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아빠는 하늘에 계신줄 알았는데…

사랑하는딸 조회수 : 4,935
작성일 : 2024-09-30 07:51:42

 

검푸른 하늘에 분홍빛이 도는, 조용하고 아직은 모든 것이 깨어나지 않은 아침

나는 어젯밤 읽다 만 욘 포세의 책을 다시 집어들고 침대에 기대앉는다

이 시간 어두움을 막 벗어난 밝기가 좋다

조도를 최대한 낮춘 불빛같은 이 밝기가 좋다

헤드보드에 달린 독서등을 켜니 진하지 않은 어둠 속에 노란 불빛이 동그랗게 퍼진다

그 불빛 안으로 책과 내가 들어가면 노르웨이 피요르 해안가 오두막집 다락방에 앉아있는 기분이다

이 불빛 아래 책읽는 시간이 좋다

 

문득 책 너머 두 발이 보인다 

저것은 아빠의 발이다

하얗고 뼈대가 굵직한, 발등고가 높고 발볼도 넓은 아빠의 발

달리기, 축구, 야구, 골프, 등산, 낚시,.. 운동이며 활동은 다 잘하셨고 즐기셨던 아빠의 발

치매걸리신 엄마를 끝까지 책임지시겠다고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아침 4시반이면 나가서 한시간씩 빨리걷기를 하시고 들어오셔서는 기어를 높인 실내자전거를 땀흘려 타시고 낮에는 엄마 손 붙잡고 뚝방길을 매일 두시간씩 걸으며 엄마에게 햇빛을 쏘여주신 아빠의 발

 

아빠가 보고싶을 때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 어딘가를 향해 아빠를 불렀다

아빠! 보고싶어요

아빠! 먼저 가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랑 푸른 들판 맑은 물가에서 언제나 그랬듯이 아이같은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열심히 즐기고 계시죠? 

그런데 오늘 아침 내 몸 끝에 달린 발을 보니 아빠가 계신 곳은 먼 하늘이 아니었다

튼튼하고 걷기 좋아했던 아빠의 발이 

몸은 노인이셨지만 얼굴은 해맑은 아이에 멈춰있던 아빠의 미소가

하늘과 숲과 바다를 보며 감탄과 감동을 담던 아빠의 눈이

나와 유난히 잘 통하던 아빠의 마음이

그 모든게 다 나에게 있었다

아빠는 나와 함께 계셨구나! 

 

 

 

IP : 220.117.xxx.100
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그리운 아빠
    '24.9.30 7:57 AM (175.223.xxx.195) - 삭제된댓글

    제목 보고 피하려했는데…
    아침부터 눈물이 나네요.

  • 2. 토닥토닥
    '24.9.30 8:01 AM (220.117.xxx.100)

    슬퍼할 땐 슬퍼하고 그리울 땐 그리워해요
    그리움은 사랑의 그림자라는 생각을 해요
    사랑이 클수록 그림자는 길게 드리워지는…
    큰 사랑 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려요

  • 3. ㅇㅇ
    '24.9.30 8:16 AM (211.179.xxx.157)

    아고 눈물이~~~

  • 4.
    '24.9.30 8:17 AM (211.219.xxx.193)

    아빠..

  • 5.
    '24.9.30 8:33 AM (14.42.xxx.34)

    작년 이맘때 병원에서 너무 아프셨던 우리아빠. 퇴원하시면 장어 구워드리고싶었는데. 너무 그립네요. 몸을 못움직이니 새처럼 날고싶다하셨으니 새가되어 어딘가 날아다니고 계실거라 생각해요. 아빠 보고싶어요.

  • 6. 가을해바라기
    '24.9.30 8:39 AM (14.46.xxx.226)

    글 읽다가 눈물이 났어요. 이십대 초반에 아버지 보내드리고 살면서 언뜻 언뜻 떠오르던 내 생각을 고스란히 글로 옮겨주신 님께 감사드립니다.

  • 7. 라스트라다
    '24.9.30 8:59 AM (211.218.xxx.49)

    오늘 6년전 하늘 가신 아빠 생신날
    아침부터 이렇게 감사한 글 올려주셔서 감사해요
    저는 아빠 손을 닮았어요
    병실에서 손 나란히 하고 사진도 찍었지요
    더 부지런히 일하고 이 손으로 더 많은 위로를 건네며
    살아야겠네요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 8. 라스트라다님
    '24.9.30 9:06 AM (220.117.xxx.100)

    댓글에 저또한 큰 힘을 얻었어요
    감사합니다
    라스트라다님도 아빠랑 손잡고 의미있는 일들 많이 하시기를
    저도 아빠랑 병원에서 지낼 때 발 나란히 하고 사진찍고 그랬는데.. ^^

    아빠랑 닮은 부분은 글에 쓴 것 말고도 많지만 결론은 저는 역시 아빠딸!
    60 다된 나이라 어디 나가면 어른스럽게 행동하려고 노력하지만 아빠만 떠올리면 아빠! 아빠! 부르던 어린 딸로 돌아갑니다
    다들 힘내시고 부모님이 주신 사랑 배불리 먹었으니 든든하게 힘차게 살아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649031 보증금 안받고 이사나왔는데요 6 집주인 2024/12/05 2,064
1649030 찾아주세요 2 생각 2024/12/05 466
1649029 Jtbc 뉴스 보니 딱 80년 광주 2 2024/12/05 1,725
1649028 절박뇨,밤에 깨서 화장실...비뇨기과 처방 2 ㅇㅇ 2024/12/05 1,266
1649027 자꾸 머리속에 욕이 맴돌아요 9 당뇨전 2024/12/05 1,419
1649026 초등1학년이 본 계엄령 4 삐삐 2024/12/05 1,996
1649025 jtbc 뉴스 보세요 6 ... 2024/12/05 2,178
1649024 특집 JTBC 뉴스룸 / "의원 다 끌어내라&quo.. 5 함께보아요 2024/12/05 2,047
1649023 구강작렬감 있으신 분? 또는 신장이 안 좋으신 분 계세요? 7 커피 2024/12/05 1,219
1649022 인터넷으로 주식사는데 비번을 잊어버렸어요 ㅠ 2 환타오렌지 2024/12/05 697
1649021 진정시키는 707 선배 1 .... 2024/12/05 1,581
1649020 젊은 친구들 여론이 매우 급격히 안좋아지는군요 7 오슬로 2024/12/05 3,722
1649019 패딩길이 7 키작녀 2024/12/05 1,334
1649018 동태전이 많이 짠데, 찌개에 넣어도 될까요? 2 돼지꺼져 2024/12/05 567
1649017 박그네때도 겨울에 집회하지 않았나요? 15 ㅇㅇ 2024/12/05 1,577
1649016 여러분은 사랑을 위해 어디까지 해보셨나요 3 .... 2024/12/05 1,194
1649015 오늘 6시 25분 뉴스룸에 계엄군 증언 나온답니 16 .... 2024/12/05 3,885
1649014 김건x가 찍은 3명 4 ㄱㅂㄴ 2024/12/05 2,871
1649013 국회의원 찾기 1 2024/12/05 494
1649012 우리가 아이들 잘 키워야합니다... 7 교육 2024/12/05 933
1649011 뭔가 가려졌던것들의 정체가 드러나는 시기인거 같아요 16 ㄷㄹ 2024/12/05 2,778
1649010 네이버 까페 접속 잘 되시나요? 16 네이버 까페.. 2024/12/05 1,586
1649009 왜 쿠데타를 동경했을까요 7 ㅗㅎㅎㅇ 2024/12/05 1,231
1649008 윤은 자기가 루이14세+전두환 3 .. 2024/12/05 745
1649007 혹시 온라인 강의하시는 분 계신가요? 2 온라인 강사.. 2024/12/05 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