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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김장을 받아오며

ㅁㅁㅁ 조회수 : 6,030
작성일 : 2024-11-17 12:32:55
김치는 김치 이상의 무엇이다.
김치를 주고 받는 다는 것은
관계의 또 다른 확증이다.
일상을 공유한다는 관계의 업그레이드.
 
십년 넘게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엄마의 김치 맛이 기억나지 않을 때나
간만에 맛본 엄마의 김치 맛이 달고 짜게 변했을 때,
당황한다.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닌 것 같다.
 
내키지 않는 김치를 억지로 떠받아야 할 때
짜증난다.
아빠의 강권에 못이겨,
얼굴도 제대로 못본 아빠의 N번째 배우자가 만든 김치.
얼떨결에 내 품에 안긴 김장김치.
 
아빠네 지하주차장에서 김치와 돈을
맞교환한다.
그렇게 아빠가 '내 딸을 챙겼어' 하는 위안을 사온다.
올라가서 낯선 문지방을 넘기도 싫고
올라오라는 말에 거절하기도 싫은데
올라오라는 말도 없다.
아빠와 나 사이에는 엘리베이터 만큼의 거리가 있다.
 
싱크대에 서서 받아온 알타리 무김치를 손으로 헤집어
한 입 베어 물으니
쌉쌀하니 코끝이 찡하다.
낯선 김치 맛이다.
아빠는 낯선 곳에서 살고 있구나.
제발 '맛이 기가 맥히지?' 하고 묻지좀 말아요.
 
한때는 한 상에서 같은 김치를 먹었는데
이제는 각각 흩어져 서로 다른 김치를 먹고 산다.
엄마의 김치는 달게 변했고,
아빠의 김치는 아예 낯설다.
각자의 다른 맛의 김치를 먹고 산다.
김치를 공유했지만, 단절감이 더 도드라질 뿐이다.
 
냉장고에 모인 다른 출처의 여러 김치들.
괜한 체증 날듯한 속을
이웃 동생이 가져다 준 칼칼한 겉절이로 갈음한다.
김치 가지러 먼 길을 달리며 속으로 여러 번 되뇌인 말,,
김치는 김치일 뿐.
 
 
----------------------------------------
몇년 전 오늘이라며 페북-혼자보는 글-에 떴네요
그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고.
후련할 줄만 알았는데
돌아가시니 
슬프기도, 부끄럽기도 합니다.
 
현재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능력껏 사랑하는 사람이
승리하는 사람같아요.
 
IP : 222.100.xxx.51
3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24.11.17 12:36 PM (104.28.xxx.27)

    글을 참 잘 쓰셨네요
    저도 그 지하주차장에 머물렀다 알타리 무도 맛본듯한 기분입니다

  • 2. 윤사월
    '24.11.17 12:38 PM (116.32.xxx.155) - 삭제된댓글

    현재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능력껏 사랑

    이게 참... 그럼에도 사랑을 많이 하는 것만이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남는 것이 아닌지.

  • 3. 그러게요
    '24.11.17 12:39 PM (116.32.xxx.155)

    현재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능력껏 사랑

    이게 참... 그럼에도 사랑을 많이 하는 것만이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남는 것이 아닌지.

  • 4. 맞아요
    '24.11.17 12:40 PM (142.126.xxx.46)

    글 참 잘 쓰시네요. 김치에 담긴 그 여러감정들 잘 느껴져요.
    저도 오늘 마침 해외에서 김장을 하면서 엄마한테 받았던 김치들이 생각이 나서 심란하던 차에 이 글을 보니 더 와닿아요.

  • 5. ...
    '24.11.17 12:40 PM (183.102.xxx.152)

    김장 담그려고 준비하는 중에 점심먹고 잠시 쉬며 글을 읽었어요.
    수필의 한 페이지 같이 여러가지 감정을 전해주네요.
    내 김치는 누구에게 어떤 감정을 전해줄까...
    딸아이 친구, 연로하신 이모와 외삼촌
    이웃에 내가 좋아하는 친구에게도 전해질 김치거든요.

  • 6.
    '24.11.17 12:41 PM (39.117.xxx.171)

    그맇군요 김치에 그런 깊은 의미가..
    저는 그래서 시어머니가 주시는 김치를 주지말라고는 못하고 항상 조금만 달라고 하나봐요.
    발만 걸치고 깊은 관계가 되는걸 거부하듯이

  • 7. 이제는
    '24.11.17 12:42 PM (222.100.xxx.51)

    김장 해서 저를 주겠다고 생각할 만한 관계가 없어졌어요.

    제가 해서 나눠줄 때인가봅니다. 김장 나눠줄만한 자신은 없어서 ^^;;

  • 8. ...
    '24.11.17 12:44 PM (219.255.xxx.142) - 삭제된댓글

    싱크대에 서서 한입 베어물은 씁쓸하고 알싸한 맛이 느껴집니다.
    김치에 얽힌 이런 상념을 공유하는것도 저희 세대가 마지막일것 같아요.

  • 9. 맞아요
    '24.11.17 12:46 PM (175.223.xxx.51)

    저장음식 그 이상의 관계 확증

  • 10. 글을
    '24.11.17 12:47 PM (61.39.xxx.41)

    참 잘 쓰시네요.

  • 11. ^^
    '24.11.17 12:48 PM (223.39.xxx.166)

    글 잘표현했네요 ᆢ
    왠지 마음 쓸쓸한 ~~ 커피한잔 놓고갑니다^^

  • 12. ㅁㅁ
    '24.11.17 12:50 PM (112.187.xxx.63)

    작가님이 실듯 ,,,

    저도 이제 제게 김장을 챙겨줄이는 없네요
    지난해 절친이 지방으로 이사하면
    있는김치 없는김치 바닥이 보이도록
    퍼주고 간 이후

  • 13. ssunny
    '24.11.17 12:54 PM (14.32.xxx.34)

    엘리베이터 만큼 거리 있던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어찌 되셨나요?

    그냥 원글님 어깨 한 번
    토닥거리고 싶네요

  • 14. 산딸나무
    '24.11.17 12:54 PM (182.224.xxx.78)

    제 좁은 맘 내어줄 자신이 없어서
    돈 주고 산 절임배추에 돈 주고 산 양념 발라
    고작 통 하나 채우고선 팔이 욱신거리나봅니다
    알타리무 총각김치 주문하러 가야겠습니다

  • 15. 김장
    '24.11.17 12:57 PM (58.234.xxx.216)

    이제 부모님의 김치를 대할수 없는 같은 처지라 그런지
    수필같은 글이 마음에 너무 와 닿아서 로그인하게 되네요.
    덕분에 오늘 하루 긴 여운이 남을것 같아요..

  • 16.
    '24.11.17 12:57 PM (175.223.xxx.26)

    뭔가 갓김치 같은 글이네요

    한입 베물면 짜르르 하게 느껴지는 그 느낌..
    마음에 짠하게 매캐하게 신호가 와요

    여러가지 복잡미묘한 감정이 건드려지구요

    삶이란 어떻게 살아야 한다 는건 없는거 같아요

    다들 각자의 위치에선 나름 최선의 사랑의 표현인거구요

    그걸 알아차리고 받아들일줄 아느냐
    아니면 심판 판단하며 내 잣대로 재느냐

    어느 노선을 타느냐에 따라
    삶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 같구요


    마지막 문장이 뇌리에 남네요..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현재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능력껏 사랑하는 사람이
    승리하는 사람 같아요.

  • 17. ㅇㅂㅇ
    '24.11.17 12:59 PM (223.222.xxx.16)

    슬프네요..

  • 18. ㅇㅂㅇ
    '24.11.17 1:00 PM (223.222.xxx.16)

    김치는 김치이상의 무엇이죠. 우리들에겐..

  • 19. ...
    '24.11.17 1:00 PM (183.102.xxx.152)

    얼떨결에 내 품에 안긴 김장김치.
    김장김치를 받으러 가도
    아빠네 지하주차장에서 김치만 받고
    나는 돈을 건네고 맞교환한다.
    그렇게 아빠가 '내 딸을 챙겼어' 하는 위안을 사온다.

    이 부분이 제 감정을 건드리네요
    찡한 콧끝... 눈물이 핑 돕니다.

  • 20. 쓸개코
    '24.11.17 1:10 PM (175.194.xxx.121)

    원글님 글 잘 읽었어요.
    늘 영원한건 없는건지.. 변하더라고요. 김치맛도 마음도.

  • 21. 김장해야지
    '24.11.17 1:13 PM (183.107.xxx.32) - 삭제된댓글

    겉으로 들어난 주제는 김치이지만,
    그 안에 삶과 관계에 대한 통찰이 들어있네요. 물처럼 잘 흘러가 오늘에 이른 원글님의 글이 그 안에 각종 양념이 절묘하게 숙성된 장인의 김치맛이 납니다. 이런 글 읽으려고 여길 발길을 못끊어요^^

  • 22. 허라
    '24.11.17 1:23 PM (27.1.xxx.78)

    작가수준이네요.. 글 쓰시는 분이죠?

  • 23. .....
    '24.11.17 1:32 PM (222.234.xxx.41)

    김치에 담긴 가족내 권력관계 인간관계를 다룬 영화 글들 많긴한데 볼때마다 이건 다른문화권에선 절대 이대못할 주제일듯요 글잘읽었어요

  • 24. ...
    '24.11.17 1:34 PM (211.201.xxx.73) - 삭제된댓글

    저는 사별후 시댁과의 관계를 쭉 이어나가는중인데
    점점 이제는 시댁과는 인연이 다한 느낌이 들어요.
    작년부터는 김장김치 독립을 선언하고
    김장에 동참 안하기로 했는데
    고작 김치일뿐인데 이게 뭐라고 원글님과 비슷한 생각이 들었던것 같아요.

  • 25.
    '24.11.17 2:07 PM (61.105.xxx.4)

    글이 담백하면서도 여운이 깊네요.
    장면이 그려지면서 마음의 스산함이 전해져 오네요.
    잘 읽었습니다.

  • 26. ...
    '24.11.17 2:21 PM (219.255.xxx.153)

    대단한 통찰력과 문장력. 놀랐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27. ..
    '24.11.17 2:46 PM (222.98.xxx.31)

    급 글이 쓰고 싶습니다.
    바스라지는 그 곳 어디를 툭 건드리는
    님의 사유가 부럽기도 하고요.
    십수년의 블로그 글들을 모두 날려버렸는데
    흩어진 나의 말들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요..

    늦가을 바람부는 오후
    님의 글을 만나서 행복합니다.
    평화로우시길~

  • 28. 화앤
    '24.11.17 4:06 PM (223.54.xxx.46)

    정말 글을 잘 쓰세요.
    김치가 가져오는 단절감,
    전 평생 엄마가 해준 김치를 받아먹고 양가 이혼한 분도 없어서
    이혼한 자녀의 감정을 이해할 수 없지만.
    님글에서 잘. 느끼게 되네요.
    좋은 글 계속 올려주세요

  • 29. 아..
    '24.11.17 5:12 PM (121.200.xxx.6) - 삭제된댓글

    맛있어도 맛없어도 그냥 씁쓸한 김치맛일것 같아요.
    입안에서 느껴지는 즉물적인 김치맛이 아닌
    정서적인 김치맛...
    바로 위, 오빠의 49재를 치르고 돌아온 저녁
    가슴으로 뭔가 차고 올라오며 눈시울도 뜨거워
    집 니다.

  • 30. ....
    '24.11.18 2:05 AM (211.206.xxx.191)

    김치는 그냥 김치가 아니네요.
    축복합니다.

  • 31. ㅁㅁㅁ
    '24.11.18 11:19 AM (222.100.xxx.51)

    읽어주시고 좋은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은 칭찬에도 기분이 좋아요. ^^
    좋은 하루 되세요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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