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제대로 된 사과를 보기가 힘들다.

... 조회수 : 2,056
작성일 : 2024-10-16 23:51:29

수능 독해 문제집에서 와 닿는 글이 있어서 퍼왔습니다. 출처를 찾아보니 경향신문 칼럼이네요.

 

상황 면피용 진심없는 사과를 하는 사람들에게 이 글을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로 읽게 하고 싶어요.

 

입력 : 2015.05.18 20:34   수정 : 2015.05.18 20:52

엄기호 | 문화학자

 

 

제대로 된 사과를 보기가 힘들다. 전쟁, 국가폭력과 같은 범죄에 대한 국가와 국정 최고책임자의 사과에서부터 뇌물수수와 같은 정치인들의 사과, ‘갑질’한 기업인, 혐오 발언한 연예인에 이르기까지 다 그렇다. 이들은 자신이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사과해야 하는지를 잘 모르는 듯하다. 뻔히 고통을 당한 당사자들이 있는데 그들은 제쳐놓고 ‘국민’이나 ‘시청자’에게 사과한다. 아니 ‘사과’ 대신 ‘유감’이라고 말해서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인지 헷갈리게 되는 경우도 있다.

 

사과는 자신이 가한 행위의 ‘의도’에 대한 것이 아니라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행위다. 자신의 의도가 선한 것이었건, 악한 것이었건 그것이 피해자에게 구체적으로 고통을 가했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 사과다. 따라서 사과에 선행해야 하는 것은 자신의 행위가 왜 상대방에게 ‘본의와 달리’ 고통을 줄 수밖에 없었는지를 깨닫는 것이다. 그래야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사과가 그저 한번의 사건에 대한 것이 아니라 앞날에 대한 맹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사실상 사과는 거의 불가능하다. 잘못한 이가 자신이 누구에게 어떤 고통을 줬는지를 이미 알고 있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 경우에 가해자는 이미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알면서도 고통을 줬다. 그것이 뻔히 고통인 줄을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고통을 준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사과는 들켰기 때문에 하는 사과다. 들키지 않았더라면 결코 사과하지 않았을 것이다.

 

반대로 가해자가 그가 고통을 가한 것에 대해 모르는 경우에도 사과는 불가능해진다. 무엇을 사과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사과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본의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악의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이 말은 대부분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한번도 피해자의 입장이 되어본 적이 없기에 그것이 고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본의’가 아니지만 어쨌든 피해자가 고통을 느꼈다고 하니 사과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 경우도 제대로 된 사과가 될 수 없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데 어떻게 사과를 할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어느 경우라도 고통에 대한 이해가 없다. 아무리 ‘진정한’ 사과라고 하더라도 사과한다고 고통이 그 순간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 고통은 지속된다. 그렇기에 상황을 끝내려고만 하는 것은 고통을 가한 자의 입장일 뿐이다. 그렇다보니 사과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사과를 받을 것을 종용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자신의 사과가 얼마나 진정한 사과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피해자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막무가내로 찾아가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것이 사과가 처한 근본적인 딜레마다. 알고 있었다면 애초부터 고통을 가한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는 거리낌이 없었던 것이고, 모르고 했다면 무엇을 사과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과할 수가 없다. 사과를 하는 사람들이 맨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사과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 말이다. 사과를 ‘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사과를 ‘받고’ 말고 할 것도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피해자에게 떠넘길 공은 애초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치인에서부터 연예인, 아니 보통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너무 쉽게 사과하고 한순간에 해결하려고 한다.

 

그렇기에 사과를 하는 사람들이 인정해야 하는 것이 세 가지다. 하나는 고통을 받은 사람이 있다는 것. 둘째, 자신은 그 고통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것. 세째,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의 고통에 대해 ‘시간을 들여’ 알아야만 한다는 것 말이다. 고통이 순간이 아니기에 사과도 순간이 될 수 없다. 사과는 일회용 휴지처럼 한번 사용하고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과는 시간을 들여 반복·지속돼야 하는 행위다. 우리는 잊고 묻으려고만 하는 ‘사과’에 저항해야 한다.

IP : 1.229.xxx.172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24.10.17 12:19 AM (212.102.xxx.64) - 삭제된댓글

    사과는 양심에서 우러나와 해야하는건데
    양심을 강제할순없죠
    애초에 도덕지능 영성지능이 낮으니 잘못을 저지르는건데
    낮은 지능이 높아지는건 거의 불가능하죠
    그냥 잘못에 대한 벌을 누가봐도 사이다이다
    싶게 주는게 더 낫다고봐요
    프랑스가 나치부역자들에게
    진심어린 반성사과해라 소리하느니
    100세가 돼도 잡아내서 노약자 감안 그런거없이
    생으로 감옥에 가두고
    수도 수복하고나서 부역자나 독일군에게 몸팔던여자들
    머리 박박밀고 끌고다니고 조리돌리고
    그게 낫다고봐요
    과실 실수 아니고서야
    알고 잘못한인간은 벌이나받으면 되고
    그로부터 보상확실히 받아내는게 낫지
    사과의 진정성이 있고없고는 글렀어요

    그냥

  • 2. ㅇㅇ
    '24.10.17 12:51 AM (223.39.xxx.187)

    끄덕끄덕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637613 수상한 느낌의 남자 .. 2024/10/20 1,583
1637612 리사가 현대판 공주가 아닐까요? 14 ..... 2024/10/20 5,139
1637611 이름이 너무 흔해요 40대지만 개명 고민 41 ㅇㅇ 2024/10/20 5,315
1637610 엄마가 선물받은 쿠키를 저에게 주는데.. (긴글) 34 00 2024/10/20 7,270
1637609 냉장고장이 800mm이고 살려는 김치냉장고가 795mm이면? 5 여유 2024/10/20 951
1637608 남에게 인정받으려하기= 낮은 자존감? 1 .. 2024/10/20 2,130
1637607 MBC 국힘패널 김건희 쉴드치다 나가 버림 ㅋㅋㅋ /펌 5 꼴좋다 2024/10/20 4,188
1637606 알레르기가 오래가서 대학병원 가라고 하는데요… 2 아줌마 2024/10/20 1,190
1637605 50대 서울 한옥 구입 어떨까요? 19 000 2024/10/20 5,098
1637604 국그릇 밥그릇 새로 살꺼예요. 14 알려주세요 2024/10/20 3,625
1637603 이토록. . . 추리 질문 6 . . . 2024/10/20 1,979
1637602 지금 mbc에서 이토록친밀한배신자 3~4회 재방하네요 ........ 2024/10/20 1,050
1637601 최강욱 장인수 박시영 공동 방송  그땐 왜  6화 ㅡ  노무현의.. 2 같이볼래요 .. 2024/10/20 1,000
1637600 저의 소소한 사치 2 사치 2024/10/20 4,246
1637599 가사도우미 구인 인데요 이런 조건은 어떤가요? 25 가사도우미당.. 2024/10/20 4,543
1637598 교육대학원 교원자격증 양성과정폐지와 사범대 대학원 4 ..... 2024/10/20 2,694
1637597 가정교육을 제대로 못 받았어요. 25 궁금 2024/10/20 5,795
1637596 한강 작가님 책방오늘을 소개하는 영상이네요 2 .... 2024/10/20 1,119
1637595 카톡이나 메세지 녹취록등이 증거가 될수있을까요? 3 ㅣㅣㅣ 2024/10/20 877
1637594 조립식 가족 정말 재미있어요!!!!!! 9 옴마야 2024/10/20 3,692
1637593 어제 광화문 근처를 지나는데 5 뭐하는걸까료.. 2024/10/20 2,148
1637592 자랑은 절대 하면 안되겠네요ㄷㄷ 순식간에 나락 18 자랑노노 2024/10/20 21,744
1637591 순천,여수 맛집 추천 부탁드려요 19 순천 2024/10/20 1,903
1637590 스트레이트 보고 계신가요? 5 에휴 2024/10/20 1,622
1637589 보고싶은 친구와 연락이 끊겼을때....ㅜㅜ 13 .. 2024/10/20 4,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