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사람 마음은 보이지 않는다

ㅁㅁㅁ 조회수 : 2,479
작성일 : 2024-09-24 13:16:57

돌아보면 고등학교때 마음이 참 힘들었어요.

그런데, 아무도 몰랐을 거에요.

 

외양적인 것은 강남 8학군의 모 여고 다니면서

성적 상위권에, 

늘 까불기 좋아하고,

친구들 몰고 매점 다니기 좋아하는 

발랄 명랑한 소녀였죠. 

하교 후에는 친구들과 돈모아서 매일매일

즉석떡볶기를 먹고, 후식으로 소프트아이스크림을 먹었어요. 

친구들 웃기는게 취미였고,

매일 저녁 친구에게 갬성+개그로 편지를 썼고요.

 

그런데 저는 집에 들어가기가 너무 긴장되고 무서웠어요.

새엄마가 

소파에 눈 내리깔고 앉아 계실것이 상상되었거든요.

마치 냉장고에서 막 나와서 허연김을 뿜어내는 얼음 덩어리처럼요.

그 표면에 닿으면 소스라치게 놀라서 움츠려들듯,

새어머니의 차가운 시선에 부딪히는 일이 어려웠어요.

그래서, 매일 야자 끝나고 신나게 수다떨고 헤어진 후,

집에 들어가기 전에는 숨을 딱 멈추고

아파트 베란다를 올려다보며 세었어요.

1,2,3,4,5,6층..아! 다행이다 오늘은 불이 꺼졌다. 

주무시나보다. 휴. 

 

남들은 고2, 고3이라고 엄마아빠가 늦은밤 데리러 오고,

피곤하지, 어화둥둥 해주고 간식주고 했겠지만

저는 존재를 감추는게 가장 큰 미덕이었어요.

아파트 철문 열쇠를 찾아서 최대한 소리 안나게 ,,

열쇠 끝을  열쇠구멍의 벽에 밀착시켜 천천~~~히 돌리면

마지막 딸깍 소리에 다시 심장이 쿵.

문을 사알....짝 열고 발끝으로 들어갑니다.

가방을 내려놓고,

도시락 두개 싸던 시절이니 다 꺼내요.

씻어놓지 않으면 안되니 잔반....남기면 혼나는데,

쓰레기통(그땐 음쓰 따로 분리안할 때)의

다른 쓰레기 밑에 마지막 한입 남은 쉰내 나는 밥덩이를 감추어 버려요.

물을 최대한 소리나지 않도록 

하나의 실뱀처럼 주르륵 흐르게 작게 틀고는

가만가만 오래오래 두개의 도시락을 씻어 엎어놓습니다.

 

출출하여 먹을 것 있나 찾아보니

세탁실 세탁기 위에 뭔가 반찬이 올려져있어요.

아마 식히느라 거기 있나봐요.

선채로 한 두어입 주워 먹어요.

 

아침엔 여지없이 그 감춰버린 밥덩이에 대해 혼나죠.

쉬는 시간에 먹었는데, 선생님 들어오시는 통에

마지막 한 입은 못먹었다고 사실.을 말했는데,

저 한 입을 못먹을리는 없다고 단정하는 새어머니 말에

저는 항거할 힘을 잃어요.

길게 말해봐야 길게 혼날 뿐.

고개를 푹 숙이고 꼬리를 내립니다. 

더불어 '쥐새끼처럼' 세탁실에서 반찬을 주워먹었다고

또 한소리를 들어요.

쥐새끼 눈이 어두워 세탁기 위에 몇방울 흘리고도 몰랐나봐요

쥐새끼.가 내 몸에 찍찍...새겨집니다.

그렇게 들으니, 밤늦게 불도 안켜고

누가 나오기 전에 허겁지겁 입에 뭘 몰아넣는 내 모습이

쥐새끼랑 꼭 닮은 것 같아요. 

 

새엄마가 무서웠지만,

그래도 나에게 밥해주고, 엄마의 자리를 채워주는데

무서워하고 피하는 내 자신을 보며 죄책감도 들어요

은혜도 모르는 사람같고요.

 

그렇게 어둑어둑한 가정생활을 하고 

학교에 오면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있고, 

거의 혼날일이 없었던 안전한 학교와교실이 있었어요.

운동장에서 뛰어 놀아도 되고

소리를 지르고 호들갑을 떨어도

'유난떤다'는 소리도 안들어도 되고요.

 

저는 낮과 밤을 오가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까불쟁이 오락부장 여고생을 보며

밤을 상상하는 사람은 없더라고요.

저의 밤은 참 외롭고 길었는데도요. 

혼자서 등불없는 외딴 길에 서 있는 기분이었어요. 

 

새엄마는 좋은 분이었어요. 

저 몇 워딩이 비인간적이었지만,

저도 마음 속에서 그분을 비난하고 싫어하고 두려워했고

철없는 짓도 엄청 많이 했기 때문에 비겼어요

불편한 관계로 만난 운명 탓을 해야죠

그 시간을 그래도 잘 지나온걸 감사하게 생각해요.

수많은 인생 터널 중 하나였다고..

 

겉으로 아무 생각없이 무뇌로 보이는 까불쟁이도

각자 마음 속에서는 어둠과 전쟁을 치루고 있을지 몰라요.

 

그래서 사람 겉으로만 보고 판단하지 말고,

친절하게 대해주려고요.

저 자신에게도, 남에게도요.

 

좋은 오후 되시기 바랍니다.

일 하기 싫어 잠시 82에서 놀다갑니다.

 

 

 

 

IP : 222.100.xxx.51
1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ㅇㅇ
    '24.9.24 1:22 PM (118.235.xxx.76)

    82에 들어오는 이유?
    원글님 같은 분 때문이에요.
    우리 조금만 더 친절해지도록 노력해봐요.

  • 2. ooooo
    '24.9.24 1:31 PM (223.38.xxx.147)

    82에 들어오는 이유2222
    이제는 낮에도 밤에도 행복하신거죠?

  • 3. 어머
    '24.9.24 1:32 PM (128.134.xxx.33)

    필력이 좋으셔서 무슨 소설 한 페이지 읽듯 빨려들어갔네요. 어떤 일을 하시는지 모르겠으나 앞으로 시간 나실때마다 꼭꼭 글을 쓰시는 취미를 들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직접 뵙지는 못했으나 훌륭하게 잘 커주신 원글님에게 박수를 보내며 앞으로도 82에 종종 글 남겨주세요~

  • 4.
    '24.9.24 1:39 PM (118.235.xxx.87)

    그래도 힘든 시절 잘보내셨어요
    멋진님

  • 5. 대단하세요
    '24.9.24 1:42 PM (61.77.xxx.109)

    그 시절의 어려움으로 지금은 많이 단단해지셨죠. 내공의 멋이 느껴져요. 지금도 새엄마는 살아계신가요? 친엄마는요?가끔 이야기해주세요

  • 6. 지금은
    '24.9.24 1:44 PM (115.21.xxx.164)

    안녕하신거죠?

  • 7. ㅇㅇ
    '24.9.24 1:58 PM (106.101.xxx.33) - 삭제된댓글

    에휴 어린 나이에 힘드셨겠어요
    그 당시 어린 소녀를
    꼬옥 안아주고 싶어요

  • 8.
    '24.9.24 2:03 PM (106.101.xxx.200)

    8학군 여고 매점,
    즉석떡볶이먹고 소프트 아이스크림....혹시 저랑 같은 여고 다니신거 아닌가? 했네요 넘 똑같은 일상의 모습이라서요 ㅋ
    저도 지옥같은 집을 벗어나는 숨구멍이 그나마 학교였던것같은데 원글님처럼 활달하진 않았어요
    글을 참 잘쓰시네요

  • 9. .....
    '24.9.24 2:17 PM (119.149.xxx.248)

    뭔가 아련해지는 글이네요

  • 10.
    '24.9.24 2:47 PM (211.234.xxx.145)

    아무리 새엄마라지만 그렇게 눈치를 봤디는건 이유가 있는거에요
    봐야하는 날만 얼굴 보고 딱 기본만하고 말아요
    누가 시집 가라고 등 떠민것도 아니고 자기도 애 있는거 알고 감안하고 결혼한건데 밥해준걸로 은혜 모르네 어쩌네 소리하면 안되죠
    그렇게 눈치밥 먹게하고선요

  • 11. 호로로
    '24.9.24 3:40 PM (211.104.xxx.141)

    82에 들어오는 이유?
    원글님 같은 분 때문이에요.
    우리 조금만 더 친절해지도록 노력해봐요222222222222222222

    그런 아픔이 있었어도 잘 성장하신듯해요.
    저도 인간에 대한 편견이 많은데
    원글님 글보고 반성도 하고
    달라져야겠어요.
    좋은 글 정말 감사합니다.

  • 12. 토닥토닥
    '24.9.24 4:11 PM (112.161.xxx.224)

    고생했어요~
    내 식구들과
    행복하게 사세요!

  • 13. ...
    '24.9.24 5:04 PM (106.101.xxx.218)

    토닥토닥...

    남은 날들은 늘 밝고 따스하시기를...

  • 14. ㅇㅇ
    '24.9.24 10:45 PM (211.234.xxx.240)

    앞서 어떤 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원글님 이제는 낮에도 밤에도 똑같이 마음 편안하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 15. 감사합니다.
    '24.9.24 11:28 PM (222.100.xxx.51)

    마음에 가끔 어둠이 깃들지만, 그러다가도 또 늘 아침이 옵니다*^^*
    어둠이 와도 또 새벽이 오는 걸 믿으니까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잘 지나와요.
    여기 계신 모든 분들도 평안하시고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16. ...
    '24.9.25 12:47 PM (39.7.xxx.90) - 삭제된댓글

    그 새어머니와 지금 관계는 아떠신가요?
    이젠 같이 나이먹었으니 덤덤한 관계일까요?
    어린시절의 그 기억들이 상처와 분노로 남을수도 있을텐데
    성숙한 태도가 인상적이여서 본받고 싶네요.
    밝게 발 지내준 그 시절의 아이에게도 스스로 칭찬많이 해주세요..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647818 젖먹이 같은아이가 내일 수능 7 123 2024/11/13 1,256
1647817 햇서리태 ... 2024/11/13 359
1647816 '중용'을 실천하면 세상에 나쁜 일이 생기지 않겠구나 하는 깨달.. 3 깨달음 2024/11/13 607
1647815 금요일 kbs독립영화관 땅,쓰,시 해요 1 수험생 2024/11/13 668
1647814 저가형 커피매장 아메리카노 어디가 맛있나요? 29 .. 2024/11/13 2,929
1647813 여기에 당구장 하시는분 계신가요? 4 당구장 2024/11/13 655
1647812 삼전 7년전 가격이네요 1 .... 2024/11/13 2,005
1647811 삼성전자 4달만에 43%하락 8 ㅇㅇ 2024/11/13 2,640
1647810 당뇨검사는 공복 얼마나 유지하고 가요? 4 딱 혈액검사.. 2024/11/13 1,341
1647809 국민 40프로 면세자의 진실 30 세금 2024/11/13 4,159
1647808 가스렌지 무광 부분은 뭘로 닦으시나요. .. 2024/11/13 197
1647807 머스크 진짜 '도지 장관' 됐다…트럼프, 정부효율부 수장 발탁 5 ㅇㅇ 2024/11/13 1,530
1647806 연애하고 싶은데 할 수가 없어요 ㅠㅠ 13 ㅜㅜ 2024/11/13 1,964
1647805 노트북 - 저장된 정보 삭제 방법 좀 알려주세요 노트북 2024/11/13 179
1647804 가상 질문 : 이화여대 남녀공학 전환 27 여대문제 2024/11/13 2,514
1647803 나라 망했어요? 주식시장이 에효 13 ... 2024/11/13 4,375
1647802 프토랑 육비 1 123 2024/11/13 249
1647801 오후에 밥하구 자꾸먹어요 1 ... 2024/11/13 899
1647800 인레이와 크라운차이.. 4 ,,, 2024/11/13 684
1647799 정년이 앓이 중 - 극중 온달 상여 장면이요 2 ooooo 2024/11/13 1,576
1647798 박소현씨는 쌍껍한거죠?? 14 ㄴㄷ 2024/11/13 4,142
1647797 친절한 세무서 직원분께 보답할 방법 7 .. 2024/11/13 1,476
1647796 고2 수학5등급--인강 뭐 들어야 될까요 13 고2 2024/11/13 1,138
1647795 롯데백화점몰에 리뷰등록 하기가 안 돼요 리뷰 2024/11/13 195
1647794 스탠다드 푸들 데려올려고요 17 오래전부터 2024/11/13 2,6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