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건 아니고
82쿡에 의지하며 데굴데굴 굴러온 운전 얘기입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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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4년 전,
저는 태어나 처음으로 지하철역 없는
노 역세권으로 갑자기 이사를 하게 되었죠. 버스는 서울 가는 빨간 광역버스만 가끔 오고가는, 외진 경기도권...
지역 버스가 있다지만 다니는 코스도 짧고 배차 시간은 1시간 (오 신기해라, 이렇게 간격이 넓다니)
직장으로 연결도 안 됐어요.
면허를 딴 지 10년 정도 됐었지만 고이 모셔둔 장롱면허고
나름 '나 하나 탄 차가 오가면, 지구가 그만큼 더 병드는 거야! 대중교통을 이용합시다!' 하며
운전 생각은 하지도 않았는데
운전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된 거죠.
해야 하면 해야죠. 결론이 확실한 일 앞에서는 망설이지 않습니다.
82에서 여러 번 본 유명한 운전연수 강사에게 연락, 약속 잡음.
만나서 연수를 받아 보니...
어머?
시간당 돈 받으면서 5분 늦게 나타남. 늦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어슬렁어슬렁 천천히 수업 시작.
여러 사람 오가는 서비스업은 그러면 안 될 거 같은데, 차량에는 깊고 진하게 니코틴 냄새가 배어 있음. 옆에서 말할 때도 담배 냄새 풀풀.
처음 보는 저에게
반말을 절반은 넘게 섞어 쓰며 지도하더니
쉬는 시간이 있대요. 그러더니 어디 차를 세우게 하더니 나가서 담배를 피우고 들어와요. 그 시간이 약 10분에서 15분.
흡연 후 그 쌤이 차에 타니 담배 냄새는 더 진해지고...!!!
그리고 어찌저찌 연수 시간이 끝나 차를 세우고 보니
차량에 세팅된 시간은 실제 핸드폰 시간보다 5분 빠르게 돼 있었어요.
예를 들어 4시에 수업 종료인 줄 알고 멈췄다면 사실 진짜 시각은 3:55 라는 거죠. 출발할 땐 워낙 정신이 없어서 그런 줄도 몰랐는데.
결과적으로 쉬는 시간 포함해서 25분~30븐 정도를 그냥 날림...
집에 와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싶었는데
그래도 시작한 거니 끝까지 하자 생각했어요.
다음 시간,
또 늦게 출발 ㅋㅋ 반말은 또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음.
그리고 무슨 일인지 그 날은 저에게 엄청 짜증을 내더라고요. 자기가 그 전 시간에 저에게 알려 준 거라고 착각하는 거 같던데, 뭔가 본인이 만든 암호를 말하면서
-예를 들어 그게 선좌후우라면
(먼저 왼쪽, 그 다음에 오른쪽 봐라 뭐 그런)
선좌후우! 선좌후우!!!! 소리 버럭버럭 지르면서-
왜 그걸 기억 못 하냐고 화내는 거죠. 하지만 그런 거 말해 준 적 없음.
제가, 왜 화내시냐고, 저한테 그런 말 해 준 적 없다고 하니까
급 침묵하더니 자기는 화를 내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별꼴이야 진짜;
내가 왜 내 돈 주고 이 할아버지 강사가 정해놓은 먼 동네까지 와서
찌든 재떨이 냄새가 나는 차를 타고
난생 처음 보는 할아버지에게 반말과 호통을 들어야 하나 싶어서
그 날로 관뒀습니다.
조목조목 뭐가 문젠지 말하고 그만 하겠다는 저에게, 등 뒤에 대고
꼭 입금하라고! 수강료 오늘 꼭 입금하라고오!! 외치더군요ㅋㅋ 참나.
(물론 돈은 다 입금했어요. 그 사람이 잘라먹은 시간만큼 빼고 싶은 마음도 조금 들었지만
됐다 싶어서.)
근데 저는 운전 연수를 시켜 줄 만한
운전 잘 하는 사람이 주변에 아무도 없단 말이죠...
그래서 광고는 없으리라 믿고 82 인맥으로 연수샘을 알아본 거였는데 이런 폭탄이었을 줄이야... 이젠 어쩌나.
고민하다가, 대학 때부터 운전을 좋아하고 잘 하던 남사친에게 연락해 봤어요.
"이러저러해서 운전이 꼭 필요한데
연수를 좀 시켜 줄 수 있겠니? 비용을 낼게."
ㅇㅋ를 날린 남사친과
언제 시작할 거냐
일 주일에 몇 번 할 거냐
한 번에 몇 시간 할 거냐
조율을 한 후, 만났어요. 남사친은 우리 졸업 즈음에 뽑았던 SUV를 끌고 나와 있더군요. 야, 이 차를 마지막 봤을 땐 새 차였는데 우리가 나이를 먹는 사이 이 차도 낡은 차가 됐구나.
선량하지만, 약간 예민한 데가 있는 남사친이라
혹시 연수 중 나에게 짜증을 내면 어떡하나 걱정도 했지만
(가족이나 부부가 서로 가르쳐 주다가 싸운다는 수많은 일화들;)
친구는 생각보다 지도를 잘 해 줬습니다. ㅎㅎ 기본부터 시작해서
텅텅 빈 대형 주차장에 가서 후방 카메라 없이 하는 주차 연습,
마트 지하 주차장의 달팽이 같은 통로를 지나가기 등
자기도 나름 프로그램을 생각해 온 것 같더라고요. 잘 배웠어요.
이 때 깨달은 것- 나는 생각보다 간이 부은 인간일 수도 있겠다 ㅋㅋ
운전이, 겁이 안 나더라고요? 베테랑이 옆에 있어서 그랬나 모르겠지만.
하라는 대로 착착 잘 따라서 하니까 남사친이 약간 당황하며
원래 운전을 했었냐고 묻더군요.
아니?(훗 나 좀 잘 따라하냐?)
저에게 처음 시동 걸고 도로로 나가 보라고 시킨 날,
시동을 거니까 차에서 (걔가 원래 설정한 채널의) 음악이 나오길래
따라 부르며 운전을 시작했더니
옆자리에서 너무 기가 차다는 듯이
"어쭈, 노래를 불러어~?"
하더군요. ㅋㅋ 야 그게 다 너 믿고 그런 거야...
지금 생각해 보면 배운 내용이 정확히 어땠는지가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는데요...
이유는, 이때 엄청 중점을 두어 배운 게 주차였기 때문이에요.
주차를 잘 못 하면 어디에도 갈 수 없다는 공포로, 주차를 주로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래서 집중적으로 주차를 연습했는데
제 차에는 후방 카메라가 있어서,
지금의 저는 배운 내용 없이 오직 후방 카메라 의존해 주차하고
카메라 없으면 주차를 못 하는 바보가 되었답니다. 흑흑.
그래도 그때 기본은 다 배웠을 거예요. 그 덕에 운전하고 다닐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때도 친구에게 그렇게 말했지만
좋은 선생님에게서 잘 배운 것 같아요.
"이제 고속도로 들어가고 나오는 것만 배우면 될 것 같아!"
친구가 그랬는데, 그것까진 못 하고 서로 스케줄 때문에 연수를 종료하게 됐어요.
돈은 무슨 돈이냐는 친구 몰래
저는 미리 준비한 돈봉투를 그 친구 차의 글로브 박스에 넣어 두고 내렸어요. 나중에 카톡으로 알려줌.
액수는 저 전문 연수 강사의 요금보다 좀더 넣었는데, 괜찮은 거였겠죠...?
자신의 가르침이 꽤 쓸모가 있다는 점에 고무된 친구는
이거 투잡으로 괜찮을 거 같다고,
그 돈을 보태서 '운전연수 강사' 자격증 같은 걸 따겠다고 으쌰으쌰 신이 났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연수는 그렇게 마무리됐어요.
자, 이제 차를 사야죠.
초보에다 길치 올림픽 금메달감이라는 주제를 잘 파악하고 있는 저는
좋은 차가 다 무슨 소용이냐
경차를 보자, 하고 보다가 82에 글을 올렸죠. 스파크는 문이 두 개예요??? 하고 ㅋㅋ
온라인 카탈로그를 아무리 봐도 문 손잡이가 앞문에만 있는 거 같은 거예요!
그래서 머릿속에 그려지는 시나리오는
앞문을 연다
앞좌석을 눕힌다
뒷좌석에 탈 사람들이 먼저 기어들어간다 (보기에 당황스럽겠군)
앞좌석을 도로 세우고
앞좌석 승객과 운전자가 탑승한다...
였는데
이게 말이 되니 싶어서 82에 글을 올려 문의했죠.
그랬더니 여러 댓글들이 깔깔 웃으며
손잡이가 잘 안 보여서 그렇지, 뒷문에도 있단다 하고
친절하게 알려 주셨죠.
그렇게, 무슨 차를 살지도 빠르게 결정하고 계약까지 일사천리 진행됐어요.
내비를 달지 말지도 82에 물어 결정하며-
(생각보다 할 얘기가 많네요 ㅋㅋ
이어서 쓸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