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한강의 수상 소식을 듣고, 이런 저런 생각

safari 조회수 : 3,200
작성일 : 2024-10-11 00:26:27

얼마전에 여기서 "소소하지만 유머가 있는 글" 추천 받아서 열심히 읽었는데,

그중에서도 책만들기에 대한 책들은 재미도 있지만 씁쓸한 면이 있었어요. 

 

사전 만드는 이야기 "배를 엮다"는 너무 재밌었고, 인쇄에 대한 이야기 "엔딩 크레딧"은 슬펐어요. (추천해주신 분 분들께 감사를...) 어쨌든 두 책 모두, 이제 내가 경험한 책의 시대는 이제 끝나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서글프더라고요.

 

그러다 오래 전에 열심히 들었던 팟캐스트 "신형철의 문학이야기"를 다시 듣고 있는데 너무 좋은거죠. 

 

제가 40대 중반인데, 저희 때만 해도 대학에서 진지하게 문학을 파는 사람들도 많고,

책읽기 좋아하는 찐 문과들은 출판사에 취직하는 것이 나쁘지 않은 길이었던 것 같아요. 전 인문대 출신이라 주변에 온통 책 열심히 읽고 토론하는거 좋아하는 남자들이 많아서 그 당시엔 매력이 없었는데, 지금 기술과 경제 얘기만 하는 공대출신 남자랑 살다 보니 그 시절이 그립네요 ㅎㅎ (그런데 오늘은 그 공대출신 남자가 술마시고 들어와서 한강 수상 소식에 울먹이네요 ㅎㅎ 우리나라는 이과 쪽으로는 절대 못받을걸 자기는 안다면서, 그래서 문학이 대단하다며 자꾸 샴페인 딴다는 걸 말리느라고 혼났네요;;;)

 

전 문학이랑 어학을 좋아해서 독어 불어를 1, 2, 3 다 들었는데...

불문과 교수님은 나이도 많으신데 바바리코트에 줄담배 피고,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강독했던게 너무 전형적인 프랑스물 먹은 분위기고,

독문과 교수들은 왠지 다 진지하고 성실한데 딱히 멋은 없었었요. ㅎㅎㅎ

 

아무튼 지금 생각해보면 전 취직 걱정 없이, 듣고 싶은 교양 수업 들으면서 나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운좋은 세대였네요. 책 읽고 토론하는 모임들도 좀 있었고, 동기 중에는 학교 다니면서 소설을 발표하거나, 평론으로 신춘문예 당선되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저희 윗세대는 더하죠. 비평도 활발하고, 문예지도 많고...툭하면 문단에 천재가 나타났다고 호들갑 떨고 이런 이야기들 지금 보면 낭만의 시대였구나, 새삼 생각하게 돼요. 

 

그런데 지금은, 82에서도 문과는 그냥 공부 못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는 댓글을 보면  씁쓸했습니다.

 

찐문과인 저는 이 나이까지 주식 계좌도 없고 숫자와 경제 개념이 없어 지금 한국 사회의 기준으로는 경쟁력이 확연히 떨어지는 사람이긴 하지만, 그래도 비교적 사고가 열려 있고, 타인과 공감도 잘하고 자기 객관화도 잘되는 것은 책을 많이 봐서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래서 좋은 문학이 배출되고 향유되는 사회에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강 작가님의 수상을 축하하고, 이 일이 한국 사회에서 인문학의 입지를 조금이라도 올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 마지 않습니다.

IP : 112.157.xxx.122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포로리2
    '24.10.11 12:49 AM (119.196.xxx.94)

    이과지만 공감합니다.

  • 2. ...
    '24.10.11 1:15 AM (108.20.xxx.186)

    좋은 글 고맙습니다.

    원글님이 말씀하신 정서 저도 같이 공유하고 있어요. 낭만도 있었고, 필요성보다 당위성에 더 무게를 두었던 현재까지론 마지막 시대인 것 같아요.

    제가 사는 곳에서는 아직도 '북 클럽' 활동이 활발한 편이에요.
    몇 곳은 정기적으로, 몇 곳은 주제에 따라 참석해요.

    정기적으로 가는 곳에서 분기 별로 영미권기준에 조금은 낯선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게 함께 읽을 책을 선정해봐라 하는데 알바니아에서 온 친구가 이스마엘 카다레 를 추천한 것에 힘입어 저는 몇 번 있었던 기회에 검은 꽃과 소년이 온다 를 추천해서 좋은 시간 나눴어요.

    그러면서 했던 생각이 난 잘 알지 못하는 나라의 작가 작품들 이해하고 느낀다고 생각하면서 왜 이 사람들이 제대로 이해할까 를 고민했었나 였어요.

    문학만세에요!

  • 3. ...
    '24.10.11 1:18 AM (108.20.xxx.186)

    참 저는'소소하지만 유머가 있는 글' 게시물을 못봤는데, 찾아서 봐야겠어요.
    이것도 감사합니다.

  • 4. ....
    '24.10.11 8:06 AM (211.206.xxx.191)

    지금 시대가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끝판왕이라 그런 것ㅍ같아요. 모든것은 세작이 있으면 끝도 있으니 새로운 시작을 기대해보는 것은 기적이 있어야 가능한 걸까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634181 뭔가 변화가 있을 때 제가 하는 일 3 . . . 2024/10/12 676
1634180 사전투표소가 한산하답니다 6 2024/10/12 598
1634179 한강 작가 '흰' 많이 어렵나요? 4 ,,, 2024/10/12 1,578
1634178 전2008년 가입했네요 1 .... 2024/10/12 266
1634177 82오랜 회원 ㅎㅎ 2 좋아 2024/10/12 317
1634176 숙제글입니다. BTS 알엠(남준)이 이런 저런 짧은 얘기들. 20 쓸개코 2024/10/12 1,895
1634175 우리나라 지역축제는 다 똑같은거 같아요 2 .. 2024/10/12 846
1634174 생존신고 1 .... 2024/10/12 267
1634173 소소한 행복 2 미소 2024/10/12 627
1634172 지금 EBS 안녕4남매 보는 분 2 . . 2024/10/12 967
1634171 자유게시판 닉넴공개로 하면 어떨까요? 21 ... 2024/10/12 1,203
1634170 혹시 경동시장 맛난 과일집 아시나요? 5 경동시장 2024/10/12 673
1634169 와우 삼겹살을 시켰는데 ........ 2024/10/12 796
1634168 먼지없다고하는 러그 어떨까요? 3 . . 2024/10/12 335
1634167 저도 노벨 문학상 수상을 핑계로 부랴부랴 한자 적어 봅니다. 3 크라상 2024/10/12 832
1634166 엄마 이야기 9 은하수 2024/10/12 1,042
1634165 친절한 82 2 두딸맘 2024/10/12 332
1634164 예전 혜경쌤 참게장 3 참게장 2024/10/12 473
1634163 동네 세탁업체 보관료를 받던데...다른 세탁소들도 그런가요? 3 수선행 2024/10/12 551
1634162 저 음식만 잘해요 그런데 보리밥집 열면 망할라나요? 14 ㅁㅁ 2024/10/12 2,135
1634161 (후기) 꽃미남 카페 알바 다시 봤는데 2024/10/12 991
1634160 북한에 무인기 침투 4 now 2024/10/12 974
1634159 시나노골드 맛있네요 10 사과의계절 2024/10/12 1,579
1634158 전세사기 주범 '가짜 부동산'…부동산 거래 '46%' 무등록 중.. 2 ㅇㅇ 2024/10/12 843
1634157 게시판이 따스하네요 6 여면가우 2024/10/12 4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