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토지 나이들어 읽으니 새롭게 보이는 점

...... 조회수 : 3,797
작성일 : 2024-10-10 17:07:42

조준구에 대한 복수

 

어린 시절 토지를 읽었을 때에는 

조준구에 대한 복수가 허무하다고 느껴졌어요

관리도 안되어 쓰러져가는 평사리집을 조준구에게 다시 돈 오천원 (그 당시 거금)을 주고 사는.

 

정말 그 조준구랑 홍씨 부인을 평사리 별당 연못에 묶어두고 주리를 틀어도 시원찮을 판에.

말도 안되게 비싼 값에 주고 사는 서희

 

그런데. 지금 나이가 한참 들어 요새 가을이라 좋아하는 부분을 읽으니 새롭게 보입니다. 

 

서희가 조준구를 압박하여 몰고 가는 모습이 긴박하게 그려지네요.

의도적으로 몇시간을 고풍스럽고 우아한 서희의 진주 기와집의 하인들 쓰는 행랑채에서 기다리게 해놓고.

조준구를 사랑방으로 안내해 아랫자리에 앉힌 후 

들어서는 서희 (아름다움)

 

멍청한 조준구의 머리 위에 올라앉아 그를 파산시켰고.

그 전보다 몇배나 더 부자가 된 서희가 조준구를 상대하고 앉아. 

그가 속죄하도록 몰아부치는데 그 방식이 다시 읽으니 너무 좋네요.

 

안자(서희의 심복)에게 시켜 돈 만원을 갖다 놓고 반으로 가르게 해요.

오천원도 거금이니 만원은 뭐 막 30억? - 

서희가 직접 손으로 돈을 만졌다면 그녀의 존엄이 약간 구겨지는 느낌일텐데

안자를 시켜 거금을 반으로 가르게 하는 것도 숨막힙니다. 

 

그리곤

 

‘일말의 양심을 가져가시든지, 오천원을 집어가시든지’라고. 

뭐. 염치없는 조준구가 식은 땀을 흘리며

자기 사는 형편이 어렵다고 얘기도 하고… 

 

서희는 당신의 선택이에요. 맘대로 하세요. 

 

조준구는 냉큼 오천원 집고 사라지죠.

일말의 양심을 가져가는게 아니라 .

동네 사람들도 이렇게 한 서희를 이해할 수 없다라고 하죠

 

그런데 나이들어 다시 읽으니 이 복수의 방법이 곱씹게 되네요.

서희가 다시 찾으려고 했던 가치가 단순히 돈과 땅이 아니라 자존심, 권위, 윤리적 우위, 염치, 고귀함, 뭐 이런 것이였음을. 

 

조준구 뺨이라도 때렸으면, 시원했을런지 모르나. 

그렇게 했다면, 이처럼 조준구의 비열함이 드러나지는 않았을 듯요. 

철저히 힘을 빼앗고, 무력한 상태에서, 일말의 양심을 가져가도록 몰아넣죠.

 

도덕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이제 결코 대등한 상대가 되지 않는 비굴한 늙은이가 돈오천원을 가져가는데.

싸하게 통쾌하네요.

 

예전에는 이 부분 답답했는데.

 

또 길상이는 나이 들어 다시 읽으니 너무나 실망스러운 캐릭터.

 

박경리 작가도 자기가 길상이를 너무 사랑해서 망쳐버렸다고 하는데, 

정말 이야기에서 어디로 데려가야할지를 몰라 우물쭈물하다가 

그냥 시간의 압력 속에 부서져버린.

중2병 걸려 자아찾기 하는 소년 같기도 하고.

서희를 방치하다시피 내버려두었고.

 

그러나 덕분에 뭔가 쓸쓸한 연민으로 남은 둘의 사랑이 토지에 더 어울리는 것 같기도.

 

과감히 중요한 장면을 생각하고 불친절하게 한 문장으로 갑자기 던져놓는 박경리 작가때문에

예전에 놓쳤던 부분을 보게되는데.

 

이 번에 다시 읽으니 여러 곳의 힌트 덕에 이 둘은 평생 10번도 같이 안 잤을 것…같. ^^

 

다시 읽으니 언제나 좋네요. 역시 이 소설은.

 

IP : 121.156.xxx.243
1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24.10.10 5:10 PM (211.244.xxx.191)

    읽어야지..하고 늘 생각하는데
    구매하셨나요? 대출해서 읽으셨나요?
    가면 늘 1권은 대출중이더라고요...

  • 2. ....
    '24.10.10 5:14 PM (106.101.xxx.143)

    저도 복수하는 부분을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원글님도 글을 참 잘 쓰시네요.^^

  • 3. ...
    '24.10.10 5:14 PM (175.201.xxx.94)

    전무후무한 소설이죠

  • 4. ...
    '24.10.10 5:14 PM (121.156.xxx.243)

    저는 초등학교 6학년때 처음 구매해서(그당시 토지 드라마 유행), 솔출판사, 자유문학사, 등 출판사 바꿀때마다 샀고. 토지 1부는 무려 세로 쓰기버전이에요.
    낡아서 후둘후둘해짐. 1, 2 부는 워낙 재미있고, 3, 4, 5부는 좀 힘이 들지만, 1, 2 부의 힘으로 완독 가능함.
    그리고 완독이 어렵지, 완독하면 매번 다시 읽게 되는 마법의 책이에요. 책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우주.

  • 5. ..
    '24.10.10 5:16 PM (211.235.xxx.208)

    토지.. 나이 들 수록 달리 읽히는 책이죠. 등장하는 그 많은 인물들을 이해할 수 밖에 없게 하는 작가의 인류애에 감동하게 됩니다. 가장 악인이라 할 수 있는 거복이도 완전 이해가 갑니다. 임이네도, 길상이도 다 이해가 됩니다. 다만, 용이는 나이들어 읽을 수록 이해가 안가네요ㅎㅎ. 처음 읽을 때는 완전 멋졌었는데 말이죠.

  • 6. 궁금
    '24.10.10 5:17 PM (223.38.xxx.184)

    저도요 저는 성경 읽는 것과 비슷한 효과인 거 같아요 토지 완독.
    우리나라 배경이니 이해도 더 잘되고, 성경 읽느니 토지를 권하고 싶급니다 ㅎㅎ

  • 7. ....
    '24.10.10 5:20 PM (121.156.xxx.243)

    저도요! 임이네 이해가요!
    독보적으로 생생한 인물. 그런데, 용이, 홍이, 길상이 이런 어릴 때 좋아했던 사람들이 나이들어 읽으니 이해할 수 없어요.
    그리고 어릴 땐 몰랐는데 커서 매력적인 인물은 최치수. 최치수가 서울내기 조준구가 은근 자기의 고급 취향 -알고보면 허영- 과시하니깐, 막 저급 사창가 데려가서 기겁하게 만든 일화도 나이들어 읽으니 재밌네요. 아무래도 저는 확실히 서희네 DNA를 좋아하는 듯.

  • 8. ...
    '24.10.10 5:21 PM (223.62.xxx.252)

    정말 예전에 읽었는데...원글님 얘기하신 대목이 전혀 생각이 안나네요. 읽을때는 밤새워 읽었었는데.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

  • 9. 저도요
    '24.10.10 5:23 PM (58.236.xxx.72)

    중학생때 읽은 토지
    40대에 읽은 토지
    지금 50대에 또 읽고싶네요

    정말 인생사가 다 들어있어요

  • 10. 그러게요
    '24.10.10 5:27 PM (125.178.xxx.170)

    책으로 읽으면
    인간의 품격이 더 느껴지겠어요.

  • 11. ㅇㅇ
    '24.10.10 5:35 PM (121.136.xxx.246)

    아파서 1년 휴직해 있는 동안 토지 읽었어요
    무언가 충만된 느낌이 있었어요
    휴직하고 하고 있고 허탈해할때 토지가 많은 힘이 되어 주었어요 시간을 헛트로 쓰고 있지 않다는 위안...
    원글님 글 읽으니 다시 읽고 싶네요

  • 12. ㅋㅋㅋ
    '24.10.10 5:36 PM (211.206.xxx.180)

    1권은 늘 대출중이라는 첫 댓글이 왜 이렇게 웃기죠.
    저도 시작해볼까요.
    드라마로는 다 봤는데... 책으로는.

  • 13.
    '24.10.10 10:45 PM (14.38.xxx.186)

    저 지금 4권 읽고 있어요
    저도 처음 대출때 1권이 대출중이었어요

  • 14. ..
    '24.10.11 2:25 AM (14.45.xxx.97)

    저는 sbs드라마로 정주행하고 있는데
    조준구가 다시보니 꽤 똑똑하네요
    일본어도 할줄알고
    초반에 판세를 정확하게 분석해서
    최치수가 살해당할 것도 예측해서 결국 도둑질을 성공하자나요
    전염병이 돌 때 위생이 중요한 것도 알아서 살아남고

    중국에서 서희랑 거복이 일대일로 맞짱 뜰 때
    포스가 둘이 주인공 같았았어요
    길상이는 조연같은 느낌

    윤보가 인정 많고 통찰력이 있어서 좋았고
    임이네 불쌍하더라고요 모두 없수이 여기고 ㅠㅠ

    강청댁은 나오는 부분 마다 넘 시끄러워서 보기 힘들었어요
    연기하기 힘들었을 듯

    함안댁은 남편 김평산을 객관적으로 못 보는 거 속터졌고

    아역 서희가 넘 귀엽고 이미지가 그럴듯 했어요

    이제 반틈 봤고
    나머지도 언젠가 정주행하려고요

    책을 꼭 보고싶다고 생각은 하는데 쉽지 않네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640086 이런 경우 수시 합격자 좀 봐주세요 3 조언 2024/10/28 1,895
1640085 칼륨 많이 든 음식이 뭔가요? 7 // 2024/10/28 2,472
1640084 압력밥솥 얼마나 오래 쓰세요? 5 dd 2024/10/28 1,532
1640083 새우젓 냉장실에서 얼마동안 보관 가능한가요 9 냉장고 2024/10/28 1,798
1640082 황현산이 누구죠? 18 역겹 2024/10/28 3,840
1640081 밥솥 돌연사.. ㅜㅜ 19 ㅠㅠ 2024/10/28 4,866
1640080 진짜 한국은 사기꾼 천지네요 12 82 2024/10/28 5,764
1640079 오아시스 신한카드 쓰시는 분 계신가요? ufgh 2024/10/28 519
1640078 알라이아 직구 1 가방은 왜 2024/10/28 782
1640077 야당 상설특검 규칙안 운영소위 단독처리 1 하늘에 2024/10/28 490
1640076 오늘 다이어트식 봐주세요 3 2024/10/28 1,190
1640075 7시 정준희의 해시티비 미디어기상대 ㅡ 왜 남의 전쟁을 우리 전.. 1 같이봅시다 .. 2024/10/28 479
1640074 '검찰청 폐지·특활비 삭감' 전대미문 위기에 몰린 검찰 16 굿 2024/10/28 2,498
1640073 녹내장약 콤비간 10 수프리모 2024/10/28 1,313
1640072 시그먼트 카페 아세요? ㄷ ㄷ 9 Dd 2024/10/28 3,877
1640071 배추 김치 4 친정엄마 2024/10/28 1,585
1640070 소고기와 깻잎 어울릴까요 9 ... 2024/10/28 1,502
1640069 수능선물 이만원정도로 좋은건 없을까요? 19 수능 2024/10/28 3,344
1640068 세계사 공부 해보려는데요 어디부터 해야는지 14 나우 2024/10/28 1,743
1640067 옛날 노랜데, 가사 일부만 기억나요. 3 옛날 2024/10/28 1,527
1640066 토요일도 출근…'주 6일 근무제' 속속 부활 13 어흑 2024/10/28 7,126
1640065 지나고보니 화장품 미샤제품 좋았었네요 21 . . 2024/10/28 4,945
1640064 도배할때 벽지떼고 하나요? 3 도배 2024/10/28 1,446
1640063 김포시 싱글살기에어떤가요? 2 ㅇㅇ 2024/10/28 1,455
1640062 로제 아파트 ..내일 새벽 빌보드 몇위 예상하시나요? 23 ... 2024/10/28 5,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