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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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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아저씨와의 데이트

... 조회수 : 3,509
작성일 : 2024-09-17 00:18:59

미국 북동부 바다를 따라 들어선 곳에 살아요.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저희 동네에도 지역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작은 펍들이 꽤 있어요.

은퇴하신 분들은 거의 매일 와서 간단한 식사과 함께 맥주 몇 잔을 곁들이고, 아직 일을 하는 사람들은 일을 마치고 잠깐 들렀다 집으로 가기고 하고. 

이곳에서 만난 다양한 삶을 지나온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또 현재를 함께 살아나가는 것이 저는 재미있어요.

 

무뚝뚝하고 찡그린 얼굴의 조지 아저씨는 70대 중반.

아내는 세상을 떠나고, 하나 있는 아들은 조금 먼 곳에 살고 있대요. 

바에 앉아서 사람들 얘기하는 것에 웃고 가끔 끼어들다 보니 지나온 시간만큼 조지 아저씨와도 친해지게 되었어요. 이 아저씨는 음악을 몹시 좋아하고, 드라이한 유머 감각이 있는 사람이어서 저와 남편은 가끔 보이는 조지의 심술 궂은 모습에는 상관없이 이 분을 만나면 항상 반가웠어요. 

 

2주 전 주말, 이 작은 펍에서 어김없이 조지를 만났는데 우연히 조지 생일이 며칠 후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남편이 생일 맥주 사주는 것은 재미없으니, 뭐 필요한 것 없어요 하고 물었는데, 아저씨가 나 꼭 가고 싶은 공연이 있어 하고 말했어요. 조지는 약한 뇌경색을 겪은 후 운전을 하지 않아요. 놀러가는 것에 no 는 찾을 수 없는 남편이 좋아요. 우리 다 함께 가요 해서 조지, 남편 그리고 저와 함께 하는 외출 계획이 만들어졌어요. 

 

지난 주중에 이 콘서트를 다녀왔는데, 어머 이 아저씨 알고 보니 체력이 저보다 더 좋아요. 

세 시간 내내 춤추고 노래하고 

가끔 과음하면 욱하기도 해서 사실 좀 걱정도 했는데, 술도 적당히 마셔셔 내내 기분 좋은 상태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음악 틀고 노래 신나게 따라 부르고

조지 아저씨가 이렇게 오랫동안 웃는 모습을 처음 봐서 저도 남편도 신났어요. 

 

일요일이니까 낮 술 한잔

어제 펍에 들리니 조지 아저씨가 지난 사흘 내내 저희와 콘서트 다녀온 얘기를 했다고 다른 동네 사람들이 말해주더라고요. 신나서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하는데, 저희는 알지 못하는 조지의 옛날 모습을 다시 보는 것 같았다고 조지와 함께 고등학교를 다녔던 아저씨가 말씀하시는데, 조금 찡 했어요. 

 

아저씨 신나게 춤 출 수 있을 때까지 가끔 모시고 다녀야 겠어요. 

 

이제 몇 시간 후면 추석 아침이네요. 

저는 멀리 있지만 제 마음은 며칠 전부터 명절 기분이에요.

각자 계신 곳에서, 맞이 하고 있는 상황에서 즐거운 시간 보내셨으면 좋겠어요. 

해피 추석!

 

 

 

IP : 108.20.xxx.186
1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따뜻
    '24.9.17 12:20 AM (70.106.xxx.95)

    따뜻하네요
    미국은 저런게 좋아요
    그냥 누구와도 친구가 되는거요

  • 2. ...
    '24.9.17 12:24 AM (108.20.xxx.186)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구석구석에 따뜻함이 있고, 다정함이 있어요.
    미국을 지탱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아직까지 남아있는 공동체 내에서의 보듬 같아요.

  • 3. 저도
    '24.9.17 12:24 AM (59.17.xxx.179)

    그런 펍들 가보고 싶어요

  • 4. ..
    '24.9.17 12:25 AM (110.15.xxx.102)

    정겹고 행복한 드라마를 본 것 같네요
    앞으로 계속 챙겨주겠다는 마음도 너무 이쁘세요

  • 5. 님도
    '24.9.17 12:26 AM (211.186.xxx.59)

    좋은 추석되세요 북미어딘가 멀리있는 제친척이 보내온 추석안부가 너무 고맙더라고요
    서로가 서로에게 위안이 되는 명절은 따스합니다

  • 6. 미국
    '24.9.17 12:36 AM (118.235.xxx.76)

    저도 이름도 기억 안 나는 동네 아저씨.. 아 지금 기억 났네요 제리 아저씨였나.. 옆집 사시는 분이었는데 혼자 사시면서 각종 오리 알 부화시키고 이것저것 고쳐주고 제가 여행 가방 필요하다니 자기는 이제 쓸일 없다며 가방을 턱 주시고.... 그 가방 아직도 있네요. 하늘 나라 가셨다던데 잘 계시길 빌어봅니다.
    웃긴 건 근처에 또 개리 아저씨라고 있었는데 그 아저씨는 좀 무서웠어요. 변태 아저씨라는 소문이 있었고 동네 남의 집 마당을 막 돌아다녀서 혼자서는 말도 걸지 말라고 어른들이 당부하곤 했던..
    미국 사람들 이웃끼리 초대도 잘 하고.. 따뜻한 이야기네요

  • 7. ...
    '24.9.17 12:38 AM (108.20.xxx.186)

    저와 남편은 일명 펍 레이더 라고 부르는대요.
    낯선 곳에 여행가도 로컬들이 갈만한 곳을 잘 찾아요.
    조금 허름하지만 사람은 꽤 있고, 그 사람들의 옷차림이 관광객의 옷차림과는 좀 다른 곳
    그렇게 찾는 것이 1단계에요. 그렇게 찾아서 들어갔는데, 손님에게 약간 뚱~~ 하다 싶으면
    음 맞는 것 같아 그래요. ㅎㅎㅎ
    그리고 애피타이저 2개를 먹어 보면 대충 감이 와요.아 이곳은 로컬 맛집이구나 싶어요. 혹은 잘못 골랐다.
    그 집의 분위기나 음식이 마음에 들면 저녁에 한 번 또 가요.
    그러면 벌써 맞이하는 느낌이 달라요. 너희 뭔데 또 왔니 하고
    인사하고 좀 놀다가 아주 마음에 들면 다음에 여행할 때 또 가요. 저희는 갔던 여행지 몇 년 후에 다시 가는 것 좋아하거든요. 보통 그런 곳은 같은 주인이 오래 운영하니까 너희 여기 왔었지 하는 분도 계셨어요.

  • 8. ㅋㅋㅋ
    '24.9.17 12:46 AM (118.235.xxx.76)

    저는 제가 그런 곳 나름 잘 찾는데 구글 리뷰가 많지는 않은데 그렇게 나쁜 건 없고 짧게 몇개 있는 정도인지 보고 사진 쭉 보고 감 잡는 정도예요
    펍레이더님 방법 좋네요 미국 가서 써봐야지..

  • 9. ...
    '24.9.17 12:59 AM (108.20.xxx.186)

    저는 명절에 시골 가는 것 무척 좋아했어요.
    엄청난 대가족에 손님도 많이 와서 며칠 전부터 다들 가서 일하다 놀다 그랬어요.
    남자들도 아이들도 각자 맞은 일이 있어서 모두 다 같이 일했어요. 인원이 많다보니 상품과 상금 걸어놓고 윷놀이며 여러가지 게임해서 재미이었는데...

    제가 결혼해서 미국 산지 20년이 훌쩍 넘었는데, 미국인 남편이지만 여기도 엄청난 대가족이거든요.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 때 재미있지만 또 명절에는 어쩔 수 없이 제 원가족이 평소보다 더 그리워지더라고요.

    그러면서 진심으로 알게 되었어요. 그 수 많은 사촌 새언니들의 마음을.
    미국 살면서 명절 맞춰 한국 갔을 때, 사촌 새언니들에게 진심으로 편지 쓰고, 선물 하면서 제 고마운 마음 전달했어요. 언니들 덕분에 전 즐거운 명절을 보내고, 그것이 제 마음 즐거운 기억에 큰 지분인데, 그 안에 언니들이 느꼈을 외로움을 이제야 알았다고.

    이제는 모두 손주를 본 여전히 예쁜 우리 새언니들
    언제나 감사합니다!

    추석 인사 전해주셔셔 감사해요. 211님!

  • 10. ...
    '24.9.17 1:04 AM (108.20.xxx.186)

    118.235 님 맞아요. ㅎㅎㅎ
    구글 리뷰. 리뷰가 많거나 화려한 곳은 절대 로컬들의 장소가 아니에요 하하하

    다정한 제리 아저씨와 그 가방을 아직도 가지고 계신 118님 좋아요~

  • 11. 응햐
    '24.9.17 2:09 AM (124.57.xxx.213)

    좋아요 이런 얘기

  • 12. ..
    '24.9.17 9:24 AM (210.107.xxx.105)

    마음이 따뜻해지는 얘기네요.
    태계일주에서 텍사스 시골 펍에 가니 처음본 사람들에게 술한잔 사주면서 환영하는거 찐이었군요.
    추석 잘보내세요!

  • 13. 이글을
    '24.10.12 9:58 AM (180.229.xxx.164)

    지금 보았네요.
    따뜻한 수필 한편이네요.
    자주 글 올려주세요.
    요즘 인플루언서..유튜버들
    유명세에 알맹이도 없는 책들 내곤 하던데
    원글님의 이런 따뜻한 일상글을 모아 수필집 내도 좋을것 같아요.
    글 참 잘쓰시네요

  • 14. ...
    '24.10.13 1:52 PM (108.20.xxx.186)

    180님 댓글 달아주신 것 지금 봤어요.
    180님과 저 모두 한 박자 늦게 서로가 쓴 글을 보았는데, 그 기분이 특별하네요.
    이런 소소한 이야기 또 올릴 수 있게 용기 주셔서 고맙습니다.

    예쁜 가을 하나도 놓치지 말고 즐겁게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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