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추석 때 밤까는 얘기가 나와서

저위에 조회수 : 3,155
작성일 : 2024-09-20 22:09:12

기억이 나네요. 저희집은 밤 까는 건 항상 아버지 담당이었어요.

아버지는 정년퇴임 때까지 공무원으로 성실하게 일하시고 혼자 지방 근무도 많이 하셨는데 집에 오시면 바로 런닝셔츠만 입고 엄마가 시키는 일을 열심히 하셨어요. 콩나물 다듬거나 콩 까고 마늘 까고 그런 일 하도 많이 하셔서 오죽하면 도우미 이모님도 아저씨 이것좀 해주세요 하고 스스럼없이 시킬 정도였고요. 아침 차리고 커피 끓이고 식구 누구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토마토 쥬스 수박 쥬스 원하는대로 도깨비 방망이로 갈아 주시고요. 설거지도 다 당연히 아빠 담당. 강아지 목욕 산책도 오롯이 아버지 몫. 엄마는 목소리 크고 평생 도우미 부리고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면서 가장인 아버지를 그렇게 부려 먹었는데 키만 삐쭉 크고 기가 약한 아버지는 불평 한마디 없이 시키는 일 열심히 하셨어요. 계란 하나 제대로 못 삶냐 어째 당신은 맨날 첫날밤이냐 쿠사리를 받으면서요. 오죽하면 그런 광경이 신기한 제 친구들도 맨날 집에 놀러오고 아버지가 끓여주시는 커피 대접을 받았어요. 

 

조카가 6-7살쯤 되었을 때 누가 못된 질문을 했어요. 우리집 서열을 매겨 보라고요. 할머니 엄마 아빠 이모 도우미 이모님 기타등등 강아지, 그 다음 맨 마지막 할아버지. 어린 아이가 볼 때도 제 아버지는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다음 맨 밑. 아니나 다를까 어느 해 추석, 아버지가 하루 종일 밤을 깎으셨는데 한 대접 수북하게 깎아 놓고 잠깐 화장실에 다녀 오시는 동안 강아지가 그걸 날름날름 재빨리 먹어 치웠어요. 한 3분의 2 정도를요. 이 상황에서 누가 야단을 맞았을까요. 놀랍게도 저희 집에선 밤을 훔쳐 드신 강아지는 입맛이 고급이라고 칭찬을 받고 화장실 다녀오신 아버지가 잘못이라고. 비싼 밤을 잘못 간수했다고 혼나고 나가서 다시 사다가 또 까야 했어요. 아버지는 엄마한테 뭘 그렇게 잘못해서 평생 구박받고 돈 벌어다주고 집안일까지 하셨을까요. 엄마는 기가 세고 성질이 불같고 아버지는 착해서? 엄마는 서울 양반가 출신, 아버지는 시골 계룡남이라서? 아직도 모르겠네요 부부간의 갑을 관계. 이제는 돌아가시고 다 옛날 이야기지만 다음주에 돌아오는 아버지 생신에 끓이려고 기장 미역 사다 놨어요. 보고 싶네요 ㅠㅠ

IP : 74.75.xxx.126
2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24.9.20 10:12 PM (118.235.xxx.101)

    자식들이라도 아버지.기 좀 살려주지 그랬어요.
    오죽하면 손자 눈에 엄마.아빠.이모보다 할아버지가
    아래로 보였을까요 .
    그건 자식들도 아버지한테 함부로 했단 소리에요.

  • 2. 저희도
    '24.9.20 10:17 PM (74.75.xxx.126)

    자랄 땐 아버지의 고마움을 몰랐어요. 엄마의 가스라이팅이였을까요. 아빠는 아무것도 제대로 못 하는 사람. 강남 8학군에서 일류 과외 받고 호강하면서 자라면서도 엄마가 왜 삶은 계란이 이렇게 들쭉날쭉이냐고 야단칠 때마다, 그러게 매일 하는 거 왜 제대로 못할까 아빠는 모든게 어눌하네 그러고 넘어갔어요. 어쩌다 한 번 설거지라도 해 볼까 하면 들어가서 공부하라고 말리셔서 그냥 아빠한테 맡겼고요. 나이가 들어서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고 아버지 돌아가실 때가 되니 어떤 인생을 사셨는지 조금씩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많이 늦었죠.

  • 3. ㅇㅇ
    '24.9.20 10:24 PM (118.219.xxx.214)

    아버지가 왕이었던 친정과
    엄마가 여왕이었던 시댁
    솔직히 친정 스타일도 싫고
    시댁 스타일도 싫었어요
    그런데 유전인지 자꾸 친정 엄마처럼
    남편을 떠 받들어 모시게 되서
    반성하고 되풀이 하고 그러네요

  • 4. .....
    '24.9.20 10:26 PM (220.118.xxx.37) - 삭제된댓글

    아버지는 그게 행복하셨을 거예요. 내 마누라, 내 새끼잖아요.
    제 남편도 비슷해요. 절대 목소리 안 높이고, 자기 주장 안 해요. 자기도 시골에서 부모님이 그런 가정분위기에서 키웠대요. 우린 아들들에게 너도 결혼하면 그리 살라고 합니다. 이 집안 내력인 듯...

  • 5. 울시부모님
    '24.9.20 10:27 PM (58.29.xxx.175)

    보는것같네요.
    아버님이 공무원 퇴직하셨는데 어머님이 드세고, 저 사람은 공무원 아니었으면 천지 할줄아는거 하나도없다고. 못 벌어먹고 살았을거라고... 큰소리치고 가스라이팅. 평생 전업 시어머니가 떵떵거리고 사세요.
    근데 아버님이랑 얘기할 일이 생겨 말씀하시는데...어머님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고 마음 착한 사람이래요. 저런 사람 없다고....원글님 아버님도 그게 사랑이지 않았을까요. 그런 어머님 맞춰주시는게 행복이지 않았을까....

  • 6. lllll
    '24.9.20 10:28 PM (112.162.xxx.59)

    그렇게 종부리듯 하는 아버지 안 계시는 지금은 어머니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하네요. 여전히 여걸스럽게 사시는지요. .

  • 7. 저희
    '24.9.20 10:40 PM (74.75.xxx.126)

    엄마는 여전히 사람들 부리고 잘 사세요. 아버지가 노후 대책을 워낙 튼튼하게 해 놓고 가셔서 도우미분들 요양보호사 이모들 가족들 주위에서 호강하고 지내세요. 엄마가 한 끼만 식사 소홀하게 하시면 저한테 벌써 전화가 몇통이 들어와요, 비상사태라고요. 사람 복이 그렇게 다 다른가봐요.

  • 8. 저희
    '24.9.20 10:44 PM (74.75.xxx.126)

    아버지도 병상에 계실 때 제가 간병하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속 얘기를 좀 나눴는데 어머니에 대한 원망은 커녕 불쌍한 사람이라고, 너희들이 끝까지 잘 모셔주길 바란다고 그러시더라고요. 엄마가 어디가 불쌍하냐고 했더니 클 때 심부름 안 해서 할머니가 막내 이모랑 차별하고 키웠다고 그런 상처가 있는 사람이니까 우리가 더 신경 쓰고 잘 보살펴줘야 한다네요. 그러는 아버지는 조실부모하고 친척집 전전하면서 눈칫밥만 먹고 자랐으면서 어떻게 서울 부잣집에서 철없이 자란 엄마를 그렇게 마음으로 품어주고 싶었을까요.

  • 9. ....
    '24.9.20 10:58 PM (114.200.xxx.129) - 삭제된댓글

    서열이 강아지보다도 못한건 진짜 이건 진심으로 아니네요..ㅠㅠㅠ 아버지는 그냥 집안의 평화를 위해서 그렇게 쥐죽은듯이 살았겠죠.... 뭐 잘못한게 아니라..ㅠ 아버지한테 잘해드리세요 ..

  • 10. ...
    '24.9.20 11:00 PM (114.200.xxx.129) - 삭제된댓글

    서열이 강아지보다도 못한건 진짜 이건 진심으로 아니네요..ㅠㅠㅠ 아버지는 그냥 집안의 평화를 위해서 그렇게 쥐죽은듯이 살았겠죠.... 뭐 잘못한게 아니라..ㅠ 아버지한테 잘해드리세요 ..
    저라면 엄마한테 한소리 할것 같아요..

  • 11. 근데
    '24.9.20 11:00 PM (124.5.xxx.71) - 삭제된댓글

    근데 엄마가 드세도 제사도 다 지내주고 할거 다하네요.
    부부관계 몰라요. 서로 주고 받고

  • 12. 근데
    '24.9.20 11:02 PM (124.5.xxx.71)

    근데 엄마가 드세도 제사도 다 지내주고 할거 다하네요.
    부부관계 몰라요. 서로 주고 받고
    가난한 집안출신 지방까지 가는 공무원인데 강남팔학군 집에 사교육에 도우미 아주머니까지 그 비용은 어디서 나셨는지가 궁금.
    엄마가 친정서 가져왔을까 복부인이셨을까...

  • 13. ...
    '24.9.20 11:03 PM (114.200.xxx.129)

    서열이 강아지보다도 못한건 진짜 이건 진심으로 아니네요..ㅠㅠㅠ 아버지는 그냥 집안의 평화를 위해서 그렇게 쥐죽은듯이 살았겠죠.... 뭐 잘못한게 아니라..ㅠ
    저라면 엄마한테 한소리 할것 같아요..
    이미 아버지가 돌아가셨네요.ㅠㅠ 그부분은 너무 짠하네요

  • 14. 아버지가
    '24.9.20 11:12 PM (182.221.xxx.15) - 삭제된댓글

    허허실실 맞춰주신거죠.
    그 옛날에 강남8학군 호강하며 살던 사람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과 결혼했으니 더 좋은 혼처에 시집가서 떵떵거리고 살수도 있었을텐데 고생한다고 생각하셨을거 같아요.

  • 15. .....
    '24.9.20 11:43 PM (223.38.xxx.20)

    이솝우화 중에 바보이반...이 있잖아요?
    삼형제 중 막내...젤 착하고, 부자고, 막사빠르고 이기적인 형들 사이에서
    늘 허허 실실...

    가만히 보면 희한하게 인가사에 꼭 이런조합으로 평화가 유지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이반이 더이상 바보이기를 거부하는 순간, 평화가 깨지면서 다 같이 불행해지는
    뮛 같은 구조...

  • 16. 저희
    '24.9.21 12:36 AM (74.75.xxx.126)

    외할아버지가 정말 현명한 분이신데요, 성북동 부자집이었지만 자식들 결혼은 하나하나 성격을 잘 파악해서 맞춤형으로 짝을 맺어주셨어요. 돈도 조건도 따지지 않고요. 엄마는 자식들 중에도 유난히 성질이 무난하지 못하니 신랑감은 무조건 착하고 성실하고 머리 좋은 사람만 찾았대요. 경상도 두메산골에서 나고 자라 동네 농고에 다니다 너무 성적이 좋아서 우연히 서울대에 진학, 고학으로 7년만에 졸업하고 공무원이 된 노총각. 성질 뭣같은 엄마 버리지 않고 맞춰주며 살거라고 딱 알아보시고 결혼 시키신 거죠. 엄마는 어디서 못난이 촌놈한테 보낸다고 평생 꿍시렁 거렸고요. 아버지는 말단 공무원이었지만 사치스런 엄마 비위 맞춰주고 싶어서 항상 투잡 쓰리잡 뛰셨고 지방 근무도 다들 가기 싫어하는 거 봉급이 더 높다고 마다 않고 다니셨어요. 그런 희생과 헌신으로 가정을 이끄셨는데 엄마는 아빠한테 감사하거나 그리워 하기는 커녕 요새도 트롯 가수들만 보면 저런 남자랑 살아보지 못해서 한이 된다는 철없는 말만 하시네요.

  • 17.
    '24.9.21 12:43 AM (124.5.xxx.71)

    완전 소설처럼 드라마틱하네요.

  • 18. ...
    '24.9.21 1:01 AM (221.151.xxx.109)

    외할아버지가 대단하고 아버지는 더 대단하네요 ㅜ ㅜ
    천국가셨을거예요

  • 19. ...
    '24.9.21 1:09 AM (125.129.xxx.50)

    아버님은 복이 없고 어머니는 복이 많으시네요.
    그복을 모르니 안타캅네요.

  • 20. ㅂㅂㅂㅂㅂ
    '24.9.21 3:14 AM (115.189.xxx.241)

    부부사이 일은 부부밖에 몰라요
    자식한테 뭘 이야기하겠나요
    어머니가 경제관념 없으셨음 아버지가 유산 아무리 남겼어도 순식간에 다 날려버려요

  • 21. 지금
    '24.9.21 6:51 AM (74.75.xxx.126) - 삭제된댓글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처가에 보은한다는 생각으로 사신 거였을까요.
    남의 집 눈칫밥 먹고 서울대도 농고 선생님들이 성적이 너무 아깝다고 이런 애는 대학 근처에라도 한 번 가봐야 하지 않겠나 십시일반 원서 사주셔서 붙었는데 친척들이 도둑놈이라고 했대요. 그 집 아들들은 대학 줄줄이 떨어지는데 종보다도 못한 더부살이 하던 아버지가 서울대에 척 붙었다고요. 그렇게 사람 대접 못 받고 자라셨는데 외할아버지 할머니는 따뜻하게 대해주셨으니까요. 성질 더러운 우리딸 데리고 사느라고 고생하네, 고맙네. 언제나 따스한 밥상 생일상 챙겨 주시고, 할아버지는 주말에 가면 항상, *서방, 내가 양주 선물을 받았는데 난 잘 모르니까 (사실 할아버지가 훨씬 더 잘 아셨지만) 자네가 그런 걸 잘 알지 않나, 골라서 한 병 따게 하고, 꼬냑이든 위스키든 바로 따야 맛있지. 그런 말씀 자주 하시던 거 기억나요. 뭔가 낭만의 시대였던 것 같아요.

  • 22. 아버님
    '24.9.21 12:13 PM (112.140.xxx.211) - 삭제된댓글

    성품이 정말 대단하신 거예요 ㅎ ㅎ
    원글님 글 너무 좋은데 추가해서 더 올려주세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626914 제가 갑자기 미역국에 미쳤는데요 12 머선일이고 2024/09/21 4,138
1626913 알바하는곳에서 이렇게 한다면? 2 생각 2024/09/21 1,542
1626912 부모복이 중요하네요. 23 .... 2024/09/21 7,447
1626911 암 수술이 미뤄지고 있다네요 18 ... 2024/09/21 4,378
1626910 이번 여름 너무 다녔더니 코가 까매요 2 2024/09/21 803
1626909 라면스프 활용법? 7 에휴 2024/09/21 1,815
1626908 주변에 이런 사람 봤나요? 7 아니 2024/09/21 2,281
1626907 밀키트 너무 비싸요 7 2024/09/21 2,565
1626906 친구만나는게 귀찮고 재미없어요 12 . 2024/09/21 4,275
1626905 영어문장 해석 도와주세요^^ 7 나비 2024/09/21 842
1626904 계엄령이라니,,, 25 불꽃 2024/09/21 7,234
1626903 세입자입니다 갤럭시 폰사진 복원 해보셨을까요? 7 ㅡㅡ 2024/09/21 2,075
1626902 지금 창문 열어 보세요 19 하하하 2024/09/21 5,448
1626901 사춘기 둘째가 우는데 가슴 미어져요 40 바램 2024/09/21 24,818
1626900 50대 이상분들 양가 부모님댁 방문할때 11 2024/09/21 4,143
1626899 일본엄마들도 교육열이 쎈가요? 13 일본 2024/09/21 3,223
1626898 살면서 시스템에어컨 가능한가요? 4 .. 2024/09/21 1,898
1626897 백팩 1 000 2024/09/21 796
1626896 의사욕 주구장창 올리는 분탕러 31 분탕질 2024/09/21 901
1626895 김건희 풍자했다 강제하차 당하는 주현영 46 ... 2024/09/21 38,922
1626894 제가 말실수한거죠? 2 어찌 2024/09/21 2,176
1626893 베트남 다낭 패키지로 여행 중이에요~ 23 ㅇㅇ 2024/09/21 5,812
1626892 의료대란 속에 의식저하 온 70대, 22차례 병원 수소문 끝에 .. 5 ... 2024/09/21 1,854
1626891 국힘의원이 김건희 국정농단 폭로했네요 10 .... 2024/09/21 5,210
1626890 이준석과 천하람이 공천거래 침묵하는 이유 13 .... 2024/09/21 4,2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