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우리 할머니

그냥저냥 조회수 : 1,081
작성일 : 2024-10-12 15:19:16

'할아버지. 노인들은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잖아, 할어버지도 그래?' ' 아니 나는 오래 살고 싶다. 옛날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세상이 좋아지고 있으니 나는 죽고 싶다는 생각 한적이 없다'는 할아버지와 달리 맨날 '어서 죽어야 할텐데'를 주문처럼 말씀하시곤 하던 할머니께서 갑자기 뇌출열로 쓰러지신 날 그날은 90세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제삿날이었다. '자네는 10년만 더 살다 오게나' 하셨던 할아버지의 유언보다 더 살다 할머니는 쓰러지신 후 3개월 지나 97세에 돌아가셨다. 할아버지가 마냥 무서워 동네 친척 고모댁(할아버지쪽)에서 살다시피하다 실제 부부로 살기 시작한 것은 18세. 14살때 가난한 친정의 장녀로 태어나 입 하나 덜기 위해 9살 많은 할아버지에게 시집을 왔다고 한다. 할아버지께서 엄마에게 '내가 오냐 오냐 했더니 버릇이 없으니 에미 네가 이해하라' 라고 하실 정도로 할머니를 많이 이뻐하셨고 금술이 좋으셨다. 할머니는 시집 살이를 하지 않으셨다. 일찍 부모님을 여의신 할아버지의 가까운 친척들이 어린 할아버지의 재산을 마음대로 처분하여 그 많던 논과 밭이 단출해졌을 때 시집을 오셨다.  일제 시대 남자들도 하기 힘들다는 쟁기 대회에 나가 1등을 하여 논 몇마지기를 상으로 받기도 하셨다고도 하고 아무튼 여장부셨다. 목소리도 크고 때론 막무가내셨지만 할아버지에게는 순종적이었다. 일제시대 결혼하여 만주로 이사를 간 여동생을 만나러 가며 할머니는 본인이 삼고 지으신 삼베를 갖고 가 팔아 돌아오는 길 기차안에서 일본 순사가 몸수색을 했지만 돈을 뺏기지 않으셨다. 그때 업고 간 어린 아들의 똥기저귀에 숨겼기 때문. '할머니 더럽지 않았어?','나는 똥이 하나두 더럽지 않았다. 그 돈이 어떤 돈인데'.  작지만 뚱뚱한 중국할머니 인형을 보면 돌아가신 할머니가 떠오르곤 한다. 하관 직전 본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새처럼 작디 작은 소녀 모습이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글을 올려야 한다니 먼저 생각나는 건 할머니 생애에 대한 호기심으로 귀담아 들었던 일화들. 가볍고 서툰 글 올리니 양해바랍니다.

IP : 183.101.xxx.201
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24.10.12 3:24 PM (118.235.xxx.251)

    한 사람의 인생이 원글님 덕분에
    빛을 보고 날아올랐어요

  • 2. 1245
    '24.10.12 3:25 PM (121.161.xxx.51)

    역시 물갈이 한번은 해야하는게 맞네요. 이렇게 좋은 글도
    올라 오고..82운영진 감사합니다!

  • 3. 어머
    '24.10.12 3:28 PM (112.186.xxx.86)

    글을 너무 잘쓰시잖아요.
    할머니는 애처가 할아버지랑 잘지내고 계실듯하네요.


    게시물 올려한다는 압박감 너무 싫어요 ㅎㅎㅎㅎ

  • 4. 와~
    '24.10.12 3:29 PM (183.99.xxx.150)

    좋은 글이 가득하네요. 너무나 생생한 묘사! 소설속 한페이지를 읽은 듯 해요~ 기회 되시면 또 써주세요! 원글님!

  • 5. 기레기아웃
    '24.10.12 3:52 PM (61.73.xxx.75)

    너무 재밌게 잘 쓰셨어요 또 읽고 싶어요 ㅎ

  • 6. 새날
    '24.10.12 4:11 PM (59.9.xxx.174)

    우와 짝짝짝!!
    잔잔하고 아름답게 글 잘 쓰시네요.

  • 7. 샬롯
    '24.10.12 5:09 PM (210.204.xxx.201)

    와 정말 아름다운 글이예요!
    저도 남편이랑 앞으로 30년 그리 살고싶어요. 남편에게 이쁨받으면서요.

  • 8.
    '24.10.12 6:02 PM (125.189.xxx.41)

    좋은 글 잘 읽었어요.
    아 근데 글을 올려야되는군요..
    님이 저 대신 하나만 더 올려주세요.ㅎㅎㅎ
    농담요 ㅋ 글이 좋아서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638267 물고기를 학교로 돌려보냈어요 ㅠㅠ 28 고구마 2024/10/12 3,661
1638266 한강 작가님 감사~ 3 감사 2024/10/12 1,081
1638265 다이소에 큰박스 파나요? 6 꿀순이 2024/10/12 585
1638264 82쿡에 적은 예전 글과 리플들 한꺼번에 지우는 방법 없나요? 5 휴지통 2024/10/12 594
1638263 햅쌀 선물받았는데 묵은쌀이 40k정도 남았어요ㅠ 8 ... 2024/10/12 1,076
1638262 솔직히 아까운 경조사비가 많아요. 12 생각고침 2024/10/12 3,792
1638261 집에 시들어 가는 토마토 갈았어요 3 토마토 2024/10/12 641
1638260 말랭이용 고구마 2 eun 2024/10/12 397
1638259 저도 핑계김에 사는 글 올려봅니다. 9 커피향 2024/10/12 1,163
1638258 장보러 코스트코 갑니당. 12 워니들 2024/10/12 2,720
1638257 안쓰는 담요,수건이곳에 보내주세요 11 어머 2024/10/12 1,801
1638256 묵은지 찜 1 주말일상 2024/10/12 535
1638255 한강 작가님과 동창이었나봐요. 12 sowhat.. 2024/10/12 5,270
1638254 아랫집 화장실 누수 ㅠㅠ 10 ㅇㅇ 2024/10/12 1,642
1638253 성인애착인형 8 인형 2024/10/12 1,359
1638252 한강 작가 일본인들 반응이 생각보다 36 축하 2024/10/12 5,800
1638251 아크릴 캐릭터판 .. 2024/10/12 127
1638250 흑백요리사와 피지컬100 중 뭐가 더 재밌나요? 7 ㅇㅇ 2024/10/12 953
1638249 쫀쫀한 나경원 노벨상 축하글 16 나베야 2024/10/12 3,741
1638248 제가 심하게 화냈어요. 38 그때 2024/10/12 5,393
1638247 SNL 흑백요리사 패러디 ㅎㅎㅎ 6 Snl 2024/10/12 1,972
1638246 아들 하나 세식구 인데 요즘 새 아파트 20평대 요. 10 클린하우스 2024/10/12 2,061
1638245 빨대 추천해주세요 3 추천요망 2024/10/12 238
1638244 남동생이 이런 여자 만난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열불남 66 속상 2024/10/12 6,341
1638243 아...오늘부터 시작이네요. ㅠㅠ 5 줄줄줄..... 2024/10/12 2,6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