 아이를 만들었다고 넘겨 짚어서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건 무슨 심보인가요. 유부남이 바람을 핀 것도 아닌데, 10년이나 사귄 사람과 결혼을 안 한건 그럴 만한 사연이 있었을텐데요.
제가 그런 경우거든요. 대학교 1학년 3월말에 씨씨로 만난 동아리 선배랑 딱 10년 사귀었어요. 아무것도 모를 때 만난 첫 남친, 첫사랑. 남친은 외모도 멋지고 유머감각 탁월하고 스카이 의대생이었어요. 부모님도 교육자 집안 제 부모님이랑 상견례도 마치고 처음부터 결혼을 전제로 사귀었어요. 식만 안 올렸다 뿐이지 양가 가족과 다름없이 지냈는데요. 한 5년쯤 지나니 애정이 식더라고요. 싫증이 난거죠. 나머지 5년은 의무감으로 만났어요. 남친이 인턴 레지던트 하면서 너무 바빠지고 저는 대학 졸업하고 유학을 가는 바람에 일년에 몇 번 만날 일도 없었고요. 정말 결혼을 해야 할 순간이 되니까 도저히 못 하겠더라고요.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평생을 약속할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누가 먼저인지 모르게 헤어지자는 말을 했고 남친은 그로부터 1년도 안 되어서 결혼을 했어요. 저는 시원섭섭했지만 누가봐도 의대생 남친 뒷바라지 하다가 헌신짝 되어버린 불쌍한 신세가 되었고요. 친한 친구조차 저보고 닳고 닳은 여자라 소개팅 해줄 수 없다고 했고요. 조건으로 따지면 말도 안 되는 남자를 부모님께 소개시켜 드렸는데 무조건 허락해주시더라고요.
10년을 사귄 여자를 두고 다른 사람이랑 잤다. 결혼식도 올리고 싶지 않은 사람과 진작에 헤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비난받아야 하나요. 그냥 비난하고 싶은 사람이 필요해서 찾아나선 건 우리가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