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이 너무 안타까워서 제법 길게 댓글 달고 있었는데, 글 올린지 5분도 안되어 삭제 하셨더라구요. 같은 경험해본 적 있는 사람이라 그 이유마저 알 것 같아 더 안타까웠어요.
남 탓인지, 내 탓인지... 만약 내 탓이라면 내가 끊임없이 이 사달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다는 자기 혐오감과 사는 것에 대한 보람과 희망을 점점 더 잃어가는 자신의 상황이 자기 탓인 것만 같아서 입 달싹하기도 힘든 지경을 말이죠. 그 뭐가 뭔지 모를 혼돈의 고통을 저도 한참 앓았었거든요.
물론, 사람마다 경우가 다르고 이유가 다른 것이겠지만 저라는 사람이 내린 결론에 대한 시각도 참고하셨으면 해서 글 올려봅니다.
정신과 의사이자 작가인 스캇펙의 '거짓의 사람들'이라는 책을 인용해보자면, 스캇펙은 인간의 악에 있어서 가장 본질적인 심리 문제는 바로 나르시시즘이라고 규정해요.
[악이란 자신의 병적인 자아의 정체를 방어하고 보전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정신적 성장을 파괴하는데 힘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희생양'을 찾는 것이다. 희생양을 찾되 강한 자가 아니라 약한 자를 찾는다. 악이 힘을 행사할 수 있으려면 우선 행사할 힘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힘을 행사할 영역, 즉 피해자가 있어야 한다.]
나르시시스트인 엄마 밑에서 자란 맏자식인 저는 가정환경 때문에 남에게 손가락질 받지 말아야 한다고 엄한 훈육이 필요하다며 폭력을 경험하며 자랐어요. 비난, 지적, 모욕 심지어 말을 듣지 않으면 버리겠다는 협박까지 당했죠. 학교에서는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고 교우관계 원만했던 저는 집에만 들어오면 불량한 인성의 유전자를 가진 문제아였어요. 밑의 동생들은 엄마의 그 말들을 고스란히 학습해 덩달아 저를 억압했었구요.
동생들의 학업을 위해 전문대를 졸업한 저는 취업 후 자력으로 야간대를 졸업 후 대학원 진학을 준비해 홀로 서울로 상경 했어요. 이후 남편을 만나 결혼, 다시 나르시시스트 시모를 만났죠. 우습게도 제가 비난과 모욕을 당하는 걸 보고도 말리지 못하고 방관하던 제 아버지와 똑같은 시부를 만났고, 엄마의 말과 행동에 무비판적으로 동조하던 제 동생과 똑같은 시동생들을 만났죠.
엄마의 폭언과 폭력에서 벗어나 새 삶을 살려던 제 의지가 꺽이는 순간이었습니다. 신혼 3년 만에 우울증이 찾아왔어요. 전 제가 죽을까봐 무서워서 제 발로 정신과를 찾아다녔고, 약을 복용해가며 사회생활을 이어나갔죠.
이후 재발, 치료 다시 재발까지 겪으며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해지면서 우울증 환자인 제가 가족이나 제가 속한 사회에 민폐가 될까봐서 내색도 못하고 혼자 앓았습니다. 그 지경에 가족에게 영향이 끼칠까봐 자살도 못하고 거듭 재발되는 우울증 치료에 무기력함을 느끼는,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맏자식, 맏며느리, 사회생활의 제 직분인 관리자 역할을 수행하며 처절하게 내면이 무너져 내렸죠. 또, 원글님처럼 회의감이 들어 정신과 치료를 포기했어요.
대신, 잠을 자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는데 수면량이 올라오니 신기하게 밥이 먹어지고 근육량이 올라오니 또 신기하게 생각이란 걸 다시 하게 되더라구요.
그렇게 시작된 운동은 독서를 다시 시작하고 산책을 하면서 사색이란 걸 하게 되었으며, 독서를 통해 얻은 풍월로 심리학, 철학, 인문학 강의를 찾게 되며 점차적으로 개인적 시간을 보낼 꺼리들의 스팩트럼을 넓혔어요. 그리고 지금은 오십대입니다.
서른 초반에 시작된 우울증으로 파괴된 일상에 평안이 깃들기까지 십여년이 넘게 걸렸고 지금도 때때로 압박감에 시달리지만 대체로 전 평안합니다. 나를 억압하는 게 무엇인지를 아는 것만도 제게 큰 위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고통으로 점철된 제 인생이 실은 누구의 인생도 대부분 그러하고, 산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임을 인정하게 되면서 더는 자기 연민에 시달리지 않게 되었어요.
제게 비난, 지적하는 친모와 시모의 말에 반응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내게 관심이 없고 그저 자신들의 욕망을 추구하는 방법이 오랜 세월 습관이 되어 나와의 관계를 개선할 의지는 없으며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날 비난하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필요하다면 가족을 동원해서라도 날 억압하려는 것이라는 걸 알았죠. 결국 이 모든 상황의 원죄는 어디에도 없었던 것인데 망상에 사로잡혀 제가 홀로 앓아왔다는 걸 알고는 허망했어요.
자식 키우며 사느라 힘든 엄마들이 자식 중 가장 감정 공감 잘해주는 여린 성정의 희생양을 필요로 했을 뿐이며, 제가 기꺼이 그 희생양을 자처한 꼴이죠. 이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며 제가 제 자신을 지키지 못했음을 알았습니다.
원글님, 사람은 두 부류가 있어요. 사건이 일어났을 때 남탓하는 사람과 내탓 하는 사람이요.
남탓 하는 사람을 가족으로 두면 상대를 억울하게 만들어요.
내탓 하는 가족 구성원은 그 가족의 희생양이 되는 거죠. 그리고 그 희생양은 오랜 학대로 인해 무기력을 학습하고 체념하면서 더이상 자기를 보호하지 않으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잊게 됩니다. 그리고 항상 오랜 시간 쌓인 억울함과 분노를 참아내느라 피폐해져 가죠. 더 나아가서 자신을 심리적으로 억압하는 사람들에게 익숙해져서 새 인연을 만나도 꼭 그런이들에게 편안감을 느끼고 끌리게 되죠. 살수록 그런 사람들과의 인연이 연결되어 마치 거미줄에 걸린 먹이감처럼 원글님 스스로를 옭아매게 됩니다.
그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은 원글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자기 확신이 중요합니다. 이제라도 조금 미숙해도 괜찮아, 실수해도 괜찮아, 다들 장단점이 있는 거지, 난 이만하면 꽤 괜찮은 사람이야 라고 스스로를 북돋아주세요.
그리고 원글님을 지적, 비난, 모욕하는 사람들과 거리를 두세요. 맞서서 공격하라는 게 아닙니다. 그저 그 자리에서 비난받고 있는 자신을 그 상황에서 꺼내오라는 말이예요.
불편하다, 싫다, 곤란하다 등 단답형으로 대응하세요. 친절하게 설명하지 마세요. 어차피 원한 것을 얻고자 하는 간절함에 눈과 귀가 막힌 사람에겐 원글님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원글님의 목소리가 닿지 않는다고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상대를 도와야한다 생각지도 마세요. 상담까지 해가며 앓고 있는 원글님이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짐승이예요. 남을 도울 때가 아닙니다.
마음이 착하고 여린 것은 좋은 게 아녜요.
욕심 많고 집착하는 성정이 나쁜 것도 아니죠.
우리는 그저 자기 습관대로 살아가는 것 뿐이니, 이제라도 생각을 달리 하는 방법을 찾으세요. 어차피 여직 살아온 방식으로는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이잖아요. 지금의 원글님에겐 제대로 방어할 수단이 없는 셈입니다.
전문가도 아니고 넓은 지식이 있는 사람도 아니지만, 비슷한 문제를 경험한 건방진 서당개가 오지랖 한 번 부려 보았습니다. 다음에는 좀 더 용기내어 자기 목소리를 내어보세요.
익명게시판에서 나 힘들다 말하는 것 조차 생각이 많아보여 안타까웠어요. 힘내세요.
그리고 다른 분들께 긴 글 죄송합니다.
우리 평안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