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아이 아침을 주고 물을 뜨러 싱크대에 가는데
발등이 아파서 보니
큰 지네가 물고 도망가는 중이었습니다.
나중에 방쪽에서 지네를 잡으려고
난리를 치고나서 생각해보니
주방에서 물렸는데 어떻게 4미터 거리의 방까지 이동했는지에 대한 기억이 없더라구요.
나중에 아이가 설명해 줘서 알았어요.
그만큼 긴박했습니다.
집에 넙적한 선풍기가 있어서 그 선풍기로 일단 잡아두었어요.
그건 사실 제 생각이었어요.
걘 놀래서 그냥 아래 숨어있었던거죠.
어떻게 죽일까 생각하니
파리채가 생각납니다.
근데 지네가 15 센티가 넘고
폭도 0.8~0.9 정도라
그랬다가는 파편이 집안에 튈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시골 동네 원주민 친구에게 전화했습니다.
저의 첫 질문은 너무 천진하게도
죽여도 되는지였습니다.
"당연히 죽여버려야죠~"라고 답하며
두꺼운 책으로 눌러 죽이라고 알려주더군요.
최근에 3cm 정도의 책을 샀는데
저는 성격이 덜렁대서 원래 번잡스러운 책 커버를 버리는 편입니다.
아직은 책 커버를 버리기 전이라서
그 책을 공중낙하 시켜 그놈을 잡으려고 책을 찾는데
지네놈이 그 말을 들었는지 다시 전속력으로 달립니다.
그러더니 저의 침대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침대 쪽으로 들어갔나 하고
모션베드의 메트리스를 들어 안에 짐을 꺼내고
다이소에 산 틈새 먼지 제거봉을 개시하여 마구 쑤셨습니다.
그래도 안나와서 책장 밑도 쑤시고 여전히 안나와서 망연자실하였습니다.
소식들은 다른 친구가 전화를 해서
주사 맞으러 가라고 합니다.
아침에 아이 학교에서 공개수업이 있는 날이라서 읍내 병원은
줄서고 나면 학교로 돌아올수 없습니다.
걸어서 10분 거리의 보건소로 전화하니
의사 파업으로 매일 계시던 선생님이 일주일에 2번만 있어서 오늘은 없댑니다.
병원 안갈까바 친구가 인근 보건소를 수색하여 전화까지 해서 확인했다고 소식을 줍니다.
다행히 모기도 벌도 물린다고 많이 붓는 체질은 아닙니다.
이빨자국이 선명하게 두개있는 상태에서
많이 붓지 않아 보였는데도
속 안으로 무쟈기 기분나쁘게 쑤시는 통증이 계속되었습니다.
10분 거리의 보건소를 가니
여자 선생님께서 본인도 시골로 부임하고
지네때문에 엄청 고생했다고 걱정과 위로를 받았습니다.
통증을 줄여주고, 붓기를 가라앉혀주는 엉덩이 2대와
먹는 약을 주었습니다.
급하게 나오느라 지갑도 없어서 차에 굴러다니는 동전을 긁어
900원을 냈습니다.
보건소 리모델링 후엔 이제 지네가 안 나온다며
예전에 쓰던 효과 좋던 스프레이를 챙겨주시고
꼭 죽이라고!! 응원해주셨습니다.
약을 보니
지네 스프레이이라고 특별한게 없이 그냥 곤충 죽이는 약이면 될듯하더라구요.
집에 연막탄 스타일의 벌레 제거제를 사놓은게 있어서
그것부터 써보기로 했습니다.
원래 지난번 집에서 써보려고 했던건데
그땐 딸깍하고 눌리지가 않아서 시도하다가 두었거든요.
역시나 지네에 대한 복수심이 가득한 덕인지 성공했습니다.
남들은 저의 발을 걱정하는데
저는 지네를 죽여버려야겠다는 한마음 뿐이었습니다.
내 방안에 있는 것은 확실하고
오늘 얠 죽여야 내가 잡니다.
40평에 뿌리는 연막형 살충약을
4평도 안되는 방에 뿌리고 방을 닫았습니다.
3시간뒤에 돌아오니
지네는 침대옆에 배를 뒤집고 죽어있더군요.
사실 저는
보건소 가라고 친구에게 연락오기전에
지네에 대한 필승 전략을 미리 공부했습니다.
죽은 지네는 플로깅용 집게로 집으면 좋댑니다.
그 글 쓴 사람이 착한 마음 먹어서 준비한 복을 받는다고 신나하더군요.
저도 동네 산에 다닐때 플로깅 할려고 사놓은 집게를 가져와서
지네를 마당 구석으로 멀리 던졌습니다.
그게 1시쯤이었습니다.
지네를 버리고 이제 환기를 시켜야 합니다.
문을 열고 선풍기를 여러개 돌리면서 두고는 나왔습니다.
아무래도 오래 환기가 걸릴듯해서
카페도 가고 저녁밥도 밖에서 먹고
또 카페를 가고 8시가 넘어서 집에 왔습니다.
아직도 냄새가 나더군요.
내 방만 냄새가 심한거라
아이는 자기방에 들어가고
저는 내 방 창문 위주로 냄새를 뺄수 있게 선풍기를
다시 셋팅하고 마당으로 나가서
잔디를 깍습니다.
근데 2시 즈음 환기후 집에 돌아와 아이가 올 3시까지
집에 못들어가고 할일이 없으니
낮에도 잡초를 깍았습니다.
연막탄이 성공할줄 모르고
눌렀는데 되어버려서
진짜 폰만 들고 후다닥 나왔거든요.
책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서 마당에서 풀깍았는데
이제 또 ㅜㅜ 밤에 잔디를 깍습니다.
지금은 밤 12시가 넘었는데
아직 냄새가 남아서
왔다갔다는 되지만 잠을 잘 수는 없을것 같습니다.
쇼파에서 잘 예정입니다.
그래도 지네는 죽었으니 발을 뻗고 잘겁니다.
오늘 낮에 학교 참관 수업이 끝나고
엄마들끼리 차를 마시러 모였습니다.
중간에 죽은 지네도 확인하고 환기시키러 집에 다녀온 후
지네가 죽은 기쁜 소식을 알렸더니
누가 "지네 죽이면 안되는거 아니에요?"라고 묻더군요.
그 동안은 복수심에 불타서 아무 생각없이 죽여버리겠다고만 생각 했는데
이제 주사약도 돌고 통증이 가신터라서 3초쯤 고민했습니다.
"지네가 은혜갚을 일은 없을것 같아서 괜찮아요. ^^"
라고 답했습니다.
내가 재물로 받쳐질 처녀는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