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또한 잘난척일수 있겠습니다만,
제가 가진 몇 안되는 장점 중의 하나가 남의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빨간머리 앤이 그러잖아요. 사람들은 남의 좋은 이야기는 절대 말하지 않고 나쁜 이야기만을 전달한다고요.
그래서 남말이란 으례 실제와는 무관한 나쁜 말이기가 쉽더라고요.
올해들어 어쩌다보니 한 사무실을 쓰게 된 분이,
가끔 사람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언행을 하셨어요. 도대체 이분이 나한테 왜 이러지? 이런 말을 왜 하지? 싶은. 늘 그러는 게 아니라 제 입장에서는 한번씩, 뜬금없다 싶은 약간 레코드 판이 툭 튄다 싶은 그런 말들 있잖아요.
이 또한 잘난척이지만, 저는 남을 높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 마음이 편하기 위해 웬만하면 남의 언행의 바탕을 선의일 거라 생각하는 편이고,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제가 간섭할 수 있는 건 아니므로 그냥 깊이 생각하지 않고 넘겼어요. 오래봐야하는 분도 아니고, 그냥 시절인연인 건데 웬만하면 좋게좋게 지나가지 뭘 이러쿵 저러쿵 싸우고 드나 싶어서 그냥 내버려뒀어요. 뭘 어쩌겠어요, 남의 언행을. 원체 제가 전투력이 약하기도 하고요.
그렇게 1년이 다 되어가는데, 이제와서 그분이 그러네요.
저에 관해 들은 말이 있다고요. 그런데 내가 너를 겪어보니 들었던 말들이 다 깎여내려가고 있다, 니가 내가 처음 생각했던거보다 훨씬 좋은 사람인거 같다.
하
하
하
이 말이 칭찬입니까? 뭐 글쵸. 알고보니 니가 좋은 사람이구나, 하는 말이니 칭찬이죠.
네네, 저는 그냥 네네, 하고 말긴 했는데요.
제가 그분에 대해 가지고 있던 좋은 이미지가 박살나는 건 한순간이네요.
제가 지금 그분을 흉보거나(물론 흉보는 거 맞지요 마는)하는 게 아니라.
제가 그 순간에 느꼈던 감정은, 와, 사람이 이렇게까지 하찮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었어요.
그분의 순간순간 튀어나오던 맥락상 도저히 이해되지 않던 어떤 언행들의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었고, 그렇게 완성된 퍼즐을 펼쳐놓고 보니, 와, 너는 내가 생각했던거보다 훨씬 하찮은(나쁜이 아닙니다.) 인간이었구나, 하는 거였어요. 저는 사실 그분의 연세, 경력 등등을 생각해 높여 생각했고, 그분에 대한 저의 판단 자체가 높았기에 그분이 제게 하는 그 무맥락의 비난의 이유를 제게 뒀었거든요. 이유가 있으니 그러겠거니. 했어요. 그런데 그게 말이죠, 저를 알지도 못하는 겪어본 적도 없는 사람이 전해전해 듣고 해 준 이야기에 이유가 있었다니.
또 한번 새삼스레 또 한번 느끼게 됩니다.
남 말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 남말을 하는 사람은 정말 하찮아 보이는구나.
명심보감에 그런 말이 나오죠.
疑人莫用用人勿疑 사람이 의심스럽거든 쓰지 말고, 일단 사람을 쓰면 의심하지 말라
그분은 나름의 칭찬으로 좋은 의도로 그런 말을 하신 건 압니다. 뭐, 그 나쁜 선입견을 다 깨부술만큼 제가 좋은 사람이었다는 뜻도 되지 않겠어요? 저는 딱 그만큼만 받아들입니다. 그분에게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궁금하지도 않고요. 다만 그런 선입견을 가지고 있을 거라면 저와 한 사무실을 쓰지 마셨어야죠. 여의치않아 한 사무실을 쓰게 되었다면 그런 선입견에서 나온 무맥락의 나쁜 언행은 스스로 안하셨어야 맞고요. 환갑이 다 된 양반이 뭐하는 겁니까. 나잇값 못한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뭐, 그분 흉을 보고 있지만,
결국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남 말 하지 말아야겠다는 강렬한 깨달음을 다시한번 얻었다는 거예요.
그게 남에게 나쁜 짓이어서가 아니라, 나를 정말 하찮아보이게 만드는 행동이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