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후배가 있어요.
오래된 인연인데 살갑고 표현잘하고 그래서 항상 잘해주고 싶은 후배였습니다.
제가 선배다보니 항상 밥도 사고 하소연도 들어주고 주변 사람도 소개시켜주고
나름 서로 각별하다 생각해서 많이 베풀고 지냈어요.
그런데 최근에 이게 뭐지? 라는 생각이 드는 일이 있었어요.
이 후배가 차가 없어서
같이 골프 갈 때는 제가 캐디백을 제 차에 싣고 가요.
연습장이 회사 근처거든요.
서로의 집은 극과 극이라
본인은 따로 집 근처나 동선맞는 다른 동반자 통해 오고요.
라운딩 후에는 다시 캐디백을 제 차에 싣고 와서 다음날 연습장에 가져다 줘요.
그런데 얼마전
라운딩 끝나고 캐디백을 주려고 퇴근 후 시간 맞춰 연습장으로 나오라 했더니
저보고 자기 이름으로 연습장 카운터에 맡겨달라는 거예요.
그때 순간 벙찌더라구요.
제가 제 것도 아닌 그 무거운 백을 주차장에서부터 연습장까지 들고가서 맡긴다는게
마치 무슨 심부름을 해주는 느낌이랄까요.
제가 정색하고
네가 와서 가져가라고 이야기했더니 부리나케 왔더라구요.
이 경험 이후로 이 후배가 다시 보였어요.
그래서 이후부터는 이 후배랑은 골프를 잘 안 가요.
사실 아무리 근처라 해도 회사에서 차를 끌고 가서 백을 싣고 내리는 게 따로 시간을 내야만 하는 일이고 여간 귀찮은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또 어쩔 수 없이 같이 가는 골프일정이 생겼고
저는 뭐 그래도 좋은 마음으로 시간내서 이 친구 연습장가서 골프백 싣고 갔다가 잘 운동했어요.
오늘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같이 점심먹고 연습장에 가져다 주기로 했는데
이 친구가 점심을 간단히 먹고 근처 갤러리를 다녀오자고 하는 거예요.
또 제 차를 이용하는 거죠.
저는 점심도 사고, 골프백도 운반하고, 급기야 기사노릇까지 하는 느낌?
제가 점심에 그럴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다.
캐디백은 다음에 내려도 되니 너 혼자 다녀와라. 그랬더니
괜찮다고 그냥 점심 먹자고 하네요.
이 후배와의 인연이 여기까지인건지, 아니면 제가 좀 예민한 건지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